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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콩과 악종의 번식력

pudalz 2012. 2. 20. 10:04

한 7, 8년 전쯤 시골에 갔다가 산 검은콩이 있길래 불려 밥을 해 먹고 있다. 아마 머리가 빠질 조짐이 있어서 검은콩을 삿지 싶다. 검은콩이 탈모를 예방하거나 머리숱을 검게 증식시켜준다는 민간처방을 줏어들은 영향일 거다. 어쨋든 오랜 세월이 흐른 콩이지만 콩밥은 무척 맛있는데 문득 한미FTA가 생각났다. 유전자조작된 번식력이 좋은 종자를 쓰게되면 전래의 우리땅에서 나는 콩들은 자취를 감출 것 같다. 최악의 경우 콩 재배 농경문화가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각 지역에서 나는 건강한, 바다를 건너오지 않아 유통기한이 비교적 짧은 콩을 먹을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밥상의 고기라 했는데.
이 생각을 하자 정작 섬뜩했던 것은 종자의 번식력 때문이었다. 유전자 조작종은 체내에 축적되기 때문에 몸에 좋지 않은데 번식력이 엄청나다. 악종들(악의 씨앗)의 번식력은 경작인구감소로 점점 경작지가 줄어들고 돌봄이 사라진 시골 들녘, 시냇가, 앞산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넝쿨과 풀들(이름은 모르겠다, 검색해보면 나올 텐데)이 사람손길이 닿지 않는 온 동산과 들녘을 덮고 있다. 생태계에 큰 변화가 있다. 한 때 황소개구리, 베스..종의 유입이 부른 생태계의 혼란이 시사이슈로 떠오르던 때와 비슷하다. 이렇게 악성종은 그냥 내버려 두어도, 이런 종들을 뭐라 칭하는데 생각이 안 나네, 번식력이 좋은데, 정부에서 장려까지 해서 씨를 뿌리면 금새 대한민국 남한 영토를 점령할 것이다. 이런 사례는 농작물만 아니라 현재와 이어진 역사에서도, 현실에서도 너무나 절절하게 볼 수있다. 이 세상에 일어난 일을 조작하면 인간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다. 인간이 정한 법칙약속으로는 누가 잘못하였는지 시시비비를 가릴 수가 없다. 진실과 거짓이 뒤바뀌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기도 한다. 더 큰 자유를 가진 영향력 큰 사람, 권력자만 지 세상을 만나게 된다. 한 몸이 아닌 인간이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각자 독립된 공간에서 기거하다보면 세상일을 다 알 수가 없다.
인간은 사회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적동물을 천명으로 부여받아 세상일로 부터 무관할 수가 없다. 이 나와 이웃사이에서 일어나는 일, 내 집단과 다른 집단이 하는 일 사이에 서로간에 약속과 소식이 존재한다. 지역과 지역 바다와 강 건너 사이에서 누군가가 이웃의, 이웃가족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래서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하나의 큰 울타리 아래서 긴밀하게 협력하며 살게 된다. 인간의 경험과 지혜가 축적,전승되다보니 기술이란 이름으로 물리적 정신적 겉과 속의 변화가 일어났고 기술의 진작이 있었다. 인간을 하나의 부류, 하나의 집단, 하나의 경계에 거주하는 국민으로 묵어주는 기술이 교육언론종교기관의 미디어(문자, 말,가르침)를 통해 발달해왔다. 물리적 미디어인 통신의 발달 또한 따랐다. 봉화, 편지, 말, 자동차, 전화, 케이블, 무선인터넷 등 눈에 보이는 기술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속도로 발전해왔다. 인간이 사는데 필수불가결하고 생명과 사회의 근원에 뿌리를 내린 일이라 국가가 육성독점보급하고, 장려하였다. 또한 미디어는 태생적으로 사회공동체가 공동분담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의 영역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오늘날은 선출된 사람이 한시적으로 다수의 민의를 대변한다. 허나 인간의 원초적인 살이(삶)과 관계된 교육종교언론의 영역은 치외법권지역처럼 세습되고 있다. 물론 국가의 지원, 장려도 수반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군부독재가 사라진 이후 이들이 대자본가와 결탁하고 스스로 대본가가 되어 사람들의 눈 귀를 가리고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둔갑시키는 주체로 등장했다. 여기에 국가는 거짓이란 생태계를 교란하는, 약자를 짓밟는 악의 씨앗이 퍼져나가는 것을 방임장려한다. 이러니 환경호르몬처럼 환경식물처럼 대를 이어 사회에 불행의 씨앗을 퍼트리고 비극이란 "화"의 불통을 약자에게만 전가하게 된다. 최근에 19대총선이 코앞인 상황에서 18대 국회를 얼마남겨두지 않고 미디어랩법이란 것이 국회에서 제정되었다. 이 미디어랩법의 내용은 실상 이러한 세습권력, 종교교육언론권력이 퍼뜨리는 악의 씨앗을 뿌리라고 국가가 법으로 장려해주는 것이었다.
대중미디어가 등장한 이래 상업저널리즘과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이 버무려져 미디어의 밥줄을 광고가 좌지우지하게 되었다.미디어랩이란 광고에이전시, 즉 방송(전파)광고대행사인데 이전엔 대기업과 대자본사기업언론사들이 자사광고대행사를 만들수가 없었다. 그런데 미디어악법을 막아 조중동등 대자본가방송이 태어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총선을 앞두고 별안간 눈이 돌아버렸다. 자사이기주의, 자기집단 이기주의란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그래서 방송사의 젖줄인 광고를 집행하는데 있어 대기업, 세습교육종교언론권력은 자유롭게 풀어주고 일단 공영방송, 취약매체라도 살고보자고 한 것이다. 허나 그 이면을 들어가보면 추악하다. 미디어랩법을 제정하는데 있어 중심에 서서 역사와 국민, 미래를 생각했어야 할 언론노조는 자기들 보위에 급급했고, 오랫동안 괸행되로 내려온 민주당과의 유착을 택했다. 언론노조는 기실 민주당에 기생하는(민주당과 짝짝꿍이 맞는) 집단인데 그동안 언론노조가 흔들릴 때 시민들이 버팀목이 되어주고 헷갈릴 때 채찍질을 하여 바른 길에 서 있도록 한 측면이 있다. (MB정부 하에서의 언론계 현안을 다룰 수 있은 보직에 간 인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문제가 정치와 밀접한 것은

문제는 민심과 정치가 일치하지 않는 것에 있다. 시민 국민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데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것이고, 국민은 자신의 시민주권을 행사하고 싶어하는데, 시민주권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는데 이익집단 정당등이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려면 현정부에 대한 원성이 아니라 피부에 와 닿는 정책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살림살이, 인간의 존엄을 가장 억누르는 문제 교육, 언론, 소득, 세금 경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보여줘야 하는데, 이 큰 강, 길에서 벗어나 샛길로 가고 때론 정 반대되는 짓거리를 한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에 답답하다. 지금 누리는 것, 지금 보전해야 할 일신의 보위를 조금도 놓지 않으려 하는 데에 있고, 간접적인 지원 이권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줄 알기에 답답하다. 교육과 언론 세금 제도를 혁신적으로 바꾸어야 이기는데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동지 세력이 흩어지는 것 갈라지는 결과를 초래한 언론노조, 언론노조 위원장 이강택의 책임이 무겁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시민들은 그들의 선동습성을 알면서도 지난 4년 간 목숨을 걸었는데 이들은 때 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용만하고.

 

언론노조 정확하게 이강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할 말이 있다. 진알시와 언소주, 언론악법 저지에 나섰던 사람들이 어떻게 활동해 왔으며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그것을 알았다면 신자유주의니, 자본이니  개가 풀 뜯는 개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바퀴를 도탄에 진흙 구덩이에 빠트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을 불쏘시게로 여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처음에 미디어랩법 제정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렸을 때 제일 먼저 고민하고 말한 것은 어떻게 함께 제정하고 함께 막아낼까? 이후

야권연대 통합 총선 대선정국에서 어떻게 뭉칠까, 왜 그래야 하는가 였다. 하지만 함게 했던 사람들조차 언론노조의 선동에

놀아나 갈라지고 흩어졌다. 왜 그래선 안 되는지 말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언론문제가 살림살이처럼 생계의 문제였다면 진작에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진정성있게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들의 지위 허영 이권이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아직까지도 국민을 선동의 대상으로 보는 한심한 인간들. 왜냐면 그들은 언론 하부, 사회의 하부에서

어떤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척만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프지가 않다. 진정 아프면 뭉친다. 사랑한다. 거기를 바라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떠들어도 제 회사, 제 조직의 문제엔 입다물듯이. 얄퍅한 놈들. 허위, 허영에 들 떠 너그들처럼 그러지 않는다. 국민을 배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