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 아이들이 서른 명쯤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는 시골학교 숭덕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어렸을 때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결손가정으로 분류된(에서 자란, 이게 애매하다 하여간 마을이 키운 ㅎ) 나는 승벽이 있었다. 동네불알친구들과 놀이를 하거나 어울리다가도 시비가 붙거나 싸움이 불거지면 우기거나 시시비비를 가려 꼭 이기려고 했다. 우기다 보면 싸울 일도 더 많아졌던 것 같다. 윗집 상철이는 공부를 못하고 매사 지는 편인데 놀이를 하면 거의 상철네로 모였고 나도 상철이를 좋아했다. 하여간 옳지 않으면 형들에게도 내가 옳음을 증명하려고 이기려고 했다. 벌로 때우면 때웠지 숙제를 해간 기억이 없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매사에 싸우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본능으로 느꼈는지 싸워 승부를 가르는 것을 줄였던 것 같다. 지지않으려고 시비를 가릴 때보다 동무들과 사이가 좋아진 것 같다. 애들 때야 어제 싸우고도 언제 싸웠냐는 듯 다음날이면 또 어울려 놀았지만 바뀌니까 친구들과 사이가 더 좋아졌다. 공부와 운동을 잘해서 여자애들에겐 인기가 많았었다. ㅎ 유일하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던 시절이다.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흠.
이야기를 뭉텅 건너 뛰어, 통진당 내부경선 사건이 벌어지고 만난 몇 분에게 반발하지 말고 반성의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정부의 불법에 의해 자행된 비통한 현장으로 함께 촛불을 들고 뛰어다녔던 내 입장에서 보면 참 억울할 것 같았다. 먼 얘길 하려고 했지 흠. 하여간 이후 통진당 당선자들의 입장, 반응을 언론,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실망스러웠다. 통진당 내부와 외부에서 가해지는 지적과 비판 모두 옳았다. 이 조언들은 달리 말해 너희가 바뀌면 우리가 함께 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통진당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쪽도 부정의 당사자로 매도된 집단도 반발하기보다 성찰해야 한다. 당내 조직의 신뢰가 굳건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진당의 궤멸이나 야권연대의 파멸을 바라는 세습옹호세력의 이간질이 조금만 개입해도 깨지기 쉬운 살얼음 판 위에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총선을 앞두고 내부경선을 거치며 출마의 기회를 차단당한, 출마를 지지했던 당원들의 상처(애증)도 아물지 않았음이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왜 함께 놀던 아이들이 나보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더 좋아하는지 문득 생각났다. 친구 사이에 내 입장이 옳고 시비를 가리려고 하면 친구가 멀어진다. 따 당하거나 외부의 지적이 있을 때는 내 생각엔 내가 아무리 옳아도 그만한 이유가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성찰을 하고 바뀌고,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그 억울함을 외부에서 밝혀주고 억울한 사람을 보호해주려고 할 것 같다. 고치라는데 반발만 하면 비판은 더 거세지고 상황을 갈수록 꼬일 것 같다. 심지를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든, 함께 들었던, 부정에 저항했던 시민들과 단체 중에도 매도된 당사자들이 명예, 자리, 금전적 보전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 의지가 만드는 역사를 위해 발로 뛴 것을 본, 살아온 길을 동행했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무들이 억울함을 밝혀줄 것을 믿고 내부대립과 의심을 멈추고 반성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내 탓이요 하고 반성하면 문제가 절로 풀릴 것 같다. 촛불을 기억하듯이 이 사회의 양심을 믿어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라도 당사자고 지금처럼 제3자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면 반발하고도 남을 심정 공감이 된다. 통진당 안에도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 놓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기에 휘말리기 보다는 나와 여러 사람, 사람이 만드는 오늘이란 역사를 내 손으로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새옹지마 전화위복 이라고 하니. 화산처럼 폭팔한 청년당원들의 분노의 바닥에 의심이란 용암이 끓는 것 같다. 동네 친구 청년의 피 속에 흐르는 용암을 의심이 아니라 인간이 만드는 역사에 두었으면 좋겠다. 쓰다 보니 거룩하고 이상해진다. 그냥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몇 마디 한다는 게 쓰니까 엿가락처럼 배배꼬인다. 상대적 결핍.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욕설, 비판을 귀담아 듣자. 여의도 희망캠프에서 어떤 피디님이 작은 잘못이 터졌을 때 매섭게 비판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이지도 모른다는 말이 생각난다.
다 죽느냐 사회를 살리느냐 당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