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dal/언론

수신료란

pudalz 2010. 1. 13. 02:36

 

KBS의 행태로 볼 때 전국적인 수신료거부 운동이 불가피한 것 같다.

그런데 전국적인 수신료거부 운동이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과거의 수신료거부 운동은 어느 정도나 호응이 있었을까?

과거보다는 국민의 언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언론개혁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언소주, 진알시란 '조직된 시민단체'도 있다.

그러나 투철한 언론관을 지닌 언론관계자와 언론개혁을 꿈꾸는 조직된 시민단체에 소속된 구성원를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은

언론을 언론사라 여기며 수신료가 무엇인지도 모르거나 전기세낼 때 함께 내는(전기세에 포함된) 세금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며 수신료가 무엇이고 수신료를 왜 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주관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 아닐까 싶다. 

우선 나부터도 이전 정권에서 수신료거부 운동이 있을 때(왜 수신료거부운동을 하는지 잘 몰랐다)수신료 거부운동을 케이블(유선)이나 위성 방송 시청료를 내고 있는데도  전기세에 합산되어(딸려) 청구되는 '수신료'란 세금이 부당하게 이중으로 청구되는 것에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항의하고 납부를 거부하는 운동쯤으로 이해했었다.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과 KBS의 비윤리적인(정상적이지 않은) 운영행태로 볼 때 수신료거부 운동은 마땅히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동참가능성과 수신료거부 운동의 실현가능성 사이에는 국민과 언론개혁진영의(언론인의) 수준차만큼이나 괴리가 벌어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수신료란 무엇일까? 수신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주관이 있어야 국민들도 동참하지 않을까? 더 크게 수신료 문제를 넘어서 언론개혁 자체가 성공하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할까? 이 전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구체적 방법론도 실효를 거두지 않을까 싶다.

언론이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며  삶이라 할 수 있는 아니면 삶을 지배하는 정치경제문화보다 근원적인 존재방식이며 수신료란 생활방식과 존재방식을 지탱해주는 지지기반 내지 동력이란 것에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게 할 수 있을 때, 그런 인식의 확장을 위한 노력이 선행될 때 언론개혁도 가능하지 않을까? 공영방송국의 정체성 문제, 수신료인상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요는 수신료란 무엇이고 언론이란 무엇인지를 알리는 것이 구체적 언론법의 잘잘못, 수신료인상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언론의 중요성, 수신료의 가치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이 선다면 국민들도 바른 판단을 하지 않을까?

 

정관精觀 바른 관점 또는 객관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주관적 능력(심안)이란 말이다. 불교 용어 정견正見과 비슷하다. 우리말 가리사니도 비슷한 뜻같다.

세상을 바로 보면 득 되는 것이 많다. 세상을 몰라 이치를 몰라 세상돌아가는 이치를 몰라 사람들에게 속고 권력에 농락당하는 것보다는

세상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 손해를 덜 볼 수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세상을 바로보고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 정보 취득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알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모르면 두렵고 회피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신문도 보고 학습도 하고 상담도 하고 뉴스도 보는 것이다. 이런 것은 일종의 본능이다. 모르는 만큼 손해라는 것을 우리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바른 지식, 바른 정보, 있는 그대로의 현실, 자기 안의 세계만이 아니라 자기 밖의 세계도 바라볼 줄 아는 치우치지 않는 사고,  깨닮음 성찰 이 모든 것을 위해 내는 것이 바로 바른 정보 사실 진실 진리 수신료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살기위해 누군가의 의도대로 살기위해 정보취득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생각과 느낌으로 사유하고 스스로 식별 분간 판단하는 주체적 인간이 되기 위해 정보취득교육수신료를 내는 것이다.

 

수신료란 무엇일까 인터넷이나 KBS에서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스스로 고민해보았다.

내가 생각한 수신료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내야하는 정보취득세 내지 교육세 학습비 같다.

그런데 이 세금은 목숨을 전제로 내는 세금이다.

내목숨이 소중한 만큼 남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인정해서 내는 사람세다.

진실과 사실을 담보할 때만 그 가치가 인정되는 세금이기도 하다.

인간이 속지 않고 기만당하지 않도록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려

서로 오해하거나 선입견을 가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는 세금이다.

권력(공무원,부자)의 남용 횡포로 가난한 서민 시민이 기만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진실과 사실이 만연토록 하라고 내는 세금이다.

역사적 사실의 조작에 의한 인류의 분열, 비극의 반복을 더이상은 막고자 기꺼이 내는 세금이다.

인류의 경험과 지혜를 전승하는 비용이다. 경험과 지혜를 학습하는 비용이다. 경험과 지혜 즉 기록이 조작되면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을 전쟁과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무지몽매를 벗어난 것에 사례하는 책거리세다.

생각해보았다. 수신료를 더 많이 내어 양질의 교육프로그램과 TV프로그램(보도교양오락)을 시청하는 것과

사교육을 받거나(학원) 고가의 과금채널(유료채널)을 시청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국민에게 유리한가.

당연히 몇 천원 수신료 더 내는 것이 평생교육이나 경제적으로나 모두 더 이롭다. 사회전체의 건전한 상식제고나 국론통합(사회통합)으로 인한 개개인의 감정과 정신의 소통교감공명효과를 고려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개별적으로 정보이용료를 지급하는 것과 공영방송을 전제로 한 수신료 납부 효과를 비교해보면

가정에서 위성, 케이블,IPTV 시청료를 개별적으로 납부하는 것보다 살림에서 보나, 교육적인 측면, 산업적인 측면, 경제적인 측면, 사회문화적인 측면, 언론의 사회적 역활과 기능을 종합해보았을 때 훨씬 남는 장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재정여건의 미비로 시행되지 못한 평생교육의 대체기능, 사교육비 감소, 의식수준의 제고, 소통과 네트워킹에 의한 역동적 정의사회구현, 정보와 뉴스, 각종 컨텐츠의 가치화를 통해 얻는 경제규모와 소득증가, 권력을 감시하는, 이 세상 역사를 기록하는,  골목에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외따로 떨어진 섬처럼 소외된 현대인들의 눈과 귀, 입(목소리)이 되어 그 개별의 섬을 하나의 나라,사회 지역, 집단으로 묶는 기능, 공공서비스 등 참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시 수신료란

교육세다.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이 사회의 진실과 사실을 알 권리, 무지몽매에서 눈 뜰 권리, 속지 않을 권리, 오해받지도 하지도 않을 권리,

기만당하지 않을 권리, 알고 있는 사실이 달라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지 않을 권리, 갈라지지 않을 권리 등을 담보로 내는 세금이 아닐까? 이 정도 값어치에 치르는 대가(세금)이라면 절대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영방송국 KBS는 어떤가? 이와 정반대의 행태를 일삼고 있지 않은가?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있기 마련이건만 정파적 관점에 따른 공정성시비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공영방송이 지향할 당위성(책무)이기라도 한 양  공정성 논란을 핑계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간할 수 없게 하거나 서로 뒤바꾸어 놓지 않는가

진실을 호도하고 있지 않은가? 콩은 콩이고 팥은 팥이다. 검은 것은 검다. 흰 것은 희다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책무일진데 줄대기만 하는 곳에 정치적 모리배들만 득실 거리는 곳에 모리배들이 많드는 허위,거짓을 보자고 수신료를 내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KBS나 인터넷에 나와 있는 수신료의 정의란 무었일까?

KBS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다.

공영방송은 국가권력이나 상업자본으로부터 독립적, 자율적인 위치에서 공정성과 공익성을 추구하면서,
다양하고 보편적인 서비스를 통해 방송문화와 공공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이념적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에 가장 적합한 공영방송의 재원은 「수신료」 입니다.
수신료제도를 통해 모든 시청자는 공영방송의 주인으로서 재원을 균등하게 부담하고, 공영방송은 균형있고 보편적인
방송서비스를 통해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에 대한 공적책임을 수행하게 됩니다.

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세계 50여개 국가에서 수신료를 기본재원으로 하는 공영방송 제도를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방송법을 통해 KBS에 국가기간 공영방송의 역할을 맡기고 수신료에 의해 재원을 조달하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수신료 금액은 KBS 이사회가 심의, 의결한 후 방송위원회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얻어 확정됩니다.
현재 KBS 수신료 금액은 월 2,500원이고 한국전력의 전기요금과 함께 부과됩니다.
주거전용의 주택 안에 설치된 수상기는 세대별로 1대분의 수신료를 납부하고,
사무실, 영업장소 등에 설치한 수상기는 소지한 대수에 따라 수신료를 납부
하게 됩니다.
등의 공영채널 운영에 가치있게 사용됩니다.
그 밖에
국내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KBS교향악단 및 국악관현악단 운영
국가적인 문화/스포츠행사 주관
디지털TV방송(HDTV)과 디지털라디오방송(DAB) 등 디지털 방송환경 구축
교육방송(EBS)의 운영경비 지원(수신료수입의 3%)과 송신지원 에 쓰여집니다.

KBS의 결산내역은 매년 국회에서 승인을 받고, 사내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경영평가단의 평가를 받아 그 결과를 다음해 5월
이내에 KBS방송과 일간지에 공표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년 경영현황과 사업실적을 담은 [연차보고서] 를 발간해서 공공기관, 언론사, 대학, 시민단체, 도서관 등에 배포하고,
[시청자께 드리는 약속] 을 매년 초 공표, 실천하고 약속 이행실적을 다음 해 방송을 통해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수신료는 왜 받는 것입니까?
방송기관은 일반적으로 소유 및 운영재원의 확보형태에 따라 국영, 공영, 민영으로 구분되는데,
국가정책홍보 등의 목적으로 정부가 직접 관리, 운영하는 국영방송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영방송과는 달리 <공영방송>은 방송문화의 발전을 통한 공공복지의 향상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러한 목적에 가장 적합한 재원형태가 바로 수신료입니다.
<공영방송>은 그 운영재원을 모든 시청자들이 납부하는 텔레비전방송수신료로 함으로써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공정성과 공익성을 추구하면서 소수의 이익을 배려한다는 장점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특히 유선방송, 위성방송, 인터넷방송 등 매체와 채널은 날로 다양해지면서 방송의 내용은
갈수록 폭력과 선정 위주로 상업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방송의 오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공영방송 밖에 없으며 수신료는 그런 역할을 가능케 하는 공공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MBC, SBS는 수신료를 안 받는데 왜 KBS만 수신료를 받습니까?
국가, 사회적으로 공영방송의 필요에 대한 동의에 기초해서 KBS에 국가기간 공영방송의 역할이
맡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KBS는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에서 제정한 방송법(제43조)에 의해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를 정착시키고 국민에게 양질의 방송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그러한
역할 수행을 위한 기본 재원을 텔레비전방송수신료로 충당할 수 있도록 법적 보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KBS 2TV는 왜 광고를 합니까?
공영방송의 가장 이상적인 재원이 수신료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81년부터 현재까지 월 2,500원으로 동결되어 있는 수신료만 가지고는 현실적으로 KBS
재원의 절반도 충당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만일 부족한 재원을 전부 수신료만으로 충당하려면 큰 폭의 수신료 인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시청자께 직접적인 부담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불가피한 여건 때문에 2TV의 광고방송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KBS는
2TV의 공영성 강화를 중요한 과제로 삼아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KBS 2TV는 라는 혁신과제의 성공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채널로 새롭게 자리매김 했습니다.
2002년 공영성지수(PSI)에서 MBC는 물론 SBS보다도 하위에 머물렀던 2TV는 편성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창의성과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집중 개발한 결과 2004년 이후 PSI 지수가
KBS 1TV에 이어 2위로 올라서는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비타민(2003), 스폰지(2003), 상상플러스(2005), 해피투게더-프렌즈(2005) 등의 2TV 대표
프로그램들은 재미와 함께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KBS는 1TV와 2TV가 각각의 채널 정체성을 가지고 공영적 프로그램을 생산하면서 방송시장
전체의 공영성을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별 혜택도 없이 수신료를 내고 싶지 않으니,
KBS도 차라리 광고수입만으로 운영하면 안됩니까?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은 단순히 하나의 상품이 아닌 문화재(공공재)이며, 공영방송의 수요자는
단순히 소비자가 아닌 전체 국민(시청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공영방송의 역할은 단순히 시청자에게 프로그램을 공급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방송의 전체적인 질적 수준에 기여하면서 소외계층이나 저소득층에도 균등하고 보편적인
방송문화를 제공하고 국가기간방송으로서 해외동포나 외국에도 한국의 문화와 위상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KBS가 광고수입으로만 운영된다면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포기하고 오로지 시청률 경쟁을
통한 광고수입 확대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방송환경이 상업,퇴폐, 폭력으로 치닫게 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는 법을 통해 KBS로 하여금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를 정착시키고 국민에게
양질의 방송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며,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영방송과
수신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수신료는 무슨 근거로 받는 것입니까?
방송법 제64조는「텔레비전방송을 수신하기 위하여 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수상기를 등록하고
수신료를 납부하여야 한다」고 징수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수신료제도는 국회의 입법행위에 의하여 시행된 국가정책적 산물로서 특별규정에 의거 감면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수신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KBS를 거의 안 봅니다. 그래도 수신료를 내야 합니까?
99년 헌법재판소에서 판시한 대로 수신료는 공영방송사업이라는 특정한 공익사업의 경비조달에
충당하기 위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입니다.
다시말하면 수신료는 텔레비전방송 시청에 대한 반대 급부로서의 사용료가 아니고 수상기를
소유한 시청자들이 공영방송의 운영재원을 분담하는 공적부 담금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신료는 시청여부 또는 어느 방송을 시청하는가에 관계없이 납부해야 하는 것이며,
법적으로도 수신료 징수는 방송문화발전과 공공복지향상을 위해 헌법상 허용된 필요하고도
합리적인 재산권 제한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입니다.

 

어제 밤에 꽤 길게 썼었는데 날라가고 자동완성된 글만 남아, 오늘 다시 쓰려다 다시 쓰기는 귀찮고 해고 그냥 올린다.

 

언론이란 것은 삶의 일부분인 동시에 생활방식이다. 언론을 말하기 전에 인간을 과학적으로 먼저 따져보면

인간이란 어떻게 보면 큰 울림통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와 원자가 떨리는 입자이자 파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란 울림통은 떨림(진동)을 가지고 있고 그 떨림을 소리로 낸다. 인간이란 울림통은 소리를 내는 존재가 아닐가 하는 것이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 무생물은 각각의 고유한 진동 즉 소리를 가지고 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이 군집생활을 하고(식물도 군집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소리로 의사를 교환 하는 것은

건강한 생명활동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생명력 자체를 증진시킨다. 인간이 동물이 혼자일 때보다 무리지었을 때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는 힘이 강해지는 이치는 누구나 알 수 있다. 또 과학자들의 실험에 의하면

감정과 정신을 파동(소리,울림)을 통해 교환하는 개체와 개별개체의 수명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전문적인 과학이론은

직접 찾아보길. 내가 아는 것은 직관적인 것이고 신문이나 서적에서 읽었던 기억의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만나고 감정과 정신을 교류하고 교환하고 공유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본능인 것 같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장황한 과학이야기를 했다.

또 사회와 생태계(환경)에 속한 인간은 신앙과 종교를 가진다. 인간이 종교를 가지게 되는 이유는 진리(말씀)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절대자, 성인의 가름침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고통(한계)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욕구의 발로가 종교의 기원이 아닐까 한다. 신이 있건 없건 인간은 자연의 부분이고 불완전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인간이 갈구하는 대상은 완벽한 존재, 절대자 신이 아닐까 한다.

신은 우리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 신을 믿는 현세의 인간들을 보면 교회를 믿는 것인지 종파의 교리를 따르는 것인지 목회자에 의지하는 것인지 우상(진리가 아닌 또는 말씀이 아닌 말이나 대상)을 섬기지 말라는 신의 가름침을 이해한 것인지 회의가 든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었는데 종교적 인간의 근본에도 말씀 즉 진리 앎의 추구 지혜의 전승 등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인간은 또 학습과 교육을 하는 존재이다. 교육에 목숨을 건 존재라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른다. 이 학습과 교육의 근본에는 불행했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는 확고한 인류애의 의지가 있는 것이다. 불완전한 피조물이 생산한 생산물의 부족함을 메우려는 인간의 피, 땀, 노력, 시간이 있었다. 노하우의 전승또한 교육의 목적이다. 이런 교육하는 인간의 근본에는 그 사회 생명체 공동체의 유지를 갈구하려는(지속공존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인간이 양심에 귀 귀 울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양심과 진리에따라 표현하는 행위는 전승하는 행위가 바로 언론이다. 이런 언론을 누군가 네트워크통신기술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장악하게 되면 인류가 겪게될 불행은 그 이전 세계 불행인 신분의 제약 정치권력의 횡포에 비할 바가 아닐 것 같다. 전세계는 지금 18세기에 확보한 천부인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과도기에 있지 않나 싶다.

바로 인간의 소통공명권의 확보가 당면한 대한민국의 절실한 과제인 것 같고 그 첫 걸음은 언론개혁이 아닐까 싶다. 더 구체적으로

깨어 있는 시민 모두가 언론이 무엇인지 수신료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주관을 가지는 것 내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파문 인과관계 순환관계 .... 문자 말 언어에 대해서도 썼었던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