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뉴스/환경

피나락값 4만원 하던때 언제였던가 -경향신문 [필진칼럼]

pudalz 2010. 4. 24. 09:31

[낮은 목소리로]나락값 4만원 하던때 언제였던가

 강광석 | 전농 강진군농민회 정책실장

 

 

비가 많이 왔습니다. 기상청 발표를 보면 강수량은 평년보다 약 40% 많았습니다. 1월부터 지금까지 비 온 날이 50일이 넘습니다. 강진에서는 4월에 해가 전라도 말로 오지게 나온 날이 일주일도 안됩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황사인지 안개인지 알 수 없는 날이 많았습니다. 농작물이 쓰나미 폭탄을 맞았습니다. 소비자들이 금치라고 말하는 월동배추는 정상품이 채 50%도 안됩니다. 반은 밭에 버려진다는 겁니다. ‘그거라도 팔지’ 말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팔 수 있으면 팔지 왜 버리겠습니까? 문드러진 배추잎이 떨어진 목련 꽃처럼 처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강진읍에는 딸기 재배하는 농민이 많습니다. 작년 수확량의 절반을 건지지 못했습니다. 곰팡이가 창궐했습니다. 아무리 선풍기를 돌려 환기를 하고 물 배수를 잘해도 해가 없는 날에 해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음지 식물이 된 딸기 넝쿨이 힘없이 고개를 숙입니다. 특히 용기 있게 무농약 재배를 선언했던 농가는 작년 수확량의 10%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올 농사를 작파한 농가가 수두룩합니다.

강진 성전면에서 비닐하우스에 오이 농사를 하는 농민들 처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수확량의 절반을 건졌는데 가격은 작년과 같습니다. 기름값은 오르고 소득은 줄고 난감한 처지입니다. 거의 모든 겨울 작물이 이런 현상입니다. 수박, 참외, 고추, 상추, 토마토, 마늘, 양파 등의 작물이 생육부진과 병으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보리를 갈아엎는 농민을 만났습니다. 지금쯤 어른 무릎까지 자라야 할 보리가 발목까지밖에 자라지 않았습니다. 여름 생활비를 장만하지 못한 농민은 수박 한 덩어리 사먹지 못하고 더위를 버텨야 할 것입니다.

일조량 부족 피해로 농촌 시름

좋은 정부를 가지지 못한 국민의 삶이 빈궁하듯 좋은 해를 받지 못한 농작물은 생기를 잃고 원래 타고난 제 운명의 절반을 채우지 못합니다. 자연현상으로 농작물이 피해를 입으면 이것을 농업재해라 합니다만, 일조량 부족으로 농작물의 생육이 부진한 피해는 농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업재해 보상법으로는 현재 피해를 입은 농가를 도와줄 방법이 없습니다. 설해, 동해, 수해, 우박, 서리는 자연재해로 인정하는데 일조량 부족은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농작물 재해 보험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현재 피해를 입은 농작물은 이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어 있습니다. 사과, 배, 포도, 수박, 벼 등은 대상 품목이지만 딸기, 오이, 참외, 토마토, 마늘, 양파는 대상 품목이 아닙니다.

과잉생산, 가격 하락, 농가소득 감소, 부채 누적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농업을 시장경제에 맡기기 때문입니다. 농사의 반은 농민이 하고 반은 하늘이 합니다. 원래 농업 생산량은 예측이 어렵기에 더더욱 계획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하는데 지금은 시장이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가격이 좋으면 그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우르르 망하는 시스템입니다. 농민들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지역별로 특화 농산물을 지정해 계획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하고, 적절한 보상 정책으로 소득을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해남에서 재배하는 월동배추를 무안에서 함평에서 이제는 영광에서도 재배합니다. 이래서는 다 망하는 겁니다.

타이어 하나 못사는 나락 두가마

문제의 핵심에는 쌀이 있습니다. 지금도 논에 하우스를 짓는 농민들이 많습니다. 도무지 쌀로는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강진 나락값이 40㎏에 4만원선이 무너졌습니다. ‘죽을 사(死)자 사만원, 다 같이 죽자’ 외치며 거리로 나온 농민들이 받은 나락값은 4만5000원이었습니다. 이제는 4만원이 무너졌으니 4만원은 받아야겠다고 거리로 다시 나와야 한단 말인가요? 어른들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나락값이 4만원 하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20년 전인가 30년 전인가 모르겄네’ 하십니다.

트럭 앞 타이어 하나를 가는 데 9만원 합니다. 나락을 두 가마니 팔아도 타이어 하나를 구입하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이러니 논에 콩을 심고 옥수수를 심고 축사를 짓고 울금을 재배하고 이러다가 같이 쓰나미 폭탄을 맞는 겁니다. 천안함이 침몰할 때도 강진에는 비가 왔습니다. 하늘도 무심합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