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 프리온, 왜 인간을 공격하나 | |
괴질·광우병 등 미스터리 다큐 형식으로 얽어 ‘20년 전의 영국’ 닮아가는 미국에 경고의 눈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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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맥스 지음·강병철 옮김/김영사·1만6500원
영국에서 소들이 광우병(BSE: 소 스펀지모양 뇌증)으로 쓰러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많은 농장에서 양순하던 젖소들이 어느 때부턴가 사람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소들은 몸을 떨고 비틀거리며 걷다가 쓰러졌다. 다시 일어난 소들도 휘청거리다가 결국 쓰러져 죽었다. 이후 10여년 동안 20세기 최대의 식품공포가 세계를 휩쓸었다. 80만 마리의 영국소가 광우병에 걸렸다. 그중 20만 마리와 감염됐으나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60만~160만 마리가 식용으로 가공돼 영국 슈퍼마켓을 통해 팔려나갔다. 마거릿 대처 총리는 영국은 그 분야 최고 과학자들을 확보하고 있다며 국민들을 안심시켰으나 거짓말이었다. 정부는 19세기 초 양들을 무더기로 쓰러뜨렸던 ‘스크래피’일 것으로 추정하고 이미 프리온 항체까지 개발한 외국의 앞선 연구들을 무시했다. 영국 정부는 스크래피가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며 그 뒤 8년 동안이나 대책 없이 어물쩍거렸다. 1990년에 고양이가 스펀지모양 뇌증으로 죽은 사실이 확인되자 광우병이 종의 벽을 뛰어넘어 사람까지 감염될 수 있음이 명백해졌다. 공황 상태에 빠진 각급 학교들이 급식에 자국산 쇠고기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영국산 쇠고기를 외면했다. 정부와 육우업자들은 그때까지도 딴전을 피웠다. 존 검머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자신의 네살배기 딸과 텔레비전에 함께 출연해 햄버거를 먹는 깜짝쇼까지 펼쳤다. 공무원들은 학교마다 돌아다니며 급식에 다시 영국산 쇠고기를 넣도록 설득했다. 정부 보조단체 육류가축위원회는 ‘가장 맛있고 창의적이며 기발한 어린이용 육류제품 콘테스트’를 열었다. 런던에서 20년 전에 벌어진 이런 행태를 우리는 세기가 바뀐 최근 서울에서 목도했다. 영국에서 모든 동물사료에 동물 단백질 사용을 금하는 법은 1996년에야 발효됐다. 93년 초 “비프버거를 달고 살았던” 16살 소녀 빅토리아 림머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우병 걸린 소가 휘청거리듯” 걷는 병에 걸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 림머의 뇌 부검 소견은 “심한 신경학적 손상을 겪은 90살 할머니의 뇌와 비슷하다”고 돼 있었다. 온통 구멍투성이였다. 모두들 산발성 시제이디(CJD·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라고 했으나 이 최초의 인간광우병 환자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여전히 기만적이었다. 정부 수석의무관 케네스 칼먼은 주장했다. “시제이디는 극히 드문 병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원인으로 이 병에 걸립니다. 감염된 고기를 먹고 이 병에 걸린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대처 후임으로 총리가 된 존 메이저는 시제이디로 사망한 젊은 고기파이 가게 주인의, 비탄에 젖은 어머니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사람은 ‘절대로’ 광우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 엉터리 광우병 대책은 97년 메이저의 실각에 한몫했다. 이 문제가 정권의 안위를 흔들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이미 10여년 전에 경험했던 것이다. 대중은 1100만 마리에 이르는 모든 영국소의 살처분을 원했고, 결국 수십억 파운드를 들여 30개월 이상된 소 330만 마리를 죽였다. 4천여명의 영국인들이 프리온에 감염된 것으로 조사됐으며 그 가운데 150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숨졌다. 그 자신이 변형 단백질로 비롯된 질병을 앓고 있는 미국인 과학 저널리스트 대니얼 맥스의 <살인단백질 이야기>는 미국 농무부 역시 “쇠고기와 우유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사태를 감추는 데 혈안이 됐던” 영국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아니 한술 더 뜬다. 농무부는 자국 육가공업체들이 일본 소비자를 만족시키려고 모든 소를 검사하겠다고 발표하자 오히려 못 하도록 막았다. 업체들의 자체 조사로 진실이 드러나면, 미국 육가공업체 수익을 두 배 이상 높여줄 국제적 금수조처 해제가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그나마 미국 거대 육가공업체들은 일본 못잖은 소비자인 한국은 고려 대상에 넣지도 않았다. 그 뒤 ‘알아서 기는 나라’ 한국과 한 쇠고기 협상 결과를 보건대 그들은 현명했다.
지은이는 영국을 뒤따라가는 듯한 미국에 우려의 눈길을 보낸다. ‘돈 벌어 주는 기계’로 몰아가는 육종 방식은 오히려 영국을 능가한다. 여러 장치로 실상을 가리고 있을 뿐이지 미국엔 이미 소와 사람들이 다수 광우병에 희생되고 있음을 지은이는 강하게 암시한다. 일본과 대만 등이 미국의 압력에 넘어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살인단백질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살인단백질’, 곧 광우병의 원인물질인 프리온의 출현과 그것을 규명해내려는 인간들의 노력을 구체적인 역사와 사건들을 통해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기법의 책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기둥 줄거리는 200여년 전인 18세기 중엽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살던 유대인 의사가 첫 발병자인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FI)과 지금까지 저주가 이어지고 있는 그 가문의 역사와 후손들의 대응이다. 원제가 ‘잠들지 못하는 가문: 의학 미스터리’다. 여기에 19세기 영국 양들을 무더기로 쓰러뜨린 역시 치명적인 ‘스크래피’, 웃다가 죽는 병으로 잘못 알려진 파푸아뉴기니 오지의 괴질 ‘쿠루’, 그리고 광우병의 역사가 날줄로 엮인다. 이들 질병의 공통점은 바로 프리온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 인간 행동이 낳은 괴물이지만 여전히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그 프리온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광우병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 준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산발성 CJD알츠하이머 병도광우병?
예일대 신경과 교수인 엘리어스 매뉴얼리디스와 로라 매뉴얼리디스 부부는 사인이 알츠하이머병인 사망자 46명의 조직을 구해 조사했다. 그 결과 그들 중 6명이 사실은 알츠하이머가 아니라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후속 연구들 소견 역시 그것과 일치했다. <살인단백질 이야기>의 지은이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미국인이 수백만에 이르므로, 이는 사실상 연간 수천명의 환자들이 의학적으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시제이디로 죽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시제이디에는 유전성 시제이디, 우연히 걸리는 산발성 시제이디, 감염으로 발생하는 변종 시제이디가 있는데, 미국 정부는 산발성 시제이디를 광우병 감염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고 시제이디 환자들을 대부분 산발성 시제이디로 간주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시제이디가 우연히 발생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 지은이가 인터뷰한 시제이디 환자의 친척들 대부분은 가족의 병이 산발적 질병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미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또는 거의 모든 시제이디는 감염성이며, 연방정부에서 그 사실을 고의로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주류 과학자들 역시 산발적 시제이디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의문을 품고 있고, 산발적 시제이디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무능하거나 아니면 진실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결국 지은이는 광우병이 이미 미국에 상륙했고, 사람들이 걸려 죽어가고 있으며, 다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프리온(Prion)은 ‘단백질로 된 감염성 입자’라는 뜻을 지닌 영어 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에서 따온 말이다. 스탠리 프루시너가 1982년에 명명했고, 그는 9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프리온은 열과 방사선으로도 쉽게 파괴할 수 없으며 불에 타 재가 되더라도 감염 능력을 지닌다.
프리온은 살아 있는 물질이 아니므로 프리온 감염이란 순전히 기계적인 과정이다. 커트 보니거트의 공상과학소설 <실뜨기 놀이>에는 보통보다 높은 온도에서 어는 물 ‘아이스9’가 등장하는데, 한 광인이 고의로 아이스9의 핵을 방류한다. 그것은 분자들이 스스로를 배열하는 경향성을 일컫는 ‘핵형성’ 과정을 통해 온 세상의 물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린다. 감염성 단백질과 결합한 정상 단백질이 연쇄적으로 감염성 단백질로 바뀌어가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한승동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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