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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큰 이노션 “제일기획 잡아라” -매경이코노미 제1607호(11.05.25일자)

pudalz 2012. 1. 10. 02:25

 

훌쩍 큰 이노션 “제일기획 잡아라”
광고업계 빅2 ‘왕좌’ 다툼
기사입력 2011.05.20 10:29:31 | 최종수정 2011.05.25 09:32:55

 

 

올해 들어 광고업계가 꽤나 술렁거렸다. 1973년 설립 이후 1위 자리를 철옹성처럼 지켰던 제일기획이 2위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그것도 이제 7년 차에 불과한 신생 광고대행사 이노션월드와이드(이하 이노션)에 자리를 내준다는 스토리다.

제일기획과 이노션의 1위 다툼 전말은 이렇다. 제일기획은 올해 매출 관련 자료를 ‘취급고’가 아닌 ‘수익’으로 발표했다. 취급고는 광고업체가 광고주로부터 받는 수수료뿐 아니라 광고주가 광고매체에 지급하는 금액까지 포함한 액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광고업계 순위를 매기는 기준이 돼 왔다.

반면 업계 2위인 이노션은 기존 관행에 따라 취급고를 기준으로 통계를 냈다. 갑자기 두 업체 간 순위를 매기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러자 업계에서는 지난해 국외 광고 물량을 크게 늘린 이노션이 업계 1위로 치고 올라왔다는 추측이 돌았다. 이노션 측은 “1위가 바뀌었기 때문에 제일기획이 취급고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해 더 파장이 일었다.

그러자 제일기획은 서둘러 취급고를 공개하며 진화에 나섰다. 뚜껑을 열고 보니 제일기획의 취급고는 2조9199억원으로 이노션(2조6985억원)보다 2200억원 정도 많았다. 취급고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제일기획 측은 “상장사이자 글로벌기업으로 국제기준을 따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국제기준은 매출액에서 매출원가를 뺀 매출총이익을 따른다. 국제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광고전문지 애드에이지(Ad Age)가 발표한 ‘전 세계 광고회사 순위’도 매출총이익을 기준으로 삼는다. 결론적으로 이노션이 제일기획을 따라잡았다고 하기엔 아직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노션은 설립 3년 만에 2위에 올라섰고, 제일기획의 턱 밑까지 쫓아온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재벌가 딸들 간 자존심 대결 치열

또 하나, 국내 1~2위 재벌가 딸들의 경쟁으로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제일기획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둘째딸 이서현 부사장(38)이 선봉에 서 있다. 그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평창올림픽위원회 행사 등에 직접 나서며 마케팅을 이끈다.

이노션은 정성이 고문(48)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직함은 고문이지만 지분의 40%를 보유한 실질적인 오너다(나머지 지분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20%,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40% 보유). 그는 현대기아차의 신차 발표회는 물론 국외 모터쇼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이노션의 마케팅과 광고에 참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부사장이 젊고 세련된 이미지인 데 반해 정 고문은 어머니처럼 말단사원까지 챙기는 자상함을 갖고 있다”고 비교하기도 했다. 재벌가 딸들이 경영에 참여하자 항상 ‘을’의 입장이었던 광고대행사에 힘이 한껏 실렸다.

제일기획의 경쟁력

국외에서 인정받는 광고회사

제일기획 소속의 어떤 직원을 붙잡고 물어봐도 이노션과 경쟁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 직원은 “이노션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힐 정도다. 4000억원 이상 차이 나던 취급고가 2000억원대로 좁혀지긴 했지만 그리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취급고에 나타나지 않는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째, 비(非)계열사 물량이 많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룹 계열사 광고대행사(인하우스 에이전시)는 치열한 경쟁 없이 계열사 물량을 받아 쉽게 매출을 올린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해관계가 없는 비계열사 광고를 경쟁 PT를 통해 수주해오는 걸 진짜 실력으로 인정해왔다. TBWA나 웰콤 등 독립광고대행사가 인정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제일기획은 삼성그룹 계열사이기는 해도 비계열사 광고가 많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취급고의 46%가 비계열사 물량이다.

세계 5대 광고제 휩쓸어

둘째, 광고회사 경쟁력을 따지는 기준은 창의성과 독특함, 이른바 크리에이티브다. 이를 재볼 수 있는 잣대는 국외 광고제 수상 실적이다. 이에 관해서라면 제일기획이 한발 앞섰다. 최근 3년간 제일기획은 국외 광고제에서 67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2008년엔 세계 최대 광고제인 칸 국제광고제를 비롯해 세계 5대 광고제(칸, 뉴욕, 런던, 클리오, 원쇼)에서 26편의 수상작을 내며 휩쓸었다. 국내 다른 모든 광고회사의 수상(16개) 기록을 크게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대한민국 광고대상도 3년 연속 차지했다. 셋째, 글로벌 시장에서 제일기획의 위상은 다른 국내 대행사를 압도할 만큼 탄탄하다. 전 세계 26개국에 31개의 네트워크를 운영 중인 제일기획은 최근 애드에이지가 꼽은 ‘2010년 전 세계 광고회사 순위’에서 17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전 세계 톱 50에 선정된 것이다. 계열사의 국외 법인이 아닌 현지 광고주 영입 성과도 컸다. 최근 중국 최대 이동통신회사 차이나텔레콤, 러시아의 러시안스탠다드뱅크 등의 물량을 따냈다. 제일기획 측은 “나이키와 코카콜라 캠페인으로 유명한 전문가를 미국 법인 CEO로 영입하는 등 현지 인력을 뽑는 데 주력했고, 그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이 더욱 탄탄해졌다”고 분석했다. 

이노션의 경쟁력

그룹 지원 탄탄 “3년 내 따라잡겠다”

“조금만 더 하면 닿을 것도 같은데….”

이노션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제일기획의 독주 체제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정성이 고문은 ‘몰아치는’ 유형의 경영인은 아니다. 2005년 창립 후 초기엔 CEO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약간 뒤로 빠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요즘 달라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3년 내 제일기획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 뒤 글로벌 20위권에 진입하자”며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노션의 최대 경쟁력이라면 현대기아차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계열사 비중이 상당하다. 이노션 측은 “광고 건수로 보면 비계열이 계열사를 앞서지만, 금액으로 보면 계열 광고가 많다”며 “비계열 광고가 전 업종에 걸쳐 골고루 포진해 있는데 그룹의 광고비용이 많아 금액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설립 초기만 해도 현대기아차의 의존도가 높지 않았다. 이노션 첫 사장을 맡았던 전문 광고인 출신 박재범 씨는 현대기아차보다 비계열사 물량을 따내는 데 공을 들였다. 정예 인력을 현대기아차가 아닌 신규 경쟁팀에 배치했다. 그러자 현대기아차를 소홀히 한다는 내부 비판이 일었고 현대자동차 출신 안건희 사장이 부임했다. 한 내부 관계자는 “안 사장 부임 이후 ‘현대기아차가 있어야 이노션도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며 “비계열 광고를 수주하는 게 중요한 건 알지만 무게중심은 확실히 계열사 쪽으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그룹이 뒷받침해준다면 현대기아차의 성장과 함께 이노션의 성장곡선은 더 가파르게 우상향을 그릴 수 있다.

국외 비중 70%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노션은 국제화를 염두에 두고 ‘이노션월드와이드’라는 사명을 붙였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세계 각지에 지부를 설립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출발했다. 광고주 타깃을 처음부터 국외로 상정하고 성장계획을 짠 셈. 그러자 제일기획도 2008년 영문 사명을 ‘제일기획커뮤니케이션즈’에서 ‘제일기획월드와이드’로 바꿨다. 세계 시장 개척에 앞장서온 제일기획이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도에서다. 계열사 비중이 크기는 해도 이노션의 국외 취급고는 75%(2009년 기준)에 달한다. 제일기획은 61%(지난해 기준) 수준이다.

제일기획의 제일 큰 고객이 삼성전자이고 이노션은 현대차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이 국외로 뻗어나가 주면 광고대행사도 덩달아 일감이 생긴다. 현재 성장세로 봐선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 이노션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다.”(A대행사 관계자)

또 이노션은 신생사인 만큼 의욕이 넘쳐난다. 직원들이 피로함을 느낄 만큼 내부경쟁도 치열하다. 제일기획과의 2000억원(취급고 기준) 격차는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는 분위기다.

1~2위 선두 다툼을 벌이는 거대 광고대행사들을 바라보는 외부 시각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때문에 양극화 현상이 심해진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지난해 제일기획과 이노션의 광고 취급량은 전체의 55%였다. 두 회사를 선두로 인하우스 에이전시 7곳의 광고 취급량은 2009년 5조원대에서 지난해 7조원대로 늘었다. 점유율도 70%를 넘어섰다. 반면 중소 광고회사의 몰락은 심각하다. 전체 광고회사 200여곳 가운데 20여곳이 전체 시장의 85%를 잡았기 때문이다. 광고비 50억원 이하의 물량조차 대기업들이 다 가져가는 게 현실이다.

재벌들의 재산 증식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노션의 경우 그룹 계열사와의 매출 거래가 2009년 787억원에서 지난해 1422억원으로 급증했다. 이노션은 2008년부터 매년 30억원씩 주식배당을 해왔다. 배당은 고스란히 3인 주주(정몽구·정의선·정성이)의 몫으로 돌아갔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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