중구난방 어제 떠오른 생각들 마구 적어보았다.
나는 혼자 산다. 좋을 것 같아도 사고가 나거나 아프면 간병해 줄 사람도 없다. 가족도 친척도. 운명에 맡겨야 한다. 말을 잘 못하게 되고 입력도 못하게 되었을 때 남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알량한 자존님도 지킬 수 없는 짐짝상황에 처할까봐 두려웠다. 인지능력이 떨어져 아무 생각이 없지만 내 미래에 대해 모르겠다. 일어나서 밥먹고 산책하고 밥먹으면 하루끝이다. 인생의 속도가 달팽이 만큼 느려졌다.
1초를 영겁은 아니라도 3만 5천 년처럼 살고 싶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행인이 적은 대로변에 가게상점들이 많다. 저마다 장사가 안 되서 걱정으로 가득차 있을 것 같고, 페북을 보면 페친들은 현 정부 때문에 죽을 맛인 것 같다. 박근혜가 못 마땅한 것 같다.
물그림자 보고 두려움에 껑껑 짓던 개와 데칼코마니가 생각난다.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주제를 벗어나는 것 같다. 가락할인 공판장마트에서 쌍문동 꽃동네를 중심으로 배송하다 몇 번 쓰러졌는데 배송할 사람이 없어
일어나 끝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갔다. 너무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마트 일을 하다보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건 계산대 직원들도 마찬가지 였다. 시사 뉴스를 볼 시간도. 관심도 나지 않았다. 고된 하루 일이 끝나고 모여 음료수에 담배를 피우는 시간에도 페친들이 문제 삼는 부정선거, 사회현안 그 어떤 것도 대화의 소재로 나오지 않았다.
보호자가 없다. 그런데 지금만 그렇지 않다. 어렸을 때 팔이 불어지고 코가 부러졌을 때도, 사고가 났을 때도 보호자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
미국에 의해 일어나는 불행을 이야기할 때 미국국가만 말하지 않고 미국인의 소비생활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인신매매가 성횡하던 80년대의 분화구는 사창구였다면
지금의 분출구는 배달같았다. 편하기는 편한데 배달 삵을 제대로 치르면 물건 값이 올라서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 위험하고 무거운 것 처리하는 부속품은 따로 있다는 듯이 애써 관심가지고 싶지 않은, 싸게 사서 목구멍에 거미줄 쳐서 좋은 먼 얘긴지 모르겠다.
통진당 해산 뉴스 때문에 이런 저런 조언을 하고 싶다. 다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다.
유권자의 한 사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제 정당해산 뉴스를 접하고 안타까웠다. 앞날이 걱정도 되었다. 나도 통진당 당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 사태는 불행이라 말하고 싶다.
6.25의 기억을 가지고 계신 집주인집 아저씨는 내가 걱정되는지 통진당 탈퇴하라고 하신다. 우편함에 통진당 우편물 꽃혀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통진당 당원이냐고 묻는다고 하셨다. 박정희 대통령 장기독재를 경험한 분들껜 박근혜대통령을 볼 때 마다 그때의 기억이 선명할 것 같다. 그 고통과 원한이 얼마였는지는 몰라도 작년에 그 두려움을 지나치게 표출했다. 원한이 원한으로 제압되지 않는 것이 세상살이 이치 같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념이 불순해서, 용공빨갱이 정당을 해체하겠다는데 이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무리 이념이 투철하기로소니 적국의 군인이 되어 적국을 지킬리는 만무
하지 않는가
적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수 시민과 서민의 살림살이 호주머니사정을 넉넉하게 해야 부국강병해 질 수 있다고 앞설 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North Korea의 국방과 경제가 아니라 South Korea의 부국 번영을 위해 열심인 친구들을 왜 간첩으로 몰까?
작년에 박근혜 좀 만 덜 미워했으면 이겼다. 누구 미워하면 내가 더 괴롭고
시야도 좁아지고 경쟁 중엔 패배한다. 작년에도 지금도 박근혜 혐오하고 있지 않나?
만약 박이 악의 화신이 된다면 그건 나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필요하다. 만약 누구 미워서 욕만하는데 누가 동의하고 동조할까?
박근혜를 나쁜 사람, 박근혜 정부를 거악으로 몰고가지 마라.
거악이 될 수록 그를 혐오매도하는 내 그림자도 길어진다.
지금의 행위가 우주의 반대편에 복사되는 것처럼 큰 사고와 악인이 출현하면
내 잘못도 있다. 씨소의 원리가 작용한다. 작은 험담을 하면 큰 결집이 발생한다.
축구경기에서 설령 심판이 실수를 해 져도, 승부를 번복하자고 하면 심판을 욕할지언정 재경기요구를 관객과 시청자는 외면한다. 존엄을 부여받은 한 생명이 자신의 존재와 존재의미를 증명하는 목소리를 내는데 거짓말로 교란하는 미디어악과는
질이 다른 내 안의 악이다. 악을 성찰해야 이긴다. 미디어의 소비방법 입소문의 위력 노년층 90% 의 의미
, 손자병법, 상대의 의도동기를 인정하고, 삶, 행위, 과거의 정당성을 인정하자.그래서
위기는 기회라니 지금이 새옹지마의 그 때인 것 같은데 이때 대동단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배용준 나왔던 그 드라마의 찬란했던 백제 고구려가 하루아침에 망하듯이 속수무책으로 어이없이 휩쓸릴 것 같다. 눈 깜짝할 새에 각 개 격 파될 것 같다. 함께 단호하게
대응하면 감히 엄두를 못 내지만 하나씩은 쉽다.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고 수수방관할 일도 아니다. 새옹지마의 전화위복이냐 궤멸이냐 기로에 선 것 같다.
국민과 시민은 야권이 보완하고 협력하기를 바라지 각개약진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목이터지게 부정당선을 외쳐보았자 호응해주지 않는다.
내 세계관은 정치와 부합하지 않지만 야권이 단합하길 바라고 통진당 가입했었다.
만약 통진당의 위세가 약하다면 비지니스의 원리상 민주당이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약자와 서민을 대변할 정당이 필요했다. 좀 비가비가해야 협력의 파트너로 인정을 해주지 않나 싶었다. 어느 정당에 가입하는 것이 의무라면 당연히 통진당에 가입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적국의 장수라면 야권의 반목과 갈등 궤멸이야 말로 가장 바라는 것이고
분열만큼 확실한 무기도 없을 것 같다.
정치적 승리나 시시비비의 판가름이 아니라 국민 서민 시민의 고통감소와 민중의 해방이 목적이라면 서로의 부족한 점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지 않나? 내가
옳아서 어따 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