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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여 김연아를 톱으로 뽑지마라.

pudalz 2010. 2. 27. 00:49

27일 신문이 나오기전 한겨레가 1면에 김연아를 뽑지 말았으면 하고 바램을 썼는데
내용이 설득력이 없고 좀 과한 주장처럼 비칠 수도 있어 나름 근거를 가지고 부드럽게 다시 짜집기 해보았다.
 
최근에 신문가판대를 유심히 지켜보며 느낀 것은

1면에 김연아 사진이 있으면 신문이 평소보다 더 나간다는 것이었다.

무가지도 마찬가지다. 좀 부끄럽지만 어쩌다보니 개인적으로 무가지 알바를 하고 있기에

퇴근길 시민들이 신문을 집어가는 속도를 보았다.

김연아 사진이 있는 날은 빨리 없어진다.

김연아가 금메달 타는 날

버스를 타고 시내를 왔다 갔다 했다.

버스를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김연아 뉴스만 나왔다.

공중파 라디오 방송에서 그것도 MBC도 그 긴시간 동안 다른 뉴스는

한 꼭지도 내보내지 않고 김연아 소식만 전했다.

그시간 MBC에서는 김재철 어용사장임명소식이 있었고

노조는 결사반대를 하고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MBC지키기시민행동을 결성해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지만 MBC조차 그랬다.

많이 지겨웠다. 내일 아침 한겨레가 김연아를 1면에

싣지 말기를 속으로 고대했다.

이유는 이것이다. 신문 방송 무가지 스크린 할 것없이 어떻게 이렇게

붕어빵일 수 있는가? 미친 사회 아닌가?

 



 



 

만약 한겨레가 김연아를 1면에 싣지 않았다면

가판대를 찾는 시민들에게 그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미디어비평 매체의 칭찬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 천편일률 모두가 같을 때 변별성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을 뺏는 기술이 아닐까 싶다.

한겨레 편집이 고수하고 있는 민주, 통일, 인본, 사회적 고통의 반영등이

돗보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음이 약해서 원하지는 않지만 시류에 휩쓸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

 

기자들은(속으로) 1면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김연아보도를 대하는 나의 반응은 복합적이다. 관심이 없고, 기쁘지 않고, 거부감이 생긴다.

김연아 개인의 성취, 한계 극복을 폄하하거나 깍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저는 축구중계를, 스포츠중계를 많이 보는 편입니다. 요새는 아예 TV를 보지 않지만.

왜 그럴까?

개인으로 보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성취요 기쁨이지만 현실로 보면

현실의 비극을 가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거에도 비극은 있었는데 왜 희희낙낙했는가?과거에는 현실의 비극을 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전두환시절처럼 이용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려고 했던 역사가 꺼꾸로 가는 역사는 아니였던 것 같다. 역사가 바르게 흘러갈 때 오락과 스포츠도 그 기능을 다 하는 것 같다. 상가집에 가서 웃고 축제집에 가서 우는 꼴이 아닌가? 우리의 전통도 상부상조하고 환난상휼해서 축제와 애도를 함께 나누었던 것 같다. 기뻐해야 할 때 기뻐했고 기뻐할 만큼 기뻐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시대가 역류하고
역류하는 시대의 스타는 비운의 스타다. 그는 원치 않겠지만 그런 것 같다.

과거 정권의 비호나 재벌의 후원으로 뜨던 스타들 중에는 시대가 바로잡히자

그 때의 부역으로 인해 스타덤에서 내려온 경우가 많다. 그 배우와 가수들은 무슨 생각이 있었겠는가? 아무 생각없이 살은 죄밖에 없는데도 인기를 잃어버렸다. 그 스타는 단지 시대를

잘못타고난 죄밖에 더 있던가?


시대의 흐름이 거꾸로 흐를 땐

시대가 그를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이고 사회적 고통을 호도하는 권력의 도구(희생양)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김연아 보도는 지나치다. 삶, 역사, 가치,현실, 현실의 반영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나치다. 왜 그런가? 김연아의 수상이 기뻐할 만한가치가 없는가? 있다. 김연아 개인의 성공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을 왜곡할 만큼 지나칠 때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그 부작용이 긍정적 효과보다 더 큰 것이다.

그래서 김연아 수상이 싫다. 따로 오락과 스포츠를 정치에 동원하는 문제는 여기서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 김연아 보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디어 비평차원에서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아마 이 지나침이 더욱 나를 자극하는지도 모른다.

버스안에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온 국민이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보면 최면효과가 발생하지 않을까?  마치 마취된 것처럼 자신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아픈 곳을 바라보지 않으려는 심리를 부채질하지 않을까?

인간의 부족함, 사회모순이 흐름의 표면에 드러날 때, 역사가 바로 흐를 때

기뻐할 만한 것이 공동의 기쁨이 되고 슬픔이 슬픔이 되지 않을까?

반복해서 화면과 소리를 들려주면 저도 모르게 세뇌된다는 또는 관심이 유발된다는 통계와 이론을 본 것 같고 그 중에서 중계자의 감정까지 이입된 스포츠 중계는 더하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 같고, 이유는 마약처럼 모든 말초신경이 그 곳에만 쏠리게 되어서인 것 같습니다. 1면에만 싣지 않고 내용은 그대로 얼마든지 보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  

 

 

 

 

한겨레여 김연아를 톱으로 뽑지마라.  

 

 

 

종일 들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타고 가는 내내. 지겹다.

무가지, 신문, 스크린. 고만 보고 싶다. 단신처리해라.

환난상휼 상부상조, 우리 겨레의 미덕이요 전통이다.

축제와 애도, 기쁠 때 함께 웃고 슬플 때 함께 우는 것이 우리 겨레의 피 속에 면면히 흐르는

문화 유전자다.

 

김연아의 수상이 과연 시대정신, 겨레의 유전자가 만든 역사가 될 만한가?



온 국민이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봐서 생긴 최면효과에 의해 발생하는 위안과 기쁨을 자신의 진짜 즐거움, 위안으로 알고

눈앞의 고통을 애써 잊으려하는, 마치 마취된 것처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두고

(마약 중독자나 극심한 자기학대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처럼 빠져나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중독,금단증세에 시달리는)

자신의 아픈 곳을 바라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두고 사리분별을 잃고 우리 겨레의 시대정신으로 삼아야 하는가?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는 이 흐름은 역행, 역류다. 역류를 가리는 오락과 위안은 진짜 신명나는 축제거리가 아니다. 기뻐할 만할 때 기뻐하는 것이 정상적인 역사의 물줄기요 우리가 만드는 역사다.

역사가 바로 흐를 때,

인간의 부족함, 사회모순이 흐름의 표면에 드러날 때

기뻐할 만한 것이 공동의 기쁨이 되고 슬픔이 슬픔이 된다.


개인으로 보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성취요 기쁨이지만 현실로 보면

현실의 비극을 가리는 이용물이 아닌가? 그것은 이 시대가 역류하고 있기 때문이고

역류하는 시대의 스타는 비운의 스타다.

그는 본성이 선하고 원하지 않아도

시대의 흐름이 거꾸로 흐를 땐

시대가 그를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이고 사회적 고통을 호도하는 권력의 희생양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김연아에 개인적인 사감이 없지만 이 시대가 김연아에게 없던 사감도

생기게 만든다.

김연아가 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쳐놓은 운명의 덫이라 하여도 김연아는 그 그물에 걸린 불쌍한 미끼 새일 뿐이다. 원하지 않지만 앞잡이 노릇을 해야 하는 존재다.

 


오락이 미쳐 날뛰어 생업보다 일보다 피붙이보다 중요한 가치 위안이 될 때는 시대가

그만큼 속으로 골병들고 있는 것이다.

김연아의 불행이요.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월드컵에 온 국민이 열광할 땐 괜찮고 김연아에 미치는 것은 불만이냐고 묻는다면

시대의 흐름 우리가 만드는 현실이 가는 곳을 보면 된다. 기뻐할 만한 흐름일 때

기쁨이 기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