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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국회의원 20개월에 자동차 기름값이 6200만원… 국민일보

pudalz 2011. 1. 13. 20:41

국회의원 20개월에 자동차 기름값이 6200만원… 주유비 의혹 ‘진행중’

국민일보 | 입력 2011.01.13 18:01

 

회계·후원장부로 본 문화부장관 후보자 정병국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이번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자 중 유일하게 현직 국회의원이다. 정치자금을 받도록 허용돼 있는 대신 수입과 지출이 가장 투명해야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국회의원의 됨됨이를 여러 측면에서 관찰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돈의 흐름을 보는 것이다.

정 후보자의 수입과 지출은 세 가지 경로로 노출된다. 매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는 정치자금 회계보고서와 고액후원금 기부자 명단, 그리고 국회 사무처에 내는 의원실 지원경비 결산보고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이 세 문건을 확보했다.

12건 주유내역 실종

정 후보자의 회계보고서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내역은 '주유비'다. '2009년 2월 4일 주유비 2만원, 5일 식대 1만4000원·주유비 11만6000원, 6일 식대 7만3000원, 7일 주유비 25만6000원·5만원·식대 1만8000원, 8일 주유비 5만원·3만원….' 하나 건너 하나씩 주유비가 기재돼 있는 식이다. 정 후보자는 2008년 8개월간 2353만원, 2009년 3827만원을 기름값에 썼다.

'주유비 논란'은 지난해 5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2009년 주유비만 3800만원"이라는 발표로 시작됐다. 정 후보자의 지역구인 경기도 양평군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했고 지난해 10월 '정치자금법 위반행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싸움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양평군 양평읍에 있는 '국회의원 정병국 사무실'. 300m 북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ㄱ주유소'가 논란의 핵심이다. 이곳에서 2009년 한 해 동안 1745만원이 결제됐다. 1회 15만원 이상 38번 결제됐고 총액만 1662만2000원에 달했다. '카드깡' 의혹이 일었다.

선관위는 "두 달간 치밀하게 조사했다"고 했다. 정 의원 측으로부터 차량 3대의 실제 주유내역을 받았고 이들 차량의 대략적인 동선을 추정하기 위해 정 의원의 2009년 일정을 시간대별로 확보했다. 차량 주유내역과 ㄱ주유소에 있는 정 의원 측의 외상장부 주유내역을 비교했다. "외상거래를 해 1회 결제 금액이 컸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유소 사장 연모(38)씨는 11일 "외상거래를 하고 있는 곳이 50곳이 넘는다"며 장부를 보여줬다. 지역 업체들이 대다수였고 소방서 같은 관공서도 있었다. "외상거래를 하고 싶지 않지만 알고 지내는 사이라 안 해 줄 도리가 없다"고 했다.

정 후보자 측도 억울해했다. 김선호 비서는 "선관위에 등록된 카드가 하나뿐이었는데 외상거래를 해도 괜찮다고 해 그렇게 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결제된 금액만큼 실제 주유가 이뤄졌느냐'를 검증하지 않고선 논란을 잠재우기 어려워 보였다.

국민일보는 ㄱ주유소의 2009년 1월 1일부터 같은 해 8월 7일까지 주유기별 주유내역 3만1998건을 입수했다. 개별 주유내역은 '2009년 1월 1일 오전 8시28분36초, 3번 주유기, 무연휘발유, 38.82ℓ, ℓ당 1288원, 총금액 5만원' 식으로 표기돼 있다. 이 내역과 정 후보자 측의 2009년 외상장부를 비교했다.

대조 결과 외상장부에 있는 거래 내역 160여건 중 일부가 실제 주유내역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2009년 3월 15일의 경우 외상장부엔 박○○씨가 경유 8만7000원어치를 주유했다고 적혀 있다. ㄱ주유소의 2009년 3월 15일 거래내역은 총 124건이다. 이 중 경유는 38건이다. 하지만 경유를 8만7000원 단위로 판매한 기록은 없다.

5월 23일 장부에도 사인 없이 '8만7000원 경유'가 기록돼 있다. 이날 거래내역은 138건. 8만7000원어치가 판매된 기록은 오후 2시30분 5번 주유기에서 팔린 무연휘발유가 전부였다.

1월 19일, 3월 24일, 4월 18·24일, 5월 9·14일, 6월 5일, 7월 30일 3건 등 총 12건, 102만1000원의 거래가 실제 주유내역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외상장부에 기록은 했지만 주유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 후보자 측은 "주유소 기계 오류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씨는 "매일 거래내역을 기록하는 장부가 있다. 문제를 제기한 날짜 일부를 확인해 보니 컴퓨터가 틀린 것이다. 매일 오후 5∼7시쯤 마감하는데 그 시간 이후 주유하면 다음 날로 날짜가 바뀌어 컴퓨터에 저장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고 설명했다. 12건 중 8건이 다음 날짜에 같은 금액 주유 기록이 있었다. 하지만 1건을 제외하곤 시간이 이른 오전이거나 정오쯤이었다. 마감시간 이후가 아니었다.

2년간 총 주행거리 8만7000㎞

정 후보자의 2009년 회계보고서를 보면 총지출 2억279만8971원 중 18.8%인 3827만원이 기름값이다. 후보자 측은 이 중 1822만원을 정 후보자가 사용하는 제네시스 승용차 주유비로 썼다고 밝혔다. 나머지 금액은 박모 비서관, 김모 비서, 지역사무소 직원 등이 기름값으로 썼다고 해명했다.

국회의원에게는 유류비가 지원된다. 2009년에는 매달 95만원씩, 연간 1140만원이었다. 정 후보자 측 심장섭 대변인은 10일 "국회에서 지급된 유류비는 모두 의원님 차량 주유비로 썼다"고 밝혔다. 이 금액에 1822만원을 더하면 2009년 주유비 총액은 2962만원이 된다. 한국석유공사가 밝힌 2009년 무연휘발유 평균 판매가(ℓ당 1600원)를 적용하면 1만8512ℓ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연비를 이용해 이동거리를 추정해볼 수 있다. 후보자가 이용한 2009년형 제네시스 3.8의 공식연비는 9.6㎞/ℓ다. 한 해 동안 17만7715㎞를 달렸다는 답이 나온다. 실제 연비는 공식 연비보다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7㎞/ℓ로 계산해도 연간 12만9584㎞를 주행했어야 한다. 2009년 2월 출고된 해당 차량의 2011년 1월 현재 총 주행거리는 8만7000㎞에 불과하다.

계산이 맞지 않자 후보자 측은 11일 입장을 바꿨다. 심 대변인은 "국회에서 지급받은 유류비는 의원님 기름값으로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썼다. 의원님 차량 주유비는 1822만원이 전부"라고 밝혔다.

국회의원입법활동차량비지급규정은 유류비에 대해 '차량비를 보조하는 게 목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유류비는 다른 돈과 구분돼 입금된다. 통상 곧바로 출금해 의원님 차량을 운전하는 분께 기름값으로 쓰라며 드린다. 그런데 정 후보자의 경우 현금으로 지급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국회 지원 유류비는 다른 곳에 쓰고, 기름값은 지출규정이 까다로운 정치자금 회계로 몰아넣은 듯하다"라고 말했다.

1822만원만 주유비에 썼다면 기름 1만1388ℓ를 소비한 셈이다. 공식연비로 따지면 10만9324㎞를, 연비 7㎞/ℓ로 계산하면 7만9716㎞를 2009년 한 해 동안 달렸다는 의미다.

정 후보자 측은 "의원님이 일정을 진행하는 동안 수행원들이 차안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에어컨, 히터를 틀어두기 때문에 연비가 좋지 않다. 산길도 많다. 실제 연비는 5㎞/ℓ 정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5㎞/ℓ라고 해도 2009년 주행거리는 5만6940㎞에 달한다. 총 주행거리가 8만7000㎞니까 2010년엔 겨우 3만㎞만 이동했다는 의미다. 양평군 선관위는 "ㄱ주유소와의 거래 내역을 보면 2009년 1∼5월 691만6000원을 주유비로 썼지만 2010년엔 같은 기간 동안 945만원을 썼다. 2010년에 오히려 주유비 지출이 더 많다"고 조사보고서에서 밝힌 바 있다. 이상한 대목이다.

고액후원금 기부자 명단

정치후원금을 누구로부터 받았는지도 의원 정병국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잣대다. 2007∼2010년 상반기까지 연간 300만원 이상 정 후보자에게 기부한 사람은 2007년 25명(31건), 2009년 12명(15건), 2010년 상반기 4명(4건)이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선병석 전 뉴월코프 회장이다. 선 회장은 재벌가 2∼3세들과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지난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997∼2004년 서울시테니스협회장을 지낸 선씨는 남산 테니스장에서 전직 국가대표 선수 등과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 대통령의 동호회 모임을 주선해 '황제 테니스' 논란을 일으켰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2006년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이 "2003년 10월 이명박 시장이 경기도 가평군 설왕면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여자대학 성악과 강사 등 일부 여성 등과 파티를 즐겼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이 모임을 주도한 이가 선 회장이었다.

선 회장은 정 후보자에게만 2009년 500만원을 후원한 데 이어 2010년에도 후원금 500만원을 냈다. 정 후보자 측은 "지방 문화재 보호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 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복궁 및 광화문 복원사업의 도편수였던 신응수 대목장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정 후보자에게 2009년 9, 10, 11월 세 차례에 걸쳐 500만원을 후원했다. 신 대목장은 지난해 3월 착공한 국회 의원동산 한옥 건설에 총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회는 해당 건물을 양옥으로 건설하려다 12억원을 추가 책정해 2009년 9월 한옥으로 변경했다.

신원이 확인된 이들 중 다수는 건설업자였다. S건설사 대표 강모(67)씨는 2007년 정 후보자에게 500만원을 후원했다. S사는 2005년 8월부터 정 후보자 지역구에 골프장 건설을 추진 중이었다. 기획재정부와 가평군청이 난색을 표해 사업 진행이 더딘 상태다.

2009년 8월 열린 '4대강 주변개발 태스크포스(TF)' 회의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해 논란을 빚은 K사 사장도 같은 해 정 후보자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당시 최철국 민주당 의원은 "개발사업을 홍보해 민간투자금을 유치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회사를 이런 회의에 참여시킨 것은 4대강 주변 개발정보를 부동산 투기업자와 대형건설사들에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었다.

양평=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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