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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흘러야 한다ㆍ4대종단 릴레이 기고](3) 서상진 신부

pudalz 2010. 5. 11. 10:59

[강은 흘러야 한다ㆍ4대종단 릴레이 기고](3)

 서상진 신부 | 수원가톨릭대 교수

 

                             호소하는 사제, 호도하는 정부

 

너희나 후손이 잘되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 - 신명기 30 장 19절

 

현 정부에 의해 강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성명서(2010년 3월12일)는 정부뿐만 아니라 학계, 법조계, 그리고 타 종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에서는 성명서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성찰하기보다는 (정부의) 홍보와 설명의 부족에 탓을 돌리며 주교들이 잘 몰라서 그렇다는 반응을 보이며, 훈계하며 가르치려고 하거나, 주교들을 회유하기 위한 개별적인 만남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신자들에게 올바른 종교적, 사회적 삶의 가르침을 심사숙고해 가르치는 주교들의 교도권에 대한 무시이며 침해이기에 심히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제들의 생명평화미사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명동성당과 팔당의 두물머리를 비롯하여 교구별로 여러 장소에서 매일 또는 매주 미사가 봉헌되고 있습니다. 또한 서명운동과 강순례, 기도회와 강연 등이 여기저기에서 함께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종교인의 정치참여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선거법 위반이라고 압력을 넣는가 하면, 모 교수는 사제들이 뭘 알아서 그러냐고 공영방송에서 말합니다. 정부의 일에 반대만 하는 사제들의 뇌구조가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확실히 다릅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더 중요시할 것인가에 대한 우선순위가 다르고, 삶의 목표와 인생관이 다릅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과학과 개발, 진보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행복한 삶의 기준이 다르고, 자유와 생명의 가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다릅니다. 희망과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귀중함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2000년 나온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엔트로피>에서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진보주의로 인한 무분별한 환경 파괴에 대해 ‘지금 우리는 후손들이 쓸 쟁기를 빼앗아 칼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생산의 도구인 쟁기와 죽임의 도구인 칼이 다르고, 개인적인 편의와 안락,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과 공동체적 안위와 공동선을 고려하는 것이 다릅니다. 당대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과 거시적인 안목에서 후손들에게까지 미칠 영향을 깊이 숙고하는 수고스러운 정책 설정이 다릅니다. 오직 인간만을 생각하는 것과 대자연과의 아름다운 공존을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춘계 주교회의를 마치며 발표한 주교님들의 입장 표명은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서 8 : 22)라는 성경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후손을 포함해 인간과 대자연이 죽음의 위협에 놓여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말씀이기에 선택되었습니다. 또한 성명서를 마치면서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너희나 후손이 잘되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신명기 30 : 19)라는 말씀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성명서는 위협당하고 있는 우리와 후손, 대자연의 생명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인간과 대자연을 우려하고 염려하는 표현이며, 깊은 성찰과 경솔하고 무분별한 개발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며, 양심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으나 생명에 해를 끼치는 일을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는 주교들의 성명서의 진의를 깨닫고, 인간과 대자연의 생명을 위협하는 4대강 사업을 당장 중지한 후, 교수와 전문가, 법조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방향을 재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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