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dal/언론

야권통합과 지식

pudalz 2011. 6. 9. 14:57

머리로 상대를 이기려하지 마라

 

어떤 이는 가족의 보살핌아래서 안정적으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겠지만

어떤 이는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모시며 어려서부터 생활비와 학비를 번 사람도 있다.

대학가서 공부에 집중하고 선배들과 교유관계를 맺고 훌륭한 선생님도 만나고 사회현안에 대해

정의에 편에 서서 목소리도 내고, 축적된 인문학적 지식을 습득할 때,

어떤 이는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참고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손가락이 굽도록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한 사람도 있다.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지식을 머리로 배우고 행동으로 옮길 때

현실의 고통에서 배우며 세상을 익힌 사람도 있다.

조금 더 먼저 배운 지식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배움의 깊이와 폭이 다 다르다. 삶과 인간, 세상, 자연에 대한

성찰이 다르다. 뭘 좀 안다고 본질을 꿰뚫게 되지는 않는다.

 

그 지식과 지혜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머리로 상대방을 굴복시킨 것에 의기양양하고

사회생활에서도, 삶, 일과 관련된 사회현안에 목소리를 낼 때도 관계자들을 굴복시키는 것에

논리적으로 이기는 것에 성취감을, 존재감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봤자 상대의 마음을 얻지도 못하고, 이기려고 기를 쓴 일의 성과도 나지 않는다.

타인의 조력과 협력이 없으면 별 발전도 없고, 소속된 단체 회사도 발전하지 않는다.

결국 동료도 자신도 회사도 부평초처럼 흔들리다 원하지 않는 어딘가로 떠밀려가게 된다.

 

세상은 싸우고 대립하고 적자생존하라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살기위해 이렇게 아둥바둥한다.

논리로 설득하기보다 타인의 마음을 얻기위해 노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을 얻는 다는 것은 생산을 동반한다.

더 많이 땀을 흘려야 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것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고싶을 때

자발적으로 목적의식없이 순수할 때, 세상이치가 그렇기 때문에 그에 동화했을 때

세상과 하나가 되었을 때, 원인과 결과에 대해 생각해볼 때, 그것이 유한한 에너지가

노력이 자원이 돌고 도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때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남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알면서도 그렇게까지는 살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하여간 그렇다. 야권이 통합되었으면 좋겠는데 여기서도 역시

사회생활에서 생기는 인간관계에 발생하는 세계관 인간관의 문제가 똑같이 발생하는 것 같다.

동지,사회,인간에 대한 믿음이 얕다.

서로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란 말도 생각난다.

굳이 승벽이 있다면 승리하고 싶다면 먼저 굴복하라는 동네분 말처럼.

 

지식과 비판은 다르다.

상호 견해 관점 성향 취향 의견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다보면

관성 습관이 붙는다.

잘못된 편견, 아집, 습관 관성이 다양성을 해치고 존엄을 파괴하고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는

인습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누군가 선의를 가지고 말해주어도 잘 모르는 사람 사이에선

모독과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다.

이럴 때 선의의 비판이 조식을 개인을 건강하게 만든다.

조직과 개인의 자기부정이 성찰과 발전를 유발한다.

비판의 긍정적 작용을 극대화할 수록 좋다. 이때도

자기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 굳어진 소신 등이

타인의 지식 소신과 크게 차이가 날 수 없음을 고려하며

비판을 제기하면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뭐 하여간 횡설 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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