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감되시면서 보낸 곽노현교육감님의 편지입니다.
존경하는 서울시민과 교육가족 여러분께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는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지금 이 순간 ‘님의 침묵’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 편지가 여러분들께 전달될 즈음, 저는 교육감이 아닌 수형자의 신분이 되어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미 서울시 교육청의 공식 발표문을 접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서울교육혁신을 위해 동고동락하고, 저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내주셨던 분들은 헛헛한 마음을 주체하기 쉽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저도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 사신(私信)은 여러분께 보내드리는 저의 연서(戀書)로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저의 스승과 동지가 돼주셨던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계셨기에 서울교육이 여기까지 왔고, 저도 꿋꿋하게 교육감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요즘 저는 일할 맛이 났었습니다. 지난 2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실질적이고 전면적인 혁신을 하는 2013년의 서울교육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육청 조직을 학교 지원 중심으로 개편하고, 형식적인 정책 사업을 없애 학교에 예산을 더 보내고, 교원업무를 정상화해 학교의 자율권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또한 교원인사제도를 전면적으로 혁신하고 학교 중심의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교육의 질을 업그레이드 하는 사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일을 교육청 안팎에서 함께 토론하며 준비하는 재미는 지난 2년의 경험과 분투 끝에 얻은 결실이라 더욱 값지고 보람찼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교육감직을 떠나게 됐습니다. 지난 해 친환경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승리하고 ‘아, 이제 교육본질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하고 기쁨을 누리는 바로 그 순간 검찰이 사건을 터뜨렸던 때보다도 지금의 아쉬움은 더욱 큽니다. 공을 들인 만큼 상실감도 없지 않습니다.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서울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고, 얼마만큼 왔으며, 지금 어느 부분에 박차를 가해야 할지를 누구보다도 여러분들이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비록 제가 자리를 비우게 됐지만, 여러분들이 힘과 지혜를 모으신다면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혁명은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들께 큰 숙제를 남겨드리게 돼 송구할 따름입니다.
지난 1년간 제가 온갖 오해와 비방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다수 시민들께서 저를 파렴치범으로 생각지는 않게 됐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비록 제가 수형자의 신분이 되지만, 여러분들이 ‘행복한 교육혁명’을 이어가는데 짐이 되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8월28일, 저의 전 인격을 걸고 발표했던 기자회견문에는 제 사건의 실체가 이미 다 담겨 있었습니다. 그 후 지난 1년의 시간은 당시 기자회견문의 내용이 진실로 확인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 1년이 제게는 시련과 수모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여러분들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우리의 소망을 함께 확인하는 감사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향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또 어떤 신분상의 변화가 제게 생길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별력 없는 법이 윤리를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선한 자의 윤리가 법을 이끄는 사회를 꿈꾸며 행했던 저의 처신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좀 더 좋은 사회로 바꾸는데 작으나마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저는 지난번처럼 건강하고 밝게 잘 지내다 돌아오겠습니다. 뒷일은 여러분들을 믿고 마음 편히 먹고 잘 지내겠습니다. 제가 마저 부르지 못한 ‘님의 침묵’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9.27
대법원 확정 판결 후
여러분의 교육감 곽노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