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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6주년 특집]‘10초 부팅’ 노트북, ‘5분 급랭’ 냉장고…느린 가전·통신은 생존불가 - 경향신문

pudalz 2012. 10. 5. 06:20

[창간 66주년 특집]‘10초 부팅’ 노트북, ‘5분 급랭’ 냉장고…느린 가전·통신은 생존불가

[한국인의 속도전](2) 전자제품의 속도경향신문|홍재원 기자|입력2012.10.04 21:32|수정2012.10.05 00:14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지난해 흥미로운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국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2010년 한 해 동안 올라온 정보기술(IT) 관련 글을 전부 모아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 보려는 시도였다. 이른바 '빅 데이터' 분석이다. 수십만건의 글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삼성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전자제품은 무조건 빨라야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4일 "삼성 반도체사업부는 전자제품의 기본이자 핵심인 부품을 만드는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이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실시했다"면서 "느린 제품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이었으며 용량보다 오히려 속도가 빠른 제품에 관한 호평이 두드러졌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이 조사결과를 활용해 제품 속도 향상에 총력을 다했다.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반도체 제품 가운데 SSD가 있다. 한마디로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 덩어리로 CD 형태의 저장장치를 대신하는 개념이다. 기존 제품은 하드디스크보다 읽기·쓰기 속도가 2배가량 빨랐지만 삼성은 이 성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10월에는 하드디스크 대비 속도가 3배인 SSD를, 지난달에는 5배짜리를 출시했다. 기존 하드디스크 환경에서는 사진 100장을 한꺼번에 띄우는 데 최소 3~4초 이상 걸리지만 최신 제품을 장착한 PC는 0.7초 만에 사진이 열린다.

▲ 용량보다 속도에 더 호평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이
삼성·LG 등 경쟁력 키워
마케팅에도 '빠름빠름' 열풍


반응은 뜨거웠다. 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 SSD 신제품을 사서 직접 하드디스크 대신 끼워넣는 소비자가 급증했다"며 " '속도전'에 주목한 결과 PC 최신 저장장치가 기업간거래(B2B)에서 소비자시장거래(B2C)로 확장되는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요구는 전자제품 쪽에선 가히 '종교적'이라고 부를 만하다. 조금만 반응속도가 느려도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쓰레기'란 악평이 따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업체들이 세계적인 위상으로 올라선 데는 이런 국내 시장의 특성이 적잖게 기여했다. 속도면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내놓아야 당장 안방 시장에서 '화'를 면할 수 있다보니, 이 제품들은 해외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요즘 전자제품의 '대세'인 스마트폰도 속도가 생명이다. 통화기능뿐 아니라 PC도 대신해 인터넷 콘텐츠를 활용하는 기기로 사용되니 더욱 그렇다. 애플이 주도한 아이폰 시리즈는 사용자환경 측면에서 혁신적이었지만 국내 업계는 빠른 구동 등 '스펙'으로 맞섰다. 삼성전자는 자체 구동칩(AP)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를 구현했고, 결국 이런 기술력은 스마트폰 점유율 세계 1위 달성으로 이어졌다.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2 등 신제품은 모두 두뇌가 4개인 칩(쿼드코어)을 사용한다. LG전자의 옵티머스G도 퀄컴의 쿼드코어를 쓰며 속도경쟁에 나섰다. 미국 애플의 아이폰5가 두뇌 2개짜리(듀얼코어) 제품인 것과 대조적이다.

10초 전쟁이 벌어진 제품도 있다. 국내 노트북 부팅 시간은 10초 안으로 당겨졌다. LG전자의 '울트라북' 신제품은 전원 버튼을 누른 뒤 단 9초 만에 부팅이 완료된다. 삼성 '시리즈9'은 9.8초 만에 부팅되고, 대기모드에서 작업 전환시간은 단 1.4초에 불과하다. 기다리는 데 인색한 국내 환경에 맞추다보니 100m 달리기처럼 신기록 경쟁이 펼쳐지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제품 경쟁력으로 연결된 것이다. 여전히 해외 제조사들은 10초 벽을 깨지 못하고 있다.

속도에 집착하는 국내 소비자들을 겨냥한 아이디어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맥주캔을 5분 만에 시원하게 만드는 LG전자 '5분 급속' 냉장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카메라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해 찍은 사진을 SNS에 바로 올릴 수 있는 삼성전자의 '스마트 카메라'도 있다.

국내 통신사들도 차세대 통신망인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를 지난해 일찌감치 도입했다. 기존 3세대 네트워크에 비해 5~7배 빠르고 와이브로보다 2배가량 빠른 전송속도를 자랑한다. SK텔레콤은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롱텀에볼루션 서비스를 상용화한 이후 지난 1월 세계 최초로 100만 고객을 돌파했다.

속도 마케팅은 브랜드 파워를 좌우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KT의 '빠름 빠름' 광고는 타사보다 롱텀에볼루션 전국망 구축이 뒤처진 것을 뒤집기 위해 기획됐다.

KT 관계자는 "대다수 통신망 사용자들이 속도를 가장 중시하고 있어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광고를 만들게 됐다"며 "빠름이란 가사와 그림 일부를 번지게 하는 '모션 블러링' 아이디어가 그래서 탄생했다"고 밝혔다.

이런 기법을 통해 해당 광고는 한 설문조사에서 66.9%의 인지도를 보여 통신3사 롱텀에볼루션 광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국내 전체광고에서 18.8%로 1위를 차지해 2위인 갤럭시S3 광고(8.6%)를 크게 앞지르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속도에 관한 국내 소비자들의 갈망을 브랜드 이미지로 연결한 사례"라고 자평했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은 제품과 통신망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 경쟁력을 확보했다. 자연스럽게 세계 시장에서도 통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 TV 등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LG는 액정화면(LCD), 세탁기 등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고 TV 등에서는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시장의 위상도 달라졌다. 소비자들이 워낙 속도에 민감하다보니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한국을 주요 '테스트 마켓'으로 삼고 있다.

지난달 방한한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은 "한국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온 동네에 스마트폰이 존재한다"며 "정보기술 혁명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라고 평가했다.

<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

 

 

 

 

ㆍ[한국인의 속도전]
ㆍ연간 구입비용 12조원

[창간 66주년 특집]한국 휴대폰 교체주기 일본의 절반… 10명 중 7명이 약정 만기 전에 바꿔

최병태 선임기자 cbtae@kyunghyang.com 입력 : 2012-10-04 21:40:52수정 : 2012-10-04 23:45:40

‘당신은 휴대폰을 얼마나 자주 바꾸십니까.’

휴대폰은 가전제품과 정보기술(IT) 기기를 통틀어 교체 주기가 가장 짧은 제품으로 꼽힌다. 최형환씨가 활동하는 커뮤니티 클리앙은 최근 휴대폰 교체 주기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클리앙은 휴대폰 등 정보기술 기기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고 휴대폰을 거래할 수 있는 사이트다.

설문조사 결과 휴대폰 교체 주기는 6개월 미만 6%, 6개월~1년 미만 15%, 1년 이상~2년 미만 46%, 2년 이상~3년 미만 27%, 3년 이상 3%로 나타났다. 휴대폰 약정 주기가 보통 2년인 점을 감안하면 10명 중 7명이 약정 만기 또는 만기 이전에 휴대폰을 바꾸는 셈이다.

 


일반 가정의 냉장고 교체 주기는 통상 10년으로 알려져 있다. 클리앙 설문 조사를 보면 가정에서 냉장고 1대를 바꿀 때 휴대폰 사용자들은 같은 기간에 5대, 많으면 10대를 바꾸는 것이다.

한국인의 휴대폰 교체 주기는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일본인 교체 주기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통신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를 휴대폰 교체 전쟁의 계절로 예상한다. 지난 9월과 이번달에 아이폰4, 갤럭시S 이용자들의 2년 약정이 끝나 새 제품으로 바꿀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올 하반기에만 300만대 이상의 휴대폰 교체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유력 단말기 제조사들이 이에 맞춰 갤럭시노트2와 옵티머스G 등 신형 단말기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한국인들의 휴대폰 교체 시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다 보니 국민들의 휴대폰 구입 비용만 연간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이 최근 이동통신 3사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동전화 단말기의 빈번한 교체와 고가의 스마트폰 구입 비용 등으로 인해 가계통신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권 의원은 “스마트폰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2009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42개월 동안 이동통신 3사 단말기 매출을 전체 가구수로 나눠 가구당 단말기 구입 비용을 산출한 결과 단말기 구입 비용이 연간 12조원이나 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휴대폰 단말기 제조사는 주로 80만원 이상의 고가 스마트폰을 출시해 출고가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한국의 출고가가 국외 판매가에 비해 평균 20%(아이폰 제외)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소비자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보기술 기기들이 판매량이 증가하면 성능은 개선되고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에 비해 스마트폰은 많은 판매량에도 출고가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권 의원은 “최근 10만원짜리 갤럭시S3 논란에서도 드러났듯, 정보력과 구매 시기 등에 따른 단말기 구입가의 편차가 과도한 상황”이라면서 “단말기 가격 정상화와 올바른 정보 제공으로 합리적인 단말기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ㆍ[한국인의 속도전]

[창간 66주년 특집]인터넷 속도 세계 최고…LTE서비스도 최초로 전국망 갖춰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입력 : 2012-10-04 21:25:26수정 : 2012-10-05 00:17:06

 

 

한국인 가운데는 해외여행이나 출장 때 인터넷 속도가 느려 답답함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 그만큼 인터넷 속도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광통신망을 활용한 초고속인터넷(광통신LAN) 가입자는 100명당 20.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3위인 스웨덴(9.7명)과 비교해도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미국(1.9명), 독일(0.2명)은 우리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나마 2위 일본이 17.2명으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전체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1위는 스위스로 39.9명이다. 한국은 35.4명이다. 하지만 초당 100Mbps급 속도인 국내 네트워크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4일 “다른 선진국은 인터넷망 속도가 실질적으로 10~20Mbps급인 데 비해 국내 이용자들은 인터넷 가입자의 86%가 100Mbps급 인터넷망을 사용한다”며 “세계 어느 국가보다 인터넷망 속도는 빠른 편”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인터넷망 관련 신기술이 나오면 업계에서 먼저 나서 보급했다”며 “속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0년부터 수도권 일부 아파트단지 등을 지정해 시범적으로 기가 인터넷 사업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보급된 인터넷망 속도는 기존 초고속 광통신보다 10배 빠른 1Gbps 수준이다.

국내 인터넷망은 1982년 서울대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사이에 1.2Kbps 전용회선이 깔리며 첫선을 보였다. 그러다 1994년 PC통신으로 불리는, 전화선과 모뎀을 통한 인터넷망이 보급되면서 채팅과 각종 모임방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후 인터넷망 속도는 나날이 발전했고, 이를 활용한 커뮤니티와 미니홈피 등 독특한 네트워크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다.

무선통신망도 급속도로 고속화하고 있다.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는 세계 최초로 전국망을 갖췄고 이미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했다. 롱텀에볼루션 시장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스마트폰 제조사 LG전자는 세계시장에서 이 서비스 보급 속도가 느려 답답해하고 있을 정도다. 전 세계에서 롱텀에볼루션 시장이 열린 곳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뿐이다.


[창간 66주년 특집]한국의 속도전, 이대로 좋은가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ㆍ경향신문 창간 특집 기획

한국 사회는 지금껏 속도전을 장려해왔다. 모든 사회가 속전속결로 돌아갔다. 맨땅에 경부고속도로 428㎞를 닦는 데 겨우 2년5개월이 걸렸다. 정부는 ‘한국의 속도’를 자랑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완공한 후 기념탑을 세웠다.

한국의 속도는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을 이룬 원동력이었다. 전쟁 직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60년도 되지 않아 2만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한국 사회 전체가 쉴 새 없이 달리고 또 달려온 결과다.

한국은 지금도 세계 최고의 속도를 자랑한다. 10초도 안 걸려 부팅이 완료되는 노트북이 출시됐고, 맥주 캔을 5분 만에 시원하게 해주는 냉장고가 나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더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휴대전화가 출시된다. ‘빠름~빠름~빠름~’이라는 광고 후렴구는 올해 최고 유행어다.

그러나 한국인 대부분은 행복하지 않다. 2010년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이 30명을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10대 사망원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자살이다. 죽음조차도 빠른 사회다. 반면 결혼율과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은 1.24명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빠른 것을 원할수록 속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사회 전체에 피해를 입힌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바쁘다. 속도전을 통해 축적한 그 많은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제 제동을 걸어야 한다. 페달에서 발을 떼도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 다시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다리로 버티고 서서 주위를 둘러봐야 할 시점에 왔다. 경향신문이 창간 66주년을 맞이해 ‘한국인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창간 66주년 특집]‘인생은 10대에 결정된다’는 조급증에 초등생부터 속도에 치여

이혜인·곽희양 기자 hyein@kyunghyang.com 입력 : 2012-10-04 21:37:12수정 : 2012-10-04 23:42:

ㆍ[한국인의 속도전](4) 죽음의 속도 - 빠르게 늘어나는 10대 자살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ㄱ군(16)이 지난달 20일 한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한강에 투신하기 직전 죽음을 암시하는 메모를 남겼다. 경찰은 ㄱ군이 남긴 메모와 유족들의 진술을 토대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결론지었다. ㄱ군은 2학년에 올라가면서 1학년 때보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교 2학년인 ㄴ군(14)도 지난 2월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ㄴ군은 몸을 던지기 전 온라인에 “공부가 어렵다. 학원 다니기가 힘들다”는 글을 남길 정도로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10개월 동안 중·고교생 1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자살원인으로는 성적비관과 학교폭력 등이 꼽혔다. 지난달 13일 자신이 살던 아파트 창문으로 뛰어내려 숨진 ㄷ군(18·고3)도 수능시험을 앞두고 성적 때문에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자살이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10대(10~19세)는 373명에 달한다. 10년 전 223명에서 67.3%나 증가한 수치다. 자살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10대 사망원인 1위는 사고나 질병을 제치고 자살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10대 청소년들이 죽음의 속도전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속도전으로 상징되는 성장만능주의에 내몰린 10대 청소년은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까지 하고 있다. 사진은 10대 청소년의 자살 순간을 표현한 그림.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효율·속도 중시하는 사회
학력·학벌만이 ‘사다리’

▲ 초교 사교육·고입 재수까지
죽음을 탈출구 삼을 정도로
10대들 과도한 경쟁 시달려


한창 꿈을 키워 나가야 할 1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왜 자꾸 늘어만 갈까.

전문가들은 각종 통계상담 경험을 근거로 “초·중등생까지 내려온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청소년 통계’를 살펴보면 2011년 한 해 동안 1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청소년(15~19세)은 10.1%에 달했다. 자살을 생각한 학생들 중 절반이 넘는 53.4%가 ‘학업성적·진학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죽음을 탈출구로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학업 스트레스는 지금까지 고등학생들에게만 국한됐지만 최근엔 초·중학생까지 그 연령대가 낮아졌다. 2010년 기준으로 초등학생의 86.6%가 좋은 성적을 목표로 사교육을 받고 있다. 청소년 백서와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통계를 분석한 결과 전국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초등학생은 2002년 6만4557명에서 2011년 79만5734명으로 12.3배나 증가했다. 이 중 학업과 진로 때문에 상담을 받은 초등학생은 17%에 달했다.

10대는 중학교에 입학해도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고교입학 재수’도 불사한다. 2010년 전체 고등학교 입학생 중 재수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0.77%로 2006년의 0.32%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교육현장 종사자들은 10대들이 과도한 학업 경쟁에 내몰리는 것은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경쟁 분위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 사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등 기득권 범주와 비기득권 범주가 분명하게 구별돼 있는데 한 번 기득권 범주에서 밀려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 입시 등에서 한 번 탈락하면 극심한 차별을 받는다고 판단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탈출구로 높은 학력을 요구하다 보니 10대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선진 경기 연천군 전곡중학교 교사는 “정부가 선생님들까지 경쟁시키니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교과부가 학생 중도 탈락률과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기초미달된 학생 수 등으로 교사·학교를 평가하면서 교사들조차 경쟁구도 안에 매몰되면서 아이들에게 경쟁심리를 심어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 10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른들이 과도하게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구조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위계질서화된 교육체제는 사회적 선택으로 결정된 만큼 채용과 승진, 임금 등에서 학력과 학벌로 차별하지 않는 법안을 마련해 사회 구성원에 대한 차별체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도 “경쟁에서 탈락해 실직·해고 상태에 놓이더라도 다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복지체계를 확보하는 거시적 접근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학교 안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이 교사는 “학업성취도평가를 없애고 일부 학교에서 아이들의 학업성적에 따라 선생님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근 명지전문대 청소년교육복지학 교수는 “동아리 활동을 학업성과로 인정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찾는 활동을 입시에 반영하는 등 다양한 인재 양성의 틀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창간 66주년 특집]“학교도 배움도 선택…‘내가 원하는 삶’ 준비하고 만들어”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입력 : 2012-10-04 21:37:07수정 : 2012-10-04 22:47:35

ㆍ[한국인의 속도전]‘제도권의 길’ 거부한 10대들

명문대와 고소득 직장으로 이어지는 소위 ‘성공 코스’를 벗어난 10대들이 있다. 이들은 입시를 위한 공부를 거부하고 대신 자신의 정체성과 꿈을 찾는 공부에 열심이다. 국내에서 대안학교는 실험단계이지만 10대들은 이곳에서 제도권 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최훈민군(17)은 디지털 특성화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지난 5월 ‘희망의 우리학교’를 설립했다. 최군을 포함한 10명의 학생들은 이 학교에서 공동체 예술과 독서·사회 토론, 영어, 한국사 등을 공부한다. 학생들은 포토샵, 철학 등 자신 있는 주제를 다른 학생에게 직접 가르치는 1인 1강의도 진행한다. 학교 운영은 학생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현직교사·작가·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재능기부 형태로 이들의 수업을 돕는다. 교사가 아닌 학생이 중심에 선 새로운 교육실험이다.

최군은 “현재의 입시 제도 아래서 학생들은 단순히 시험 하나로 상·중·하 계층으로 나뉜다”면서 “학생의 개성과 사고를 존중하고, 주류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과는 다른 삶을 꿈꾸기 위해 학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안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김정산군(19)은 남들보다 한 학년이 느리다. 지난해 인도에서 자원봉사를 하느라 1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에서의 자원봉사는) 내 삶에 어울리는 색깔이 무엇인지 찾는 시간이었다”면서 “남들보다 조금 늦거나 빠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안학교 졸업생들은 어떨까. 그들도 자신의 꿈을 가꿔 나가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배우는 김민영양(19). 남들과 비슷하게 대학을 진학했지만, 적어도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달랐다. 인권 문제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쌓고 싶어 대학에 진학한 그는 “대학은 목표가 아니라 삶의 한 수단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양은 대안학교에 다니는 동안 인권영화제와 필리핀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친구들은 매일 밤 12시까지 학원독서실을 다니며, 모의고사에서 틀린 문항 개수를 확인했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김양은 “ ‘나만 뒤처진 채 살아가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과 매일매일 싸웠다”고 했다. 대학에서도 친구들이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걸 보면 여전히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양은 그러나 “남들보다 스펙은 한참 뒤처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대안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진학했던 대학을 포기하고 음악강사로 일하는 이재욱씨(26)도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씨는 마을 살리기 사업을 구상 중이다. 그는 “입시 교육, 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놓쳤던 부분이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나 묻지마 범죄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면서 “한국 사회에 굳어져 있는 ‘성공’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아가는 실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창간 66주년 특집]물건 사면 ‘무료 배달’…미국·캐나다선 상상도 못해

박순봉·이효상 기자 gabgu@kyunghyang.com 입력 : 2012-10-04 21:35:00수정 : 2012-10-04 22:48:42

ㆍ[한국인의 속도전]

캐나다에서는 배달을 찾아보기 힘들다. 피자와 혼자 들기 힘든 가구를 제외하고는 배달 가능한 품목이 거의 없다.

5년 전 캐나다로 건너간 김진오씨(30)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캐나다의 슈퍼마켓을 찾았을 때 놀랐다고 말했다. 배달이 안되는 것도 한국과 다른 낯선 점이었지만 점원과 손님이 이웃처럼 대화를 나누는 여유로운 풍경도 색달랐다.

캐나다 상점의 점원은 손님의 이름을 기억해 근황을 묻고 상품을 추천하는 등 대화를 하며 천천히 물건값을 계산한다. 김씨는 “캐나다의 상점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건을 사러 온 손님과 유대감을 형성해 좋은 경험을 남기는 데 무게를 둔다”며 “한국은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겨 각종 배달 서비스가 발전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 전 미국으로 이민간 오혜선씨(41)는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해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감탄했다. 주문한 다음날 오전에 책이 도착했고, 배송업체는 배송진행과정을 문자메시지로 일일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오씨는 “한국에서는 배달과정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며 “한국의 택배서비스는 정말 빠르고 정확하다”고 말했다.

오씨는 한국의 음식배달 서비스도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에 사는 아줌마들의 로망이 한국에서처럼 다양한 음식을 배달해 간편하게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여름 한국에서 머문 7일 동안 3번 이상 치킨과 맥주를 배달시켜 먹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한국의 빠른 배달은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바쁜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교통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배달시간을 정해 배달하는 분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판매자들이 모든 물건을 무료로 빠르게 배달해주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말한다. 외국에서는 배달이 별도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배달되는 품목도 적고, 배달상품의 값은 더 비싼 것이 일반적이다.

전 세계에 체인점을 가진 다국적 기업 맥도널드도 한국 등 일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에서만 배달을 실시하고 있다.

세종대 외식경영학과 정유경 교수는 “맥도널드는 본거지인 미국에서는 뉴욕 맨해튼의 극히 일부 체인점만 배달서비스를 하지만 한국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달을 전면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처럼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를 경험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배달 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창간 66주년 특집]조금만 늦어도 짜증 …오늘도 목숨을 걸고 ‘번개 출동’한다

이효상·박순봉 기자 hslee@kyunghyang.com 입력 : 2012-10-04 21:34:50수정 : 2012-10-04 23:34:56

ㆍ[한국인의 속도전](3) 배달의 속도

지난달 27일 만난 중식집 배달노동자 최범주씨(32)는 오후 2시에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3시가 넘어야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이날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사가 잘 안돼 점심시간이 당겨졌다. 중식집은 점심시간에 가장 바쁘다. 배달원 한 명당 하루 평균 30번의 배달을 가는데, 그중 10번 이상이 낮 12시부터 1시 사이에 몰려 있다. 최씨는 이날 6번 배달했다.

최씨는 배달일을 7년째 하고 있다. 좋아하는 오토바이도 타고 돈도 벌겸 일을 하고 있지만 배달일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손님들의 ‘하대’와 ‘급한 성질’ 때문이다. 최씨는 “좋은 손님은 좋지만 막말하는 사람과 성질 급한 손님들 때문에 싸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일이다. 주문이 평소의 2~3배나 많은 주말 점심 시간대였다. 배달원 6명이 힘 닿는 대로 주문을 처리했지만 어쩌다 보니 한 곳에 배달이 1시간이나 늦어지게 됐다. 오토바이의 가속페달을 최대한 밟아 도착했으나 손님은 딱 한마디만 했다. “꺼져.” 최씨는 중간에 주문 취소도 하지 않은 손님에게 속으로 화를 내면서도 음식을 도로 가져갈 수는 없어 받아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결국 음식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서울 시내 한 중식집의 배달원이 4일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배달을 나가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배달노동자 72% 사고 경험
패스트푸드와 경쟁서 촉발

▲ 인구 도시 집중화로 심화
공짜배달 노동착취 이어져


한국은 음식배달 문화가 유난히 발달한 나라다. 중국음식과 피자, 치킨,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는 물론, 설렁탕, 해물탕 등 일반 음식까지 배달이 안되는 음식이 없다.

흔히 배달의 ‘생명’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과거 고려대 앞 중식집에 ‘번개’라는 별명을 가진 배달원은 어느 장소든 가장 빠른 시간에 음식을 배달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한양대 인근 중식집에서 일하는 배달 경력 6년의 배달노동자 정슬기씨(27)는 “특정 시간에 주문 물량이 몰려 있기 때문에 항상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닌다”며 “밥 먹는 것도 빨라졌고 일상생활도 빠릿빠릿해졌다”고 말했다.

사실 식사를 하는 것이 초를 다투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배달시키면 무조건 빨리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문한 음식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다시 전화를 걸어 재촉하고, 심지어 주문을 취소하거나 음식을 되돌려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들은 최대한 신속하게 배달한다는 것으로 손님을 끌고 있고, 이 과정에서 배달원들은 교통사고 등 각종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1 음식배달 근로자 실태조사’를 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조사 대상 음식점 344곳 중 35.2%인 121곳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사고가 난 음식점은 3년 동안 평균 4건의 사고를 경험했다. 조사 대상 배달노동자 471명 중 130명(27.6%)이 교통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자 배달노동자 교통사고율이 37.3%로 가장 높았고, 이어 중식 배달, 치킨 배달 등의 순이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음식배달 노동자 4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교통사고를 경험했다는 노동자가 306명으로 72.7%에 달했다. 1분이라도 빨리 밥을 먹겠다는 사람들의 욕구에 배달노동자들은 생명을 걸고 있는 셈이다.

서울 자양구의 한 치킨 체인점에서 배달일을 했던 하병철군(18)도 두 달 전 큰 사고를 당했다. 밤 11시쯤 급하게 배달을 나갔는데 뚝섬역 근처에서 신호위반을 했다가 자전거와 부딪친 것이다. 그나마 큰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꺾어 자전거 탄 사람은 손목만 삐는 경상을 입었다. 하지만 하군은 광대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1주일간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완치되려면 6개월은 걸린다고 했다. 가게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해줬는데 대신 하군의 병원비는 절반만 내줬다. 산업재해 보상은 꿈도 꿀 수 없다.

배달노동자들의 사고가 잇따르자 여론의 비판도 일고 있다. 얼마 전 모 피자 체인업체가 30분 내에 배달하지 못하면 음식값을 받지 않겠다는 마케팅 전략을 내세우자 “배달원들만 죽어난다”는 여론의 비판이 봇물쳤다. 업체는 결국 이 전략을 철회했다.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보편화된 음식배달 문화가 과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의대 외식산업경영학과 우문호 교수는 “1979년에 ‘테이크아웃’(음식을 포장해서 들고 가는 방식)이 되는 패스트푸드점이 한국에 처음 들어오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배달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1979년 이전에는 거의 배달을 하지 않던 중식집들이 이른바 ‘철가방’을 들고 배달의 선두주자로 나서면서 배달 문화가 급속히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패스트푸드점과 국내 요식업체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배달 문화가 발전했다는 얘기다.

문화평론가인 경희대 이택광 교수는 한국에서 배달이 성행하는 이유로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진행된 인구의 도시집중화를 꼽는다. 이 교수는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에 살게 되고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짜로 빨리 배달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배달 문화가 보편화된 사회임에도 배달노동자들에게는 적절한 비용이 지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배달을 시킨 사람들이 집에서 빠르고 편하게 식사를 할수록 배달노동자들의 처우는 악화된다. 한국노동연구원 실태조사를 보면 배달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9시간 이상씩 주 6일을 일한다. 5명 중 1명 이상은 하루도 쉬지 못한다. 근무 중 쉬는 시간이 정해진 경우는 10명 중 1명(5.9%)이 안되고, 절반 이상은 배달이 없을 때가 쉬는 시간이라고 답했다. 38%는 아예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한다.

이택광 교수는 “공짜배달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만 이익을 얻는 구조를 만든다”며 “피고용자들의 노동착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효상·박순봉 기자 hslee@kyunghyang.com>

 

 

 


[창간 66주년 특집]수평선의 노래

고은 | 시인

고은 시인이 경향신문 창간 66주년을 축하하는 뜻으로 직접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하늘과 땅이 부딪쳐 비바람이 일고 역동적 에너지가 분출하는 이미지를 표현한 것으로, 경향신문이 역동성과 창조성으로 우리 사회의 정론 문화를 선도하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수평선의 노래
경향신문 창간 66주년에 부쳐


고 은

폭염이었느니라
저 태양 흑점과
지상의 묵은 바위덩어리 맞섰느니라
후레자식 화석같이
아무런 홑옷자락 가리지 않고
성난 뼈다귀 드러내어 맞섰느니라
그리도 작열의 시간이었느니라
홍수졌느니라
단칸방
물 들어와 빈 양재기 둥 떴느니라
밤이면
무쇠 흑암에 별들 다 묻혔느니라
지난 봄날
추운 지리산 산수유꽃
약산 진달래꽃
다 쳐박아 잊어먹었느니라
벼락쳤느니라
우레 울부짖었느니라
어느 귀청으로도
안들릴듯
들릴듯
그런 꺼므꺼므한 속삭임
어디 갔느뇨
그 미소
그 미풍
어디메 갔느뇨
이러구러
빨가벗고 여름날의 모진 관능을 다하여
분노같이 견디는 바
증오같이 이겨내는 바
그런 아픔 의지의 오늘에 닿기까지
오래고 오랜 지옥의 쇄신으로
성난 사자로 청하노니
아기로 청하노니
부디 왕의 가을만이 아닐 것
인민의 가을일 것
몇백광년으로 오고야 말
까마아득의 가을의 가을일 것
풀들의 생애
나무들의 생애
무릇 짐승들의 조상대대 그 생애
그 삼라만상 속속들이 목숨들의 생애
그네들의 가을일 것
지하의 뿌리에 아뢰어
지상의 잎새 단풍 들고
영롱한 소리 먹은 열매들 이토록 익었느니라
이토록 익은
우리 내면의 가을로
이 가을이 왔느니라
마침내 내면은 외부로 문 활짝 열어
북 울려라
쇠북 울려라
여기 멍든 앙가슴 새로 벅차고
여기 굽은 등뼈 마디마디
북풍한설 앞두고 소리치며 일어섰느니라
푹 썩었느니라
푹 썩어 새 자손들 솟아나는
그 썩은 땅의 조상 혼령들도
함께 돌아왔느니라
여기 두 팔 들어올려
여기 두 허벅다리
반공(半空) 떠받쳐
또 다시 험한 걸음 내디디는
오는 날도
오는 달도
오고 오는 해들도
우리네 겨울과
우리네 봄 여름과
우리네 태고 같은 가을의 꿈마다
우리네 단풍 드는 진실들
차례차례 근친으로 오고 또 오고 있느니라
모든 기만 앞에
모든 교만 앞에
모든 야만 앞에
형제의 진실로 물결쳐 오고 있느니라
불멸인가
환생인가
우리네 푸른 울음의 하늘 아래
물결쳐
물결쳐
굳센 수평선으로 오고 있느니라

 


[창간 66주년 특집]경향의 제목에 드러난 ‘과속’… 한국 66년의 속도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