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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만든 ‘장님 소년’ 아십니까

pudalz 2013. 11. 19. 06:12

점자 만든 ‘장님 소년’ 아십니까



프랑스인 루이 브라이, 1824년 15세 때 ‘발명’…‘나홀로 연구’ 3년 만에 개가






점자를 발명한 루이 브라이의 사망 1백50주년을 맞아 유럽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행사와 출판물 발간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여성 헬렌 켈러는 앞도 못보고 말도 못하는 장애를 이겨낸 불굴의 위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헬렌 켈러가 사용하던 점자를, 앞 못보는 프랑스 소년 루이 브라이가 열다섯 살 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프랑스 정부는 브라이가 죽은 지 100주년이 되는 1952년 1월6일 그의 유해를 ‘국가 영웅’들이 묻히는 팡테온으로 옮기고 헬렌 켈러 등 전세계의 저명한 시각 장애인들을 초대해 추모식을 열었다. 최근 브라이 사망 150주년을 맞아 유럽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행사와 출판물 발간이 잇따르고 있다.

시각 장애인 소년이 어떻게 점자를 만들었을까, 또 오늘까지 이렇게 큰 관심을 모으는 까닭은 무엇일까? 브라이는 말안장을 만드는 집안의 넷째로 1809년에 태어났다. 가족이 일하는 작업장에 호기심을 갖고 드나들던 브라이는 어느 날 예리한 작업 도구에 한쪽 눈이 찔리는 사고를 당했다. 눈의 상처에 염증이 나 다른 눈마저 세균에 감염되자 두 눈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간 브라이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열살 때는 파리의 국립 특수학교에 장학생으로 뽑혔다.





브라이의 첫째 소망은 읽고 쓰기. 프랑스에서 처음 세워진 파리의 특수학교에서도 이런 소망은 이룰 수 없었다. 학교 교재는 가느다란 철사를 글자 모양으로 구부려 종이 위에 박은 것이었다. 보통 예민한 촉감이 아니고서는 글자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고, 책은 지나치게 무거웠다. 제작비가 비싼 책을 만드는 데 투자하기를 꺼린 학교는 직업 훈련을 첫째 과제로 삼아 주로 목공 기술을 가르쳤다.





선과 점 이용한 ‘바비에 점자’에서 힌트 얻어

그러던 어느 날 브라이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군 장교(바비에)가 교장을 찾아와 점자를 소개했다는 것이다. 바비에는 야전 작전 지역에서 밤에 비밀 전문을 알리는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달빛도 촛불도 없는 칠흑 같은 밤에 비밀 전문을 쓰고 읽을 방법이 없을까? 그는 고민 끝에 점 12개와 선을 사용하는 점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시각 장애자들에게도 유용하리라고 생각했다. 바비에는 프랑스 과학원에 편지를 보내 자기가 발명한 점자를 알린 후 특수학교를 찾았다. 그러나 교장은 학생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니 더 연구해 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바비에가 학교를 방문한 사실을 소문으로 들은 브라이는 한 줄기 햇살을 본 듯했다. 그는 먼저 ‘바비에 점자’를 소개하는 자료를 모아 검토했다. 그 결과 바비에 점자가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책 한 쪽에 기껏해야 문장 2개뿐이라면 의미가 없다. 선을 없애고 점으로만 글자를 만들자.’ 이렇게 생각하고 홀로 연구에 들어간 브라이는 교장을 설득해 바비에와 만날 기회를 얻었다. 이때 브라이는 열두 살. 그는 자기 생각을 전하고 조언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바비에는 냉담하게 거절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 작업장에 들른 브라이는 송곳으로 두꺼운 판지에 구멍을 6개 뚫었다. 브라이는 구멍 뚫린 판지를 통해 알파벳 문자를 하나하나 만들어 보았다. 그 이치는 간단하다. 구멍 6개는 주사위의 한 면처럼 배열되어 있는데, 시각 장애자는 이 중 검은 구멍의 위치와 조합을 손으로 구별해 글자를 알아낸다. 예를 들어 현재 독일에서 사용되는 점자 자판을 보면, 첫 열 글자(a∼j)는 첫째·둘째 줄의 점 4개를 사용하며, 그 다음 열 글자(k∼t)는 여기에 셋째 줄의 왼쪽 점을 덧붙여 표시한다. 나머지 글자는 셋째 줄 오른 쪽 점을 덧붙인다. w 표기는, 브라이의 모국어인 프랑스어에는 w가 극소수여서 이 원칙에서 예외이다(위 오른쪽 독일에서 사용하는 브라이 점자 참조).

점자 사용 금지하고 점자 책 태우기도



루이 브라이는 여섯 점을 조합해 알파벳 문자와 기호는 물론이고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냈다. 위는 현재 독일에서 사용되는 점자 자판이다.
브라이는 여섯 점을 조합해 알파벳 문자에 이어 문자 기호와 숫자를 만들고 마지막에는 문장도 만들어 보았다. 결과는 완벽했다. 3년 동안의 연구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브라이의 점자는 수업에 사용하도록 허락받았고, 학생들은 브라이가 가르치는 점자에 환성을 질렀다. 책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물론 강의를 받아 적고 서로 의사 소통도 할 수 있는 꿈 같은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브라이는 특수학교에서 사귄 친구(고티에)로부터 피아노 연주를 배웠다. 그후 브라이는 파리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청각에만 의존해 연주하던 그에게 악보를 점자로 표기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해결하고 싶은 문제였다. 점자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열아홉 살에 특수학교 교사가 된 브라이는 이 문제와 씨름했다. 브라이는 또 점자를 비시각 장애인들도 쉽게 읽기를 바랐다. 점자의 모양을 문자에 가깝게 변형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과제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던 무렵, 뜻밖의 비보가 닥쳤다. 점자 연구에 몰두해 몸을 혹사한 탓으로 스무 살 때 폐렴에 걸린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특수학교 신임 교장(뒤팡)은 점자 사용을 금지했다. 그는 점자를 사용하면 시각 장애자들이 비장애자들과 분리된다는 이유를 들어 점자 책을 불태웠다. 한때 실의에 빠졌던 브라이가 요양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 다행히도 희소식이 들려왔다. 뒤팡은 브라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압력에 밀려 점자 사용을 허용했고, 1850년에는 파리 교육 아카데미가 브라이 점자를 시각 장애자들의 교육 문자로 인정했다.




브라이는 죽은 뒤에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영국에서 브라이 지지자들이 1868년에 세운 ‘점자 지원 협회’는 그 후 왕실 기구로 승격했고, 1878년 파리 국제시각장애인회의는 브라이 점자를 공식 문자로 채택했다. 브라이 점자는 그 후에도 몇 차례 개선 작업을 거쳐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독일 연방 체신부는 점자 우편물을 무료 배달한다. 주간지 <디 차이트>는 점자판을 따로 발행해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무료로 보내 준다. 그러나 시각 장애인들의 교류와 사회 참여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독일시각장애인협회는 브라이 서거 150주년을 맞은 지난 1월6일, 무엇보다 인터넷 정보를 점자로 재생하는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하며, 여기에 필요한 프로그램은 이미 충분히 개발되어 있는데도 대다수 웹사이트가 기술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세기의 기술 혁명인 인터넷 통신이 19세기의 기술 혁명인 점자 문화를 수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허 광 편집위원 rena@e-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