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전망대] 일부 언론 도넘은 ‘천안함 소설’
한겨레 | 입력 2010.05.04 21:00
"기사와 소설의 차이는?" 만일 언론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나를 뭘로 보느냐?"며 버럭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이들이 과연 그 차이를 인식하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자주 있다. 천안함 사고를 보도하는 뉴스가 특히 그렇다.
지난달 30일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침몰 현장에서 천안함 재질과 다른 알루미늄 파편 몇 개를 수거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대변인은 "아직 그 파편이 어뢰 등 무기 파편인지, 다른 선박의 파편인지 등은 알 수 없고, 분석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거된 것은 아직은 작은 알루미늄 조각일 뿐이다. 그것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의미 있는 단서가 될 것인지, 아닌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신문은 알루미늄 조각이 북한에 의한 어뢰공격을 밝혀낼 중요한 단서라는 전제 아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정부가 '파편'이라는 화두만 던지면 언론이 이를 '결정적 증거'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지난 1일치 < 조선일보 > 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군이 수거한 알루미늄 조각이 어뢰 폭발의 파편이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파편의 알루미늄 재질이 중국이나 러시아제로 판명되면 그것이 바로 북한 개입의 증거가 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제? 러시아제? 파편분석 하면 나와'라는 제목의 이날 분석 기사는 "발견된 알루미늄 합금이 서방 국가 제품으로 판명 나더라도 북한과 연계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주장을 폈다. 제조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로 밝혀지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아니라도 '북한 어뢰'라는 가설이 뒤집히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천안함 사고 보도는 "만약에…"라는 가정법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만일 천안함 침몰이 북한 잠수함 소행이라면… 수심 얕은 오른편을 피해 무거운 중어뢰로 타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기사다. 침투 경로를 점선으로 표시하는 그림까지 그럴듯하게 그려 놓은 신문도 있다.
신문과 방송은 반면에 정작 추적해야 할 중요한 단서를 놓치고 있다. 사고 다음날인 3월27일 < 문화방송 > (MBC) 뉴스데스크는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천안함 침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 최원일 함장의 증언을 보도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충돌음과 함께 배가 직각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었습니다"라는 증언이다. 최 함장은 사고 당시의 소리를 분명히 '폭발음'이 아니라 '충돌음'이라고 표현했다.
함장인 해군중령이 폭발음과 충돌음을 구별 못할 정도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천안함 사고 원인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군, 그리고 일부 언론에 의해 거의 확정단계에 들어선 '어뢰 폭발'설과 이에 대한 반론으로 나온 좌초설이 맞서 있다. 따라서 함장이 들었다는 소리가 충돌음인지, 폭발음인지가 매우 중요해졌음에도 함장의 증언에 주목하는 언론이 없다.
천안함 사고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함장을 비롯한 생존 장병들이 원인조차 모르는 사고를 당했다는 부분이다. 더욱이 "북한의 공격을 받은 것 같긴 한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격했는지는 모르겠다"는 주장에 이르면 어처구니가 없다. 해군이 내놓는 단편적인 자료만 가지고 쓰는 '소설'보다는 해군 발표의 구조적인 허점을 건강한 상식을 바탕으로 추적하는 분석기사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성한표 언론인, 전 < 한겨레 >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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