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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천안함 침몰에 대한 이명박의 책임 - 경향신문

pudalz 2010. 4. 29. 14:17

[이대근 칼럼]천안함 침몰에 대한 이명박의 책임

이대근 논설위원 grt@kyunghyang.com     2010 04/28(수) 18:07

 

                                         

상상임신은 임신을 갈망한 나머지 실제 임신 징후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이 지금 바로 그 상상임신을 하고 있다. 이 사회의 주류인 보수세력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너무 깊어 어느 순간 확신하기에 이르렀고, 그 확신은 군사적 조치, 국제 제재, 전력 증강,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북한인권법 제정과 같은 다양한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과 일전불사를 각오하자”는 전 국방장관의 결의도 나오고 “시민다움의 절정은 공동체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을 때”라는 자칭 합리적 보수 논객의 선동도 있었다. 어느 새 국가의 자존, 조국의 명예, 애국, 원혼과 같이 비장미 물씬 풍기는 언어가 난무하고, 죽음과 죽임의 미학이 춤춘다. 마침 북한의 금강산 남측 부동산 동결·몰수까지 겹쳐 북한에 대한 적의가 깊어지고 남북간 긴장은 높아지며 남한 내부는 이명박 대통령 중심으로 결집한다. 그리고 현실은 비현실로 대체된다. 시민 다수는 이미 천안함이 북한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믿는다. 수병들은 북한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상상이 현실을 지배하는 한 북한 관련 증거가 나오지 않아도, 그래서 보복을 못하게 된다 해도 이명박과 보수세력은 그리 서운해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침몰의 진실을 계속 덮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북대화 7년간 이런일 있었나

그러나 천안함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원인에 의해 침몰했다. 이명박 정부가 10·4 남북정상 공동선언을 거부할 때 이미 침몰은 시작되었다. 선언대로 북방한계선에 남북 공동어로구역 및 평화수역을 설정, 분쟁을 종식시키는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구상을 이명박이 차버렸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 구상이 아니더라도 선언의 정신에 따라 대화하고 협력하는 자세만 가졌어도 남북 경색이나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는 피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대청교전처럼 남북이 무력 충돌하고, 북한이 보복을 다짐하고 그 보복을 피하기 위해 그 전에는 수위가 너무 낮다는 위험 때문에 엄두도 내지 않던 백령도 근접 항로를 새로 이용하는 무리를 하고, 결국은… 46명이 수장되었다. 아니, 당장 10·4 선언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대결 유발적 언행을 자제하기만 했어도, 급변사태니 하며 북한 붕괴에 기울인 관심의 일부를 화해노력으로 돌리기만 했어도 그들은 살아서 귀환했을 것이다. 대화 단절, 식량 지원 중단 대신 화해를 위해 볍씨만큼이라도 고민했다면 대청 교전도, 북방한계선을 향한 북한의 해안포 발사도, 그에 대응하기 위해 초계함이 한밤중에 긴박하게 움직이다 영문도 모른 채 침몰하는 사고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북이 대화하던 지난 7년간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경직성에 실망한 북한이 지난해 1월 전면 대결태세를 선언할 때 서해가 위험해졌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다리기 전략을 고수함으로써 우리의 안보, 우리의 생명은 북한의 선의, 북한이 도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기대와 행운에 맡겨지게 됐다는 사실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충돌 예방을 위해 대화에 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는지 생각해 보라. 이명박은 경계 강화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모르지만, 7년간의 서해 평화는 군사력 균형이나 남한의 압도적 전력이 아니라,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공감에 의해 유지되었다. 누구인가. 그 공감을 깨버리고는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는 식으로 말하는 자는.

대북정책 실패의 책임 물어야

천안함 침몰은 불가피한 것도, 불가사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건 누구보다 이명박이 잘 안다. 추모는 필요하고, 북한 관련성은 규명해야 하고, 국방부 기강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정부·방송의 과도한 영웅화 작업과 추모 과잉, 북한 때리기, 국방부에 뒤집어씌우기는 이명박의 책임을 묻어버린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 북한 소행으로 밝혀지고 국방부 대응 체계의 허점이 드러난다 해도 이명박이 책임져야 할 몫은 줄지 않는다. 그런데 왜 누구도 이명박에게 대북정책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는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이명박의 책임은 왜 따지지 않는가. 그의 눈물 한 방울로 은폐하기에는 진실이 너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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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북한 급변사태라는 사기

 2010 03/31(수) 18:12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는 핫 이슈라는 제목 아래 북한 급변사태에 관한 보고서가 3건이나 올라와 있다. 월터 샤프 주한 미군사령관은 지난 25일 북한 불안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급변사태 대책을 강조했는데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는 김정일이 5년 내에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인사는 노무현 정부 때 작성한 급변사태 계획이 엉성해 이를 현실성 있게 보강하고 구체화했다고 말했다. 요즘 한국과 미국에서, 정부와 전문가 사이에서 김정은 승계가 성공할지, 북한이 어떻게 붕괴할지 예측하고 점치는 일이 대유행이다. 그러나 급변사태가 어떻게 발생한다는 건지 설득력 있는 설명은 찾기 어렵다. 몇 가지 불안요인들을 나열하고는, ‘그래서 이런 혼란이 오면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는 동어반복, 논리 비약뿐이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정일 생존시 급변사태는 난망하다. 갑자기 사망한다면? 물론 불안하다. 그래서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했을 것이다. 후계자 없는 북한은 이제 후계자 있는 북한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불안요인이 제거되자 이번에는 김정은이 승계에 실패할 거라고 한다. 너무 젊어 지도력을 발휘 못한다, 권력 장악 못한다는 등 이유가 많다. 김정일이 승계할 때도 그런 비관론이 있었다. “군 경험이 없어 군부 통제를 못한다, 김일성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다, 혁명원로가 반발한다.” 김정일이 승계하는 순간 며칠 내로 무너진다는 예측도 있었다.

유행처럼 떠도는 북 붕괴 예측론

물론 김정은은 김정일과 다르고, 북한 안팎의 환경도 변했다. 그러나 북한도 변화에 나름의 적응을 해온 체제이다. 시장을 허용하기도 하고, 주민 통제를 강화하다 풀어주기도 한다. 2010년의 북한은 1970~80년대와 같은 전체주의적 통제, 신적 권위에만 의존하는 체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체제 유지의 기준을 70~80년대로 잡고는 그때 같지 않다며 붕괴를 주장한다. 김정은이 김정일만 못해도 세습하면 수령이다. 권력구조상 수령에 도전할 세력은 없다. 파벌 투쟁, 쿠데타 모두 어림없다. 수십년에 걸쳐 효과가 검증된 통제장치, 그물망 같은 감시와 처벌의 체계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민중봉기? 불만스럽다고 자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대항 헤게모니가 있어야 하는데 상당 기간 기대할 수 없다. 경제난, 정통성 약화도 거론하지만 그건 김정일도 마찬가지였다.

급변사태에 대한 최근 관심은 현실성,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 지나친 것이며 낭비다. 급변사태를 주장하는 이들도 실제 그런 사태가 쉽게 발생한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버스는 떠났다. 이들이 퍼뜨린 급변사태론으로 인해 시민들 사이에서 이미 북한은 곧 무너질 체제이며, ‘북한 문제=급변사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붕괴할 정권과 애써 대화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회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대로 두면,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깨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대해 정부 관료, 전문가들이 책임지라고 하면 이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다는 거였지, 내가 언제 무너진다고 했어.” 그러나 이 믿거나 말거나 급변사태론은 벌써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먼저 대화에 소극적인, 남북경색을 당연시하는 정부의 태도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인도하기보다 의심하고 경계하며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체제를 경직시키는 퇴행적 행동을 유도, 북한 문제 해결에 난관을 조성한다.

한반도 미래 준비에 도움 안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남한 내 권력투쟁으로 권력 공백 상태 발생 즉시 북한이 서울에 특수부대를 투입, 위험무기를 제거하는 계획을 이미 세웠고 훈련도 다 마쳤다. 비상통치 기구도 준비했다.’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사정이 이러면 선제공격 및 전시 대비가 우선이지 한가하게 개혁·개방을 할 수가 없다. 북한 체제를 위협하지 않겠다는 말이 진지하게 들릴 리도 없다.

급변사태 너무 걱정 말자. 누구보다 김정일·김정은이 알아서 잘 챙기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는 믿고 맡겨주면 안될까. 대신 우리는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급변사태 대비에 있는지, 대화에 있는지 성찰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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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힘내라! 국방부

 2010 04/14(수) 18:11

 

지난주 점심시간 서울 을지로의 한 냉면집. 나이 지긋한 분들이 앉아있는 옆 테이블에서 천안함 사고를 두고 정부성토가 한창이다. “대통령·총리·비서실장·국가정보원장은 군대도 안 갔다잖아. 그래서 안보가 되겠냐고. 아 신문에 그렇게 나왔다니까.” 육사·공사 홈페이지에는 ‘한 생도가 지난 주말 거리에서 여자친구와 웃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그럴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시민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한 사관학교 근무자는 점심 때 동료들과 근처 식당에 갔다가 주위의 시선이 자기들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끼고는 서둘러 밥을 먹고 나왔다고 한다. 요즘 국방부·군대가 동네북이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 달리 국방부가 결정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다. 국방부를 향한 수많은 비난과 의혹들은 대부분 주변적인 것들이다. 일부 착오와 실수가 있었지만 불가항력적 요인이 많았고, 크게 잘못해 놓고 숨겼다고 의심할 만한 일도 없었다. 이번 사고로 드러난 국방부의 문제점이 있다면 그 것은 그런 표피적인 것들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것, 자신감의 결여이다.

자신감 결여 근본적인 문제점

 

국방부는 겨우 절단면 제한적 공개라는 어정쩡한 절충을 하느라 거듭 고심했다. 그 전에는 생존자 인터뷰를 두고, 그보다 전에는 교신일지 공개를 놓고 그랬다. 그럴 이유가 없다. 자신 있다면, 당당히 공개하면 된다. 아니, 공개하지 않겠다고 치고 나가도 좋다. 조사 결과로 말하겠다, 그때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면 되지 왜 시시콜콜 공개하느냐, 이렇게 큰소리라도 한번 치면 속이 후련하겠다. 그런데 국방부는 무엇 하나 자주적으로 판단하지도, 주도적으로 결심하지도 못한다. 청와대 메모를 받기 전까지는 북한 관련성을 어느 수준으로 언급할지 종잡지도 못했다. 이런 국방부를 신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감 결여가 이 사건에서만 목격되는 예외적 현상이라면 별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그게 국방부 체질이라면 달라진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경우를 보자. 국방부는 5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2년 전작권을 돌려받기로 3년 전 합의했다. 그렇다면 작전 기획, 작전 능력을 키우는 데 열중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국방부는 미군이 다 알아서 해달라며 바짓가랑이 잡는 데 열중이다. 이유는 북한이 무서워졌다는 것이다. 북한군비는 넉넉히 잡아도 남한의 10분의 1이다. 북한이 군비경쟁을 포기한 지는 오래됐다. 무기는 낡았고 전투기는 기름이 없어 뜨지 못한다. 북한 군인은 굶주리고 있다. 많은 병력이 훈련장이 아닌 노동 현장에 있다. 반면 남한은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군사강국이자 세계 3대 무기 수입국이다. 북 핵실험 뒤에는 미국이 핵우산 강화 약속도 했다. 미군은 전작권 환수 이후에도 계속 도와준다고 했다.

북한군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이 정도면 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안보를 책임지지 못하겠다면 국방부 간판을 내리는 편이 낫다. 혼자 걸음마를 배우라는 것도 아니다. 한 손을 잡아준대도 기어코 업히거나 안길 생각만 한다. 그게 창피한 일인 줄은 아는지 서로 대칭되지도 않는 자주 대 동맹의 대립을 설정하고는 업히는 건 동맹이므로 선이요, 혼자 걷는 건 자주이므로 악이라는 어설픈 이분법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건 자주 혹은 동맹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상태의 문제이다. 다 큰 아이가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어질 줄 모르면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그때 어른은 말한다. “옆집 아이는 너보다 못 입고 못 먹어도 잘만 하더라.” 북한군은 전작권을 외국에 넘겨줘야 한다고 떼를 쓰지 않은 것은 물론 조국보위도 건설도 다 한다며 자신감에 차있고 강성대국 운운하며 배짱도 좋다. 지금 군대에 필요한 것은 첨단 무기도 미군 지휘권도 아니다.

덩치에 비해 너무 어리광 부려

환자복 차림의 생존자 공개는 국방부가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고 싶어하는지만 드러낸 것이 아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자기의 시선도 드러냈다. 군대는 보유한 힘에 비해 너무 무기력하고,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이 쓰고, 덩치에 비해 너무 어리광을 부린다. 외국 군대를 너무 믿는 나머지 자기를 믿을 줄 모르고, 겸손이 지나쳐 자기 능력을 무시하고, 그 때문에 잘못한 것에 비해 과도하게 욕먹는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잘할 수 있다. 힘내라!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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