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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용 기자의 우리말 돌직구] 광복 70주년, 절대 써서는 안 될 일본말 찌꺼기④ 일본식 외래어

pudalz 2015. 10. 23. 09:06

 [엄민용 기자의 우리말 돌직구] 광복 70주년, 절대 써서는 안 될 일본말 찌꺼기④ 일본식 외래어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입력: 2015년 08월 19일 07:00:00|수정: 2015년 08월 19일 13:45:26

 

 

오늘날을 흔히 ‘지구촌 사회’라고 부릅니다. 이웃나라는 물론 대륙간의 교류가 활발하다는 의미겠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 나라의 말이든 저마다 외래어가 넘치기 마련입니다. 영국에서 프랑스어를 쓰고, 프랑스에서 독일어를 쓰는 식이죠.

우리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래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말이 생겨나기도 전에 외래어가 밀려드니,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들 말을 모두 우리말로 바꿔 쓰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외래어를 쓰더라도 어느 나라의 말을 다시 다른 나라의 말로 바꿔 쓰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영어식으로 쓰는 것 말입니다. 미국이 우리의 상국도 아니고, 프랑스어 뷔페(buffet)를 미국식 발음 ‘부페’로 적거나 이탈리아의 땅이름 베네치아(Venezia)를 미국식 베니시(Venice)로 쓸 까닭이 없는 거지요.

더욱이 외국의 말을 일본어로 바꿔 소리 내고, 그 소리대로 표기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빠찡꼬’처럼 우리말로 쓸 것이 없으면 모를까, 우리말로 제대로 발음하고 적을 수 있는 것까지 일본식으로 소리 내고 적는 말습관은 하루속히 버려야 합니다. 우유를 뜻하는 ‘밀크’를 ‘미루꾸’로 쓰는 것은 좀 뭐하지 않습니까.

 

 

■맘모스

인류가 발생해 진화하기 시작한 신생대 홍적세 중기부터 후기까지 살았던 포유류 동물로, 종종 알래스카의 얼음 속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 ‘녀석’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지구에 살았던 동물로는 공룡과 함께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녀석’이죠. 많은 사람이 ‘맘모스’로 부르는 ‘녀석’요.

그러나 이 동물을 ‘맘모스’로 부르거나 쓰면 안 됩니다. 이 동물의 원래 이름은 ‘mammoth’입니다. 이 철자를 보고 일본 사람들이 부른 말이 바로 ‘맘모스’입니다. 철자를 그냥 읽은 것이죠. 우스갯소리로, 누가 “위험”을 뜻하는 ‘Danger’를 ‘당거’로 읽었다고 하는데, 딱 그 꼴입니다. mam(맘)mo(모)th(스)….

‘mammoth’의 바른 발음은 ‘매머드’입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도 ‘맘모스’는 “매머드의 잘못”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이 동물에 비유해 나온 ‘맘모스빵’에 대해서는 국립국어원이 옳다 그르다 밝힌 적 없지만, 이미 사람들 입에 굳을 대로 굳은 말인 만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후라이드치킨

일본식 외래어 표기의 대표적 사례는 영어 ‘f’를 ‘ㅍ’이 아니라 ‘ㅎ’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fried’를 보면 누구나 [프라이드]가 맞는 발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모두를 ‘fried chicken’을 [후라이드 치킨]으로 발음하고, 치킨집에 가면 어디든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f’를 ‘ㅎ’으로 발음하는 것은 일본의 말습관입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금·알루미늄 따위의 금속을 종이같이 얇게 편 것. 특히 요리나 포장에 쓰는 알루미늄박”을 일컫는 ‘foil’을 ‘포일’이 아닌 ‘호일’로 적거나 “서류묶음(서류철)” 등의 뜻으로 쓰이는 ‘file’을 ‘파일’이 아닌 ‘화일’를 쓰는 일이 흔합니다.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인 ‘fighting’을 ‘파이팅’이 아닌 ‘화이팅’으로 쓰기도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초성에 ‘ㅍ’ 소리를 내지 못하는 구강구조를 가졌다면 어쩔 수 없지만, 충분히 ‘ㅍ’ 소리를 낼 수 있으면서도 일본식으로 ‘ㅎ’ 소리를 내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영어의 ‘f’는 우리말에서 절대 ‘ㅎ’으로 적는 법이 없습니다. 당구에서 흔히 쓰는 ‘후로쿠’도 ‘플루크(fluke)’가 바른 표기입니다.

■스틱

일본인들은 긴 영어를 짧게 줄여 쓰거나 자기네 식으로 고쳐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짜”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음” 등을 뜻하는 가라(から:)에 “관혁악단”을 의미하는 오케스트라(orchestra)를 붙인 뒤 ‘가라오케’로 줄여 쓰거나 “빵가루를 묻힌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서양 요리”인 포크커틀릿(pork cutlet)을 돈가스(ton[豚]kasu)로 쓰는 식이죠.

수동변속기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스틱’도 그런 말 습관에서 나온 일본식 표현입니다. 영어 시프트 레버(shift lever)를 자기네 말습관으로 적은 것이지요. 우리말에서 운전에 쓰이는 말 가운데 ‘자동’에 대립하는 것은 ‘수동’입니다. 이를 ‘스틱’ 운운하는 것은 철저히 일본식 발음이자 표기입니다.

■밧데리

“건전지” “수많은” “포대, 포열” 등 여러 의미로 쓰이는 영어의 철자는 ‘battery’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이를 ‘밧떼리이(バッテリ)’로 발음합니다. ‘bat(밧)te(떼)ry(리이)’인 거죠. 하지만 ‘battery’의 바른 발음은 ‘배터리’입니다. 우리가 ‘배터리’를 제대로 소리 내지 못하거나 적을 수 없다면 모를까, 충분히 그렇게 소리 내고 쓸 수 있으면서 ‘배터리’를 ‘밧데리(밧떼리)’로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특히 야구 경기에서 짝을 이루는 투수와 포수를 ‘배터리’라고 하면서 ‘건전지’ ‘전지’ ‘축전지’를 뜻할 때만 ‘밧데리(밧떼리)’로 쓰는 것은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새무

겨울이면 유행하는 부츠를 비롯해 신발을 만드는 데 많이 쓰이는 가죽 중에 흔히 ‘새무’ ‘세무’ ‘세모’ 등으로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 가죽으로 겨울 코트를 만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무두질(생가죽이나 실 따위를 매만져서 부드럽게 만드는 일)을 한 염소나 양의 부드러운 가죽”을 일컫는 말로 쓰이는 ‘새무’ ‘세무’ ‘세모’ 등은 바른말이 아닙니다. 일본말 찌꺼기입니다.

“남유럽과 서남아시아에 사는 영양”인 ‘샤무아’를 뜻하기도 하는 ‘chamois’의 바른 외래어 표기는 ‘섀미’입니다. 이 ‘섀미’를 일본인들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해 자기들 발음대로 ‘세무’ 따위로 부릅니다. 그런 소리를 대충 듣고 ‘새무’ ‘세모’ 등으로 쓰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골덴(고르뎅)

우리가 흔히 ‘골덴’이나 ‘고르뎅’이라고 하는 것은 ‘코르덴’을 일본 발음으로 소리 낸 것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코르덴’도 바른 적기가 아닙니다. ‘코르덴’은 “밧줄이나 로프류” 또는 “골지게 짜기”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코르덴 천”을 가리키는 바른 표현은 ‘코듀로이(corduroy)’입니다.

한편 “공중제비”를 뜻하는 ‘tumbling’을 ‘텀블링’이 아닌 ‘덤블링으로 쓰거나 “용설란의 즙으로 만든 멕시코 원산의 독한 술” ‘tequila’를 ‘테킬라’가 아니라 ‘데낄라’로 쓰는 것도 “일본어에서는 초성에 거센소리를 쓰지 못한다”는 규정 때문에 잘못 굳어진 틀린 적기입니다.

이 외에도 외래어를 일본식으로 적는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스포츠경향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꾸준히 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