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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이것이 문제다](1) “난 노동자다” - 경향신문

pudalz 2011. 6. 13. 13:03

[등록금 이것이 문제다](1) “난 노동자다”

정혁수 기자 overall@kyunghyang.com

입력 : 2011-06-10 21:43:49수정 : 2011-06-11 00:21:36

 

ㆍ학교 3일·알바 4일, 3년 만에 2100만원 빚… 낭만 없는 냉엄한 현실

“1주일에 학교 가는 날은 3일, 일하는 날은 4일… 그래도 저 대학생 맞죠.”

백석대 3학년 김문정씨(23·가명)는 ‘일하는 대학생’이다. 그는 주중 2일(수·금)과 주말 2일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대학을 다니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벌써 3년째다. ‘알바’ 인생이 힘겨워 대학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일’을 믿고 지친 자신을 채찍질하며 버텨나가고 있다.

6·10 민주항쟁 24주년인 1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6·10 국민 촛불대회’에서 학생과 시민 등 2만여명이 촛불을 든 채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촉구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김씨의 집은 수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5살 위인 오빠가 있다. 아버지는 택배업에 종사한다.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어서 수입이 불규칙하다. 식품회사 생산직 근로자인 어머니의 월급은 120만원 안팎이다. 그의 부모는 남매를 뒷바라지하느라 늘 쪼들렸다고 한다.

김씨는 캠퍼스의 ‘낭만’을 꿈꾸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처음 맞닥뜨린 건 냉엄한 ‘현실’이었다. 한 학기 등록금 380만원, 새 학기를 시작할 때마다 목돈 마련에 늘 애간장을 태웠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났다 싶으면 또 청구서(380만원짜리)가 나왔다.

“학자금 대출한도가 원래 4000만원이에요. 며칠 전 보니까 앞으로 사용 잔액이 1900만원 남아 있더라고요. 입학 후 3년 만에 2100만원의 빚을 진 채무자가 됐죠.”

김씨는 등록금에 보태기 위해 1학년 때부터 알바 생활을 시작했다. 주중과 주말을 합쳐 1주일에 4일 일했다. 주중 수·금요일은 집 근처에 있는 홈플러스 유아복 코너에서 오전 9시부터 하루 12시간 선 채로 일한다. 점심시간은 대중이 없다. 손님이 뜸한 오후 3시나 돼야 잠깐 자리를 비워 허기를 채울 수 있다. 환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고 있지만 매장 풍경은 왠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유모차 한 대에 100만원, 옷 한 벌에 10만~20만원 정도 해요. 물건을 팔면서도 ‘내가 결혼하고 출산하면 이런 물건들을 맘 놓고 사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먼저 드는 거예요. 신세대 부부의 결혼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말에 일하는 수원역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시간당 4110원을 받는다. 초과근무 수당 등을 합치면 시급 6000원 정도를 번다.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이 턱없이 적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일자리가 모자라니 이것도 감지덕지라고 받아들인다.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시작한 알바지만 가끔 넉넉한 또래들을 보면 속상할 때도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이 대부분 비슷한 또래예요. 그들이 6500원짜리 불고기세트를 주문해 먹는 걸 보면 ‘내가 한 시간 일해서 받는 돈(6000원)인데…’라는 생각이 들고, 괜히 눈물이 핑 돌아요.”

1주일에 3일(월·화·목)은 천안에 위치한 학교에 간다. 강의를 듣고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주로 친구들과 함께 해결한다. 점심값은 한 끼당 2500원꼴로 비교적 싼 편이다. 알바를 하면서부터는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 게 몸에 뱄다. 그래도 그는 “후배들이 밥 사달라고 하면 구내식당에선 사줄 수 있다”며 웃었다.

한때 꿈꾸었던 대학생 배낭여행도 이제 포기했다. 알바로 번 돈을 등록금 마련과 생활비에 쓰고 나니 배낭여행을 갈 여유가 없다. “솔직히 생활에 쫓기다 보니까 이젠 포기했어요. 같은 대학생이라고 하지만 방학 때 해외 나갔다 오는 친구들 보면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느껴져요.”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촛불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요즘. 김씨는 자신의 삶과 주변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촛불시위에 참여해 맘 놓고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외치고 싶어요. 하지만 생활에 매인 몸이라 이마저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홈플러스에서 밤 9시까지 일해야 하고요. 제발 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