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은 무엇이 소중하고 지켜야 할 것인지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1997년 일로 기억합니다. MBC가 우리 낙농가들이 생산한 우유를 놓고 고름우유라고 보도해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이 고름이란 누런 고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낙농가들에게 유대를 지급할 때 우유품질을 가늠하는 두가지 잣대가 있었습니다. 세균수와 체세포수 입니다. 원유위생기준입니다. 체세포수는 병균과 싸워 이미 명을 다한 세포들의 시체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낙농가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우유를 고름이라고 호도한 MBC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그때 농가들은 지금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우유를 생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맞섰습니다. 당시에 저는 우유를 마시는 소비자들보다 우유를 생산하는 농가들 편에 섰습니다. 이후 많은 노력을 통해서 낙농가들의 원유위생 수준은 차츰 나아져 지금은 놀라보게 좋아졌습니다. 품질과 위생을 따지는 기준 또한 세균수 체세포수 유지방에 머물지 않고 다양화했습니다.
제가 이정희 대표 입장에서 당원들의 처지와 여건을 고민했더라면 저 또한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 주변사람들이 부족하다고해서 내치고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습니다.
사람이 있고 진보가 있다고 봅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적은 인원이라도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수언론들이 이정희 부부가 자신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간 언론들을 고발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뭇매를 몰아치고 있습니다. 마치 이정희가 빨갱이가 아닌 것이 들통나면 안될 것 처럼 말입니다.
저는 세계화에 앞뒤가 꽉막힌 벽창호로 남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이익과 시대의 변화는 생각지 못한채 막무가내로 한미FTA에 반대한다고 욕을 먹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작물과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면 그런 비난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가족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살았다는 말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가족을 버린게 아니라 스스로를 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자신과 한 몸과 같이 아꼈기에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자신의 아비와 어미, 그리고 친구, 자녀와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가치로운 사랑을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행위라 칭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설령 내 주변 사람들이 잘못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악의없이 진정을 다해 왔다면 그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비난받는 것을 방관하며 손가락질 당하는 걸 두려워 해선 안될 것입니다.
통진당 사태와 관련한 이정희 대표의 태도를 두고 국민보다 당원이 중요하냐는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이런 물음은 아이에게 아빠와 엄마중 누가 좋으냐?는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얘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보다는 무엇이 가장 사람다운 행동이냐?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냐? 하는 것을 되돌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정희는 보기드문 매력적인 정치인 입니다. 나태함에 빠져있던 나를 일깨운 사람들중에 한 분입니다. 통진당의 당권파를 편들고자 함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들이 파렴치범에다 빨갱이라 몰아부치는 비난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집권보다는 그들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가치라 여깁니다. 저의 얼숲 벗들 여러분! 구속받지 않고 스스로 마음깊이 기쁨이 넘치는 멋진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진보의 집권보다는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얼마나 줄이느냐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역량을 갖출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배려가 아닌가 합니다.
더 이상 갈 곳없는 그들을 몰아세운다면 그들이 갈 곳은 낭떠러지 밖에 없습니다. 통진당 당권파 사람들이 사람들에 의해 절벽으로 떠밀려야 할 정도로 잘못된 삶을 산 것은 아니잖습니까? 지금이 과연 이들을 몰아세워야 할 때인지, 누구를 다그쳐야 할 것인지 뒤돌아 보는 여유를 지녔으면 합니다.
외롭고 힘들어서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는 말은 자신을 미화시키려 한 것이 아닙니다. '외로움'과 '노무현'이라 뭔가 연상되는 게 없는지요? 그것은 이정희 대표가 애둘러 표현한 절망의 언어입니다. 부디 '진보'보다 '사람'을 살폈으면 합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사람'이상의 가치는 없습니다.
함께 해야 행복하다는 얘기는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고슴도치들이 너무 가까이 몸을 부비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듯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더 나을때도 있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좀 더 시간과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느낄 때,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함께 할 것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미 두사람이 함께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