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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광우병 공포… 과학자는 뭐했나-경향

pudalz 2008. 6. 21. 18:08
[쇠고기 협상파문 릴레이 기고]⑥광우병 공포… 과학자는 뭐했나
입력: 2008년 05월 26일 18:23:21
 
사이클론이 미얀마를 휩쓸고 대지진이 중국 쓰촨성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이, 한반도에선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온 국민을 정신적으로 강타했다. ‘광우병 공포’라는 단어가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며 ‘줄기세포’ 이후 가장 유명한 과학용어가 됐지만, 사실 국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광우병이 아니라 우리나라 검역체계일 것이다.

30개월 이하와 이상 된 소를 구분할 수 있는 정확한 방법도 확립되지 않은 데다가,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라 하더라도 수입을 중단할 권한이 없으며, 미국인이 잘 먹지 않는 부위가 대거 수입됨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검역 체계가 준비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국민적 불안을 증폭시킨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엔 ‘안 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다가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협상과정에서 영문 번역을 잘못하는 실수까지 범하면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이제 온 국민이 광우병 전문가가 되어 그것에 걸릴 확률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확률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부만 모르고 있다. ‘광우병 공포는 언론과 인터넷이 만들어낸 괴담’이라며 엉뚱하게 남의 탓만 해온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으로 판단해 보자면, 세상의 모든 전염병은 대한민국에선 치명적일 수 있다.

이번에 광우병 공포가 형성되고 증폭되는 과정을 보면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각별히 우려스러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한·미 쇠고기 협상처럼 중요한 협상에 임하는 외교통상부 협상단은 과학자들의 자문을 얻어 광우병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하고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것들을 분명히 하고 갔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참여정부가 준비해온 모든 요구사항들을 그토록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것이 왜 중요한지 전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20개월 이하’ 소만 수입할 수 있었던 것도 협상단이 과학적으로 철저히 준비해갔기 때문이란 걸 우리 협상단도 알아야 한다.

광우병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음에도 불구하고, 한 동안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우리 과학자 사회는 과학과 관련해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했을 때 권위있는 단체와 과학자들이 이 문제의 핵심을 명확히 짚고 과학적인 사실을 발표함으로써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줄이는 데 소홀해 왔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을 아껴온 관행이 팽배한데,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당연한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번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정부는 광우병 전문가의 조언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다가, 상황이 심각해지자 과학자들을 이용해 ‘광우병의 발병확률이 높지 않다’는 과학적 논리로 뒤늦게 사태를 막으려 했다. 과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이용돼선 안되며, 소신껏 자기발언을 해야 한다.

끝으로, 이번 사태는 결국 평온을 되찾을 것이며 아마도 2~3년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국산 쇠고기는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이번 광우병 사태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나친 육식문화에 대한 자기반성과 동물과 인간에 대한 관계를 재고하는 기회로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컬럼비아대 리처드 불리엣 교수의 저서 ‘사육과 육식’(2008)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후기사육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지구위의 동물은 야생동물과 애완동물뿐이며, 소나 돼지, 닭 등 그 외의 동물은 모두 햄버거와 포장육과 같은 제품일 뿐이다. 수명이 20년인 소를 태어난 지 3년 이내에 잡아먹어야 한다고 협상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우리 10대들이 소와 닭을 대형할인마트의 포장육으로만 인식할까봐 걱정이다. 이 모든 공포가 인간의 지나친 육식소비를 따라잡기 위해 초식동물에게 고기를 먹이면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재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