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dal/언론

바늘도둑 소도둑

pudalz 2009. 6. 26. 14:07

정치권력의 시녀가 신데렐라정치권력으로 탈바꿈 된데는 정부, 기업에 이은 3등권력이 경제권력까지 지니도록 언론기업의 기업비리를

내버려둔 우리들의 책임이란 말이다.

도둑놈은 사법처리하면 된다. 우리에겐 소도둑놈을 사법처리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권력을 바꿀 것인가?

그것은 조중동이란 정치권력이다. 그들은 경제권력이기도 하고 사회권력(매개체권력)이기도 하다.

조중동이 오늘날과 같은 괴물권력의 면모를 띠게 된 것은 우리사회의 비리의 용인때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언론에 의해 노출되는 권력의 비리에 비해 비리를 보도하는 언론사의 비리를 감시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언론탄압이란 약점을 잡고 있으므로. 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조중동이란 괴물권력이 등장하게 만든 것은

어쩌면 불가사리(괴물)가 쇠붙이(금전)로 몸집을 불리 듯이 그들의 비행, 사기, 도둑질을 좌시한 인과응보이다.

정치권력의 확성기, 주구 노릇을 하던, 권력의 약점을 잡고 권력을 행사하던 일개 신문사들이

21세기에 괴물권력으로 탄생한 것은 애초에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의 시녀가 신데렐라정치권력으로 탈바꿈 된데는 정부, 기업에 이은 3등권력이 경제권력까지 지니도록 언론기업의 기업비리를

내버려둔 우리들의 책임이란 말이다.

바늘도둑이 손버릇이 나빠지기 시작했을 때 적절히 견제해주었드라면 오늘날과 같이 도둑질을 하고도 티끌만큼 양심의 가책조차 느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무딘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심장에 소털 난 소도둑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중동이란 권력의 핵심엔 수십년간 이어져온 그들의 기업비리가 있고, 그  기업비리가 조중동이란 권력의 핵심이다.

도둑질이 가능하지 않았다면 조중동은 오늘날과 같은 정치경제언론을 아우르는 거대맘모스변이괴물권력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조중동의 도둑질은 가랑비였다. 젖는 줄도 모르게 흠뻑 옷을 적신 가랑비, 하는 줄도 모르게 슬금슬금 한 도둑질이 이제는

대도를 만든 것이다. 우리사회에 가랑비가 내렸는데 그 비를 몰랏거나 알면서도 가랑비라고 우산을 펴지않고 내버려둔 것이

오늘의 이런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고 국민을 말아먹으려는 매국정치공작집단 조중동에게 시달리게 된 것이다.

 

해답은 간단하다.

공식투명하게 조중동의 기업비리를 만천하에 공포하면 그것으로 우리사회를 덮고 있는 먹구름은

간 데 없이 사라진다. 어려운 일이다. 더이상의 이념대립이란 허상, 지역감정의 반목, 가정불화, 직장불화

소리없는 강시들과 시민의 대리전쟁은 말끔히 없어진다.

 

 

 

우리사회의 정치권력의 실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조중동과 일가인가? 국민이 뽑은 MB정부인가?

어떤 정치권력을 몰아내고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것인가? 정치적 이상을 완수하겠다는 것인가?

정치가 중요하다고,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지망생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의 바탕을 이루는 사회를 바라보는 사회관, 인간을 바라보는 개인관은 무엇일까?

그들이 바라보는, 또는 참여하는 민중이 바라보는 체제는 어떤 모습인가?

정치체제, 경제체제, 사회(미디어)체제는 어떤 모습일까?

혹자는 민주주의를, 혹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나같은 혹자는 사회체제의 왜곡을 이야기한다.

이 모든 체제는 전체가 하나의 체제인 것이다. 바로 삶과 생명의 연속선상에 있는 하나의 체제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하나의 체제만을 문제삼거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의 문제는 지적해도

미디어란 사회체제 또한 체제의 하나라는 것은 간과한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미디어도 하나의 사회체제임을 공감하는 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한다.

그래서 실상을 정확히 보고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썩어빠진, 무도한 탐욕권력을 제거하고

존재하는 생명이 함께 사는 것을 '함께' 염원하기를 바란다.

촛불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가 인간은 정치적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도 정치적이다.란 슬로건과

정치는 삶과 사회의 일부분이다란 생각이다. 한쪽은 구조만을 이야기하고 한쪽은 삶을 이야기한다.

정당에 적을 가진 사람은 구조만을 문제시 삼고 시민은 사회를 삶을 문제시한다.

서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에 정치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정치가 삶과 사회의 전부가 될 수는 없는데도 정치가 모든 것이다라고  믿는 확고한 세계관에 의해

상호 소통에 애로가 장벽이 발생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의 문제가 존재하고

부도덕하고 야만(무법)적인 정치권력의 지배에 대한 저항 때문이겠으나

공감대는 부분적인 강조가 아니라 전체로 볼 때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정당인의 각성이 필요하다.

사실 정당인과 촛불의 구분이 모호하다. 정당인이라 해보았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람들이고 이사람들의 비전은

촛불의 비전과 다른 것이 없다. 우리 모두 아직은 미숙하다. 미숙하기에 하나의 세계관을 고집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