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관련 세미나에 가보면 그 어떤 행사보다 사람들이 북적대고 무슨 무슨 영재교육이니 스쿨이니 학교니하면
자식가진 부모님들은 껍벅 죽는다.
우리는 교육에 참 관심이 많다.
입시전형과 교육정책의 세세한 부분을 몰라도 교육이 백년의 대계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이 교육의 힘이라는 것을 무언중에 체득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최근에 터진 고대입시부정 사건을 보면 사학재단과 사유재산이란 것이 참 무섭긴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주인과 이해집단의 이익을 위해 입시생의 절반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응시기회를 박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도 가난한 죄로, 일반고 다닌 죄로 떨어져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국민의 혈세를 지원하면서도 국가가 사립재단과 재단의 꼭두각시 총장의 전횡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부정을 일삼는 것보다 더 해롭고 무서운 시스템이 있다.
그것은 언론이다.
언론이란 사건을 심리하고 심판하는 판관의 기능을 한다. 규정을 한다. 용산재개발세입자는 떼잡이다고
또 선생님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의 대부분을 언론을 통해 접하기 때문이다.
또 서럽고 억울한 심정을,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의사다. 노여움에서 터져나오는 원초적 죄를 막을 수는 없어도 답답한 가슴을 달랠 수는 있는 명약이다.
또 타인과 타인을 내안의 나와 세상을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묶어주고 이어주는 가교이다. 지역과 지역 세상과 세상을 이어준다.
또 도미노그물이다. 고요한 찻잔속의 파문처럼 우리의 마음을 고동치고 소용돌이치고 공명하게 해준다. 유약한 개인이 어깨를 맞댄 백지장처럼 서로 기대어 뭉치게 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공명현상, 나비효과와도 관련이 있다.
또 역사선생님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무수한 일을,어제죽은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이름의 오늘을 내일로 가는 마차에 태워보내기 때문이다. 기록의 왜곡이 어떤 불행을 가져오는지는 오늘을 살아야하는 우리는 단절된 현실속에서 말하지 않아도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또 세상을 향해 뚤린 마음의 창이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세상은 불화밖에 보이지 않는 것도 나날의 경험으로 잘 알 수 있다.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면 세상 모든 것은 굴절되어 있다.
또 등불이다. 깜깜한 문맹을 틔우고 세상과 인간의 어둠이 많든 죄악을 환희 비쳐 밝은 곳으로 인도한다. .
또 공분의 도가니거울이다. 사회구성원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민과 고충 및 정치경제적 욕구를 반영하여 공분의 도가니를 자아낸다.(도가니에 빠트린다)
우리가 희망했던 언론의 사회적 역활과 책무는 이러했다. 언론은 이런 기능들을 수행한다.
하지만 21세기의 언론은 조금 다르다.
사회가 지식 정보 서비스 기술에 의지하면 할수록 인간의 얼과 정신이 만든 지적 축척물은 돈과 등치관계를 성립한다.
경제생활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지금도 대기업과 부정한 대 자본가의 탐욕에 의해 나라경제가 휘청휘청한데 생활속의 대의기관이자 사법기관 언론이 경제력까지
장악하게 되면 상하가 아닌 대등한 인간관계, 민주주의, 민중이 저마다 주인되는 주권재민세상, 인간해방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발버둥칠수록 더 상채기만 나는 빈자의 가시나무 덩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빈자의 적은 짓밟은 자가 아니라 약자가 되기 때문이다.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절대강자 투기자본이 통신대기업과 거래를 하고 세습정치권력 조중동과 협잡을 할 것이다. 우리는 더 큰 운명의 그물에 사로잡힌 새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언론장악 언론장악하지만 언론만 장악되어 시대와 불화를 겪게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권까지 빼앗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정말 노리는 것은 이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합물산같은 상업이 돈이 되는 시절도 있었고 굴뚝산업이 돈이 되던 시절도 전자산업이 돈이 되는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먹이감은 지적재산권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도 돈이 없으면 교육도 학습도 정보도 얻지 못하고 주는 대로 받아먹는 노예가 되는 것이다.
참 운명이 더럽다. 비가와서 운수가 좋은 날만 기대해야 하는 인력거 꼴이라나 할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황망한 가운데 답답해서... 지나친 걱정일까?
전파든 주권이든 얼이든 한번 사유화되면 되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사학재단의 잇속에 등록금의 무게에 굴절된
요즘 대학생의 삶에 빗대면 지나칠까?
꼬인 실타래를 풀 열쇠는 여론이다. 우리에게 속지 않을 권리, 기만당하지 않을 권리, 마음이 통할 권리가 있다고 권리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조중동이나 민중의 입이라고 깝치는 부패정치인이 발 붙이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유혹앞에 광고앞에 허영앞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권리중의 권리 기만당하지 않을 권리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발적으로 빼앗기고
'속아야 되는 것이 의무'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침에 셋 저녁에 넷 하는 조삼모사나, 지뢰보고 놀란 가슴 쓸어내리다가도 일주일만 지나면 다시 더덕케러 지뢰밭에
들어가는 초병같은 우리의 운명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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