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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초고속 인터넷 가입땐 ‘현금 20만원 요구하라’ 한겨레

pudalz 2008. 11. 11. 10:25

초고속 인터넷 가입땐 ‘현금 20만원 요구하라’
업체, 속도경쟁 한계 다달아…현금 마케팅 치열
전문가 “‘메뚜기족’ 부작용…월 이용료 내려야”
한겨레 김재섭 기자
‘20만원을 요구하라. 그리고 약정기간이 끝나면 다시 20만원을 요구하라. 안주면 20만원을 주겠다는 업체로 옮겨라.’

인터넷을 빠른 속도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에 신규 가입하거나 다른 업체 것으로 바꾸면서 당당히 현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못 받는 게 바보’라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의 ‘현금 마케팅’을 이용자들이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3일 초고속인터넷 업계 관계자들과 이용자들 쪽의 얘기를 들어보면, 현금으로 경쟁업체 가입자를 빼오는 현금 마케팅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유용하다 적발돼 영업정지를 당한 기간에 빼앗긴 가입자 수를 서둘러 채우려는 것이다. 대부분 해지 고객이나 따로 수집된 휴대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현금을 줄 테니 옮기라고 유혹한다. 김연수(서울 마포구 도화동)씨는 “현금 20만원을 주고, 이용료도 3개월 면제해주겠다고 해서 바로 옮겼다”고 말했다.

현금 마케팅은 케이티(KT), 에스케이브로드밴드, 엘지파워콤 모두 하고 있다. 대부분 15만~20만원을 제시한다. 추가로 경품이나 3개월 이용료 면제 조건이 제시되기도 한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는 신규 가입자에게 에스케이상품권 15만원어치를 주겠다고 광고까지 했다. 고객지원센터나 회사 누리집를 통해 가입한 고객들에게 에스케이상품권 15만원어치와 디지털카메라·자전거·의자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했다. 덤으로 ‘생일이 이달인 사람’ 같은 이벤트를 통해 2만원짜리 케이크 교환권과 10만원짜리 외식 상품권도 줬다.

3년 약정 할인을 포함한 초고속인터넷 월 이용료는 2만5천~3만원 정도이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상품권과 선물을 포함해 27만원어치를 받으며 옮긴다고 가정하면, 열 달 정도를 공짜로 이용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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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1년 단위로 ‘먹튀’를 해도 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해지 때 경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을 가입 뒤 1년으로 제한했다. 현금과 경품을 받고 1년이 지나면 다시 현금과 경품을 받으며 다른 업체로 옮길 수 있다. 약정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지하는 것이라 위약금으로 그동안 할인받은 요금을 내놔야 하지만, 옮기면서 받는 현금보다는 적다.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이 1년이 지난 뒤까지도 상품권과 상품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지 신청을 거부하면, 방통위 민원실에 신고하면 바로 해결된다.

이처럼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이 앞다퉈 현금 마케팅에 나서는 이유는, 품질 경쟁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은 그동안 ‘최고 속도’ 경쟁을 해왔다. 하지만 최고 속도가 초당 1억비트(100Mbps)에 다다라 더 올리기 어려운데다, 보장 속도가 최고 속도의 10%에도 못 미친다는 게 드러나면서 더 이상 품질을 앞세우기 어렵게 됐다.

실제로 방통위가 최근 공개한 초고속인터넷 품질 측정 결과를 보면, 케이티와 에스케이브로드밴드의 초당 1억비트짜리 초고속인터넷 상품의 최저 보장 속도가 초당 500만비트에 지나지 않았다. 보장 속도가 초당 500만비트밖에 안 되는 것을 초당 1억비트짜리라고 선전해온 것이다. 최고 속도가 초당 1천만~5천만비트짜리의 보장 속도는 초당 100만비트로 조사됐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은 내년 3월까지 보장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케이티와 에스케이브로드밴드 등이 개선 목표로 잡은 초당 1억비트짜리의 보장 속도 역시 초당 3천만비트를 넘지 않는다. 엘지파워콤은 초당 5천만비트로 높이기로 했다. 이용자 쪽에서 보면,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이 그동안 앞세워온 최고 속도라는 게 별 의미가 없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현금 마케팅 경쟁은 이용자들을 ‘메뚜기족’으로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현금 줄 여력이 있으면 그만큼 월 이용료를 내려주는 쪽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