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침묵’ 민심 속뜻, 언론은 몰랐나
미디어오늘 | 입력 2010.06.09 11:33
끓어올랐던 견제론, 전문가들은 외면…여론조사, 바닥민심 담지 못해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 6월2일 제5회 동시지방선거는 여권의 참패로 끝이 났다. 언론사, 여론조사기관, 정치분석가들의 선거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민심의 거대한 흐름은 이명박 정부 '견제론'에 쏠려 있었지만, 언론을 포함한 전문가들은 이를 무시했다. 정치사에 길이 남을 선거예측 실패는 '여론조작' 선거라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번 선거에서 교훈을 얻어 선거여론조사 보도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편집자
"서울은 강남을 빼놓고 (구청장 선거에서) 백중 열세인 게 사실이다." 정두언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지난 4월25일 기자간담회에서 비관적인 선거전망을 내놓았다. 정두언 위원장 주장의 근거는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 결과였다.
'6·2 지방선거'가 한나라당 참패로 끝나자 이변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지만, 한나라당 참패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김제동, 윤도현 등 유명 연예인들이 사회 현안에 대한 소신 발언을 한 이후 프로그램 퇴출 등 불이익을 당하면서 일반인들도 정치의사를 나타내는 것을 주저했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바닥민심은 여당에 불리했고, 여당 지도부 역시 여당의 프리미엄을 인정했다. 정두언 위원장은 당시 여론조사의 여당 프리미엄을 +10% 정도로 분석했다.
정두언 위원장 발언은 진심이 담겨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현실이 됐고, 한나라당은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 정두언 위원장이 비관적인 전망을 할 시점은 4월25일로 천안함 침몰(3월26일) 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천안함 변수는 이미 반영됐다는 얘기다.
40대 민심에 담긴 지방선거 의미
이번 지방선거는 처음부터 한나라당에 불리한 선거였다. 언론도 한나라당에 불리한 선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중앙일보는 5월11일자 4면과 5면을 걸쳐 '지방선거 승리 7가지 법칙'이라는 기사에서 △정권 심판론 위력 △야당 숨은 표 △보수 분열 등을 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큰 요인으로 분석했다.
2008년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 이후 한나라당은 각종 재보선에서 전패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다를 것이란 주장도 있었지만 근거는 '대통령 지지율 50%'라는 신기루 같은 주장이었다. '자화자찬'에 가까운 자의적 여론 해석을 근거로 여당 우세론을 점친 것은 패착이었다.
여당 견제론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그 흐름을 이어간 중요 변수였다. 선거를 전망할 때 주요 변수 중 하나는 40대 민심이다. 40대 마음을 얻지 못하면 승리하기 어려운 게 세대별 정치양극화 성향이 뚜렷한 한국 정치 특징이다.
내일신문-디오피니언의 4월27일 여론조사를 보면 40대가 보는 지방선거의 성격은 '이명박 정부 견제'가 48.0%, '이명박 정부 힘 실어주기'는 24.4%로 나타났다. 견제론은 여당에 유리
한 환경인 여론조사 지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 결과이다.
중앙일보 선거 3일전 보도, '정권견제론' 우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선거 직전인 5월31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일보 여론조사 자료를 보니 이번 선거가 이명박 정부 심판하는 선거라는 의견이 65%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앙일보는 SBS, 동아시아연구원, 한국리서치와 5월24~26일 서울 경기 충남 경남 전북 등을 대상으로 2차 패널조사를 했고, 5월31일자 8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중앙은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는 데 5개 지역 유권자 3명 중 2명이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기사에 담긴 중요한 데이터는 기사 제목으로 뽑히지도 않았다. 언론은 바닥민심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징후들을 외면했다. 언론은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대세론 보도'를 이어갔다.
중앙일보가 지방선거를 6일 앞둔 5월27일 1면에 발표한 '투표확실층'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장 선거의 오세훈-한명숙 지지율 격차는 16.6%포인트, 경기도지사 선거의 김문수-유시민 지지율 격차는 22.1%포인트에 달했다.
한겨레는 5월28일자 1면에 < 선거 D-5…'한나라당 쏠림' 가속 > 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날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오세훈-한명숙 지지율 격차는 18.0%포인트, 김문수-유시민 격차는 13.9%포인트에 달했다.
언론 단정적 판세보도, 유권자 선택 영향
이러한 여론조사 보도는 야권 지지층 투표참여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끝난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여당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오세훈-김문수 후보가 여유 있게 이기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최종 개표 결과는 오세훈-한명숙 지지율 격차 0.6%포인트, 김문수-유시민 지지율 격차 4.4%포인트로 나타났다. 언론이 판세를 제대로 읽고 정확히 보도했다면 선거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정도로 초박빙 승부였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여론조사 맹신이 패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진성호 의원은 7일 여당 워크숍에서 "당의 여론조사기관이나 정부관계 기관이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의원은 "여론의 이상 징후에 대해서 경보음이 있었는데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치열함이 없었던 점에 대해서 반성한다"고 말했다.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은 '합리적 의문'을 외면한 채 한나라당 대세론 보도를 이어가다 체면을 구겼다. 상식을 지닌 유권자들도 혼란을 겪게 만드는 일방 보도였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정확성이 떨어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할 뿐 아니라 야당성향의 지지층을 기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표심 왜곡을 불러온다"고 비판했다. 류정민 기자 dong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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