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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미디어랩

pudalz 2012. 1. 17. 00:15

미디어 - 미디어랩


사회에 길이 있어 인간이 왕래를 하고 인간과 사회가 건강해진다.

사회와 인간 간 네트워크(관계, 인연, 인맥)가 형성된다.

(세상에 길이 나 있어 인간이 왕래를 하고 왕래를 통해 만나고 교감하기 때문에 인간이 사람다워지고

개인의 육신:목숨에 생기가 붙고, 개별 생명체, 개개의 인간이 더 건강해진다. 목숨의 유지, 다리를 놓아 교통 왕래의 촉진 )
큰 산과 강, 바다에 의해 단절된 지점과 지점 사이에 다리가 있어

공간과 지역의 한계를 넘어 서로 만나게 되고

서로가 같은 종, 부류임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임을 확인하고 결속을 다진다.
생명의 상실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목숨을 지키려는, 목숨에 대한 애착이 수동적 보수적이라면,

둘러싼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인간에게

가보지 못한 길, 경험하지 못한 길, 미지에 대한 동경은 (외부 세계와의 교감,소통본능)

길과 다리 위에 새로운 문으로 나(열려)있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개척정신, 현실(고통)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새로운 세계로 열린 문을 열게하고,

이 열게하는 문고리와 문이 미디어다

 
Media
매개체가 하는 역할과 기능은 이런 것이다. 인간사에, 세상에 난 길, 다리, 문으로써(처럼) 인간의 왕래를 촉진하고

유대를 다지고 목숨에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세계로 접속하고 전이되도록(옮겨가도록) 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희망을 품게 한다.


의사소통(교류,교감)이란 집단으로 무리를 지어 사는(사회를 이루어 사는) 사람의 행위를 구속하는

약속, 규범, 법칙, 법과 동일한 의미인 정치보다 근본적인 생명활동이자 약속인 것이다. 정치보다 근본적인 생명활동이다.
이런 미디어가 오염되거나 누군가에게 장악된다면 그것은 생명의 파괴 죽음 생명보호체계에 경보 음이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에서 정치는 미디어보다 외형적으로 힘이 세다. 정치집단(또는 물질적 토대를 세습하는 세력)에 의해 장악되기 십상이다.

미디어가 종속되고 장악된 상황에서도 원초적 생명활동은 이루어지지만, 생명활동에 교란이 발생하고 다툼, 갈등이 유발된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제약하는, 일체의 미디어활동; 수용, 이용, 사용할 일체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을

금지해야 하며 막아야 해방될 수 있고, 건강해진다. 예속되지 않고 목숨을 목숨답게 유지할 수 있다. 줏대를 가지고 살 수 있다.
미디어를 장악하는 것, 경제활동의 매개체 돈, 정치활동의 (법칙이자) 매개체 법으로부터
개인의 의사표현의 자유, 의사표현의 수호, 대리하는 집단, 매개체의 활동보장, 언론사의 투명한 운영 등을
보장하고 지키고 구현하는 것은 인간의 태생적 태초적 본능인 것이다.


현실에서 미디어의 밥줄이자 젓줄인 광고를 편법, 불법, 탈법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러한 시도가 있고 그러한 관행이 만연해 있다면 제도권 안으로, 합법의 테두리에 준법 속에 넣으려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세상의 매개체 돈과 법과 미디어(: 의사의 교류)를 틀어쥐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금지하고 막아야 사회가 지속된다.

 
삶의 방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새로운 미디어 생활이 시작될 때, 뉴미디어가 출현할 때마다

만인이 그 길, , 다리를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인에게 개방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미디어 장악 교란은 인간과 사회를 부정하고 누군가 인간 위에서 군림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시도는 권력을 가진 자, 세습 받는 자에 의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회를 이루고 사는 사회구성원은 이를 막을 의무와 권리가 있다.

 

줄이면

세상 사회에 길이 나 있어 인간이 왕래와 교감을 통해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것이며 이 길이 미디어다.

서로 단절된 그래서 생명의 존엄을 부여 받는 고립된 섬처럼 존재하는 개개인에게 다리가 되어 주는 것이 미디어다.

인간이 가보지 못한 길, 개척하는 길로 열린, 새로운 세계로 열린 문이,

목숨의 유지를 위해 본능적으로 그 세계에 진입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에게

가보지 못한 길 위에 놓여 있는 문으로 존재하는 것이 미디어다.

이러한 미디어를 장악하려는 시대와 사회상에 따라 달리 등장하는 권력의 시도, 다양한 전략, 전술은

인간 스스로 막아야 한다. 돈과 법을 움켜진 세력이 지금은 광고를 통해 미디어를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약자가 뭉쳐야 폭압자, 강자에 맞서 정의를 세울 수 있듯이(법치의 실현) 광고를 통해 세상을 장악하려는 시도에 분열하거나 자중지란 하는 것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규정하는 것 같다.

미디어란 인간과 인간을 이어 인간과 사회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존재하는데,

만약 그 존재의 목적을 떠나 인간과 사회를 교란하는데 쓰인다면, 미디어를 교란하려 한다면 단연코 막아야 한다. 헷갈릴 일이 아니다.

 

법치라는 것은 약자를 위해 있는 말이지, 강자를 위해 존재하는 말이 아니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모두, 만인, 약자, 다수를 위해 존재할 때 그 의미를 부여 받는 말이지, 폭압자의 자유란 그저 재앙뿐이지 않던가?

폭압자, 권력자가 자신의 자유를 외칠 때 거기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한다.

 

인간에 있어 미디어란 인간이 살면서 지나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누군가의 의도대로 살게 되고 길이 없어도 걸어가면 길이 보이고 열린다는 말처럼

누군가가 목숨줄 말길얼길을  장악하여 통행세를 받고 )

나의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도 인간의 굴레이자 운명이다. 사회의 주인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 비용. 교육을 통해 학습을 하고 개념을 습득하는 인간에게 커뮤니케이션비용이란 자연발생적이기도 하고,

입에 풀칠하거나 생산활동을 영위하는 일, 직업, 직업의 습득에 드는 비용으로 발생할 때가 있다. 이 비용의 구분이 모호하다.

사회적 비용이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냐에 대한 철학적 사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가장 돈을 쉽게 갈취하고, 버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세습권력은 커뮤니케이션에 드는 비용을  부와 권력을 축척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FTA하에선 이런 정도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생각해보라 이렇게 의사를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는 공간 인터넷조차 의견을 피력하고 댓글을 달 때마다

수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를.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줄 때도 대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를.

무엇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고 지적재산권인가? 인간과 사회의 법칙 전승, 계승, 축척, 문화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비용, 지식에 이해를 부추기는 것이 미디어를 장악하려는 자들의 속내다.

왜 선진국은 교육비를 사회와 국가가 부담하는가?

 

광고와 공짜

광고란 매뉴얼(사용설명서)이고 널리 알리는 것이다. 표현을 하는 인간 사회에 보편필수적인 것이다. 지금은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의 하나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 광고에 노출되는 대가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시스템속에 살고 있다. 진실하기 보다 사람을 현혹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