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면 죽는다”, 주파수 쟁탈전 본 게임은 지금부터
UHD 지상파는 ‘아웃 오브 안중’?, 결국 ‘알박기’ 주파수 할당… “아직 가능성 열려있다”는데
입력 : 2014-11-15  12:12:47   노출 : 2014.11.15  13:27:34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재난망 주파수가 결국 ‘알박기’ 방식으로 할당됐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당혹해 하는 분위기고 미래창조과학부는 표정 관리에 바쁜 모습이다. 주파수심의위원회는 14일, 미래부가 상정한 통합공공망용 주파수 분배안을 심의해 718∼728MHz와 773∼783MHz  대역 각각 10MHz폭씩 20MHz폭을 통합공공망으로 우선 분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잔여대역 88MHz폭에 대해서는 내년 상반기 위원회 상정을 목표로 활용방안을 마련하도록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황금 주파수로 불렸던 700MHz 주파수는 지상파 방송사들을 대변하는 국회와 통신사들을 대변하는 미래부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됐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은근슬쩍 발을 빼고 있는 상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UHD 방송을 하려면 이 대역 주파수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통신사들은 지상파 UHD 방송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향후 트래픽 폭증에 대비해 통신용으로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에서 지상파 방송사들 편을 들고 나서자 미래부는 일단 재난망만 할당하고 나머지는 원점에서 논의하겠다고 물러섰으나 이번에 굳이 지상파들이 반대하는 대역에 재난망을 할당해 사실상 지상파 방송사들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물론 미래부는 공식적으로는 아직 지상파 UHD 방송을 포기한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여전히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이야기다.

   
방송사들이 보는 두 가지 시나리오. 윗쪽으로 가면 통신용으로도 일부 할당할 수 있지만 아랫쪽 시나리오처럼 이번에 할당된 재난망 주파수 방식으로 가면 세 구간으로 나눠서 채널을 할당 받아야 하고 가드 밴드 때문에 남는 구간이 없게 된다. ⓒ방송기술인연합회 제공.
 

당초 지상파 방송사들은 미국 표준을 반영해 하향 758∼768MHz와 상향 788∼798MHz 대역을 재난망으로 할당하자고 제안했고 일부 국회의원들도 이를 지지하기도 했다. 미래부 등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주파수 배분 기준에 따라 하향 718∼728MHz와 상향 773∼783MHz 대역을 할당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미래부 할당 계획은 UHD 지상파 방송을 포기한다는 의미라며 거세게 반발했으나 주파수심의위는 결국 미래부의 손을 들어줬다.

미래부는 표면적으로 “미국 표준은 일본의 NTT도코모 등이 쓰는 통신용 주파수와 겹치는 대역이 있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 재난망 주파수의 역할에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2010년에 만들었던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재난망 주파수를 할당하고 남는 주파수 대역을 통신용으로 할당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한국방송협회는 성명을 내고 “정부가 국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기존 주파수 정책안을 고수해 지상파 방송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경매수익 욕심에 매몰돼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혜안을 상실한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 결정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방송협회는 “국민의 무료 보편적 UHD 시청권을 박탈하는 미래부의 주파수 정책을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윗쪽이 미래부가 이번에 확정한 재난망 배치에 따른 시나리오. 통신용으로 할당하긴 좋지만 지상파 방송용 주파수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아랫쪽은 방송사들 주장인데, 지상파 54MHz폭이 통째로 들어갈 수 있다. 두 시나리오 모두 방송이냐 통신이냐, 결국 올 오어 낫씽의 게임이다. ⓒ방송기술인연합회 제공.
 

지상파 방송사들은 UHD 방송을 하려면 11개 채널이 필요한데 2개 채널은 다른 대역에서 확보하고 700MHz 대역에서 최소 9개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개 채널에 6MHz 폭씩, 최소 54MHz 폭이 필요하게 된다. 만약 미국식으로 재난망을 할당하면 54MHz 폭을  통으로 할당하고 남는 대역을 통신용으로 할당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 채택된 미래부 안에 따르면 연속된 구간을 할당할 수 없어 여러 구간에 걸쳐 나눠서 할당해야 한다.

문제는 다른 용도로 할당된 주파수와 간섭을 피하려면 양쪽으로 최소 6MHz씩 보호구간(guard band)를 둬야 하는데 여러 구간에 분산되면 보호구간에 소모되는 주파수가 늘어나게 된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의 계산에 따르면 미국식으로 할당하면 재난망으로 20MHz폭, 방송용으로 54MHz 폭을 할당하고도 34MHz폭이 남기 때문에 이를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지만 방송용을 찢어놓으면 남는 주파수가 거의 없게 된다.

그러나 미래부 전파정책기획과 이병진 사무관은 “일단 미래부가 지상파 UHD 방송을 포기했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재난망을 미국식으로 할당하더라도 어차피 남는 주파수는 짜투리 주파수인데다 표준에도 맞지 않아 통신용으로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관은 “나머지 주파수는 아직 용도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게 미래부의 입장”이라면서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KBS 기술기획부 서흥수 부장은 “미래부 안으로 재난망을 ‘알박기’하고 지상파 11개 채널을 할당하려면 세 블록으로 쪼개야 한다, 당연히 각각 보호구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 부장은 “미국식으로 하면 일본에서 쓰는 통신 주파수와 겹쳐서 안 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핑계”라고 주장했다. “특성 조정만 하면 기술적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이야기다.

재난망은 세월호 사태 이후 통합적인 비상 통신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나 PS-LTE 방식으로 결정되면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존 통신사들이 쓰는 상용망을 쓰지 않고 자가망을 구축하려면 전국에 걸쳐 기지국과 중계기를 별도로 설치해야 하는데 2조원 이상 비용이 든다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이 때문에 기존 통신망과 결합해서 쓰는 대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UHD 지상파 방송이 가능할까. 주파수 심의위가 미래부 요구를 받아들여 재난망을 할당하면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가전제품 매장의 UHD TV. ⓒ삼성전자 제공.
 

서 부장은 “미국식으로 갔으면 지상파 방송사들과 통신사들이 700MHz 대역을 나눠쓸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나머지 주파수 전부를 다 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면서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미래부가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서 부장은 “지상파 UHD 방송을 하려면 700MHz 대역에서 9개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지상파 입장에서는 양보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미래부 이 사무관은 “재난망으로 쓸 텐데 정작 비상 상황에 간섭이 생긴다거나 하는 상황은 원천적으로 피하는 게 기본”이라면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아직도 700MHz 대역에서 9개 채널을 할당할 수 있기 때문에 UHD 지상파 방송을 포기했다고 보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관은 “방송용이냐 통신용이냐, 방송용으로 쓴다면 9개 채널을 다 줄 것이냐 5개만 줄 것이냐 등등은 미래부가 언급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방송기술인연합회 이후삼 회장은 “미래부는 옛 방통위 시절 만들었던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밀어붙이고 있으면서 UHD 지상파 방송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립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중장기적으로 방송과 통신의 주파수 수요를 함께 고민해야 할 텐데 임기응변식으로 그때그때 할당하면서 계속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이번 재난망 할당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고 안타깝지만 본 게임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흔히 UHD 방송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큰 화면만 생각하는데 휴대전화 액정화면도  계속 해상도가 높아지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모든 방송 콘텐츠가 UHD 화질로 가게 될 거라고 본다”면서 “UHD 지상파 방송의 싹을 미리 잘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통신사들은 당장 주파수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700MHz가 유일한 대안도 아니지만 방송사들은 700MHz 대역을 못 받으면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