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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우리 사회의 얼굴이다.

pudalz 2008. 10. 27. 16:39

 

흔히 어느 나라의 공항을 그 나라의 관문이나 얼굴이라고 한다. 이 때의 얼굴이란 표현의 의미는 신체의 머리부분이나 생김새를 말하지 않는다. 얼굴을 세우다, 얼굴이 팔리다, 못 보던 새 얼굴이네. 얼굴에 X칠하다 등과 같이 인격이나 사물, 사람, 지역, 현상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사람의 인격과 심리를 상징하거나  현상을 대표하고자 할 때 얼굴이란 표현을 쓴다. 드러나는 표정, 체면, 간판과 같이 의미가 확장되었다.  

 

공항을 관문이라 하면 언론은 그 사회의 얼굴이다.

언론이 그 사회를 대변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얼굴, 언론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한 나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예전엔 경제와 교육수준을 삼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경제와 교육을 얘기했던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싼 외부환경이 디지털,IT로 상징되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급변하고 있다.

현대의 사회에서 경제와 교육을 하나로 뭉뚱그려 상징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미디어, 즉 언론이다.

국민의식수준과 경제생활수준에 모두 중추적인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외부 환경변화의 산물이다.

교육과 대의정치기관 역활을 하는 매개체가 언론이고, 21세기 신성장동력산업으로서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디어산업의 규모가

오늘날 언론의 위상을 대변한다.

굳이 돈이 공공연한 권력이라고 헌법에 명기된?(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집중되는 곳이 홍보와 마켓팅이고, 홍보와 마켓팅의 최우선 과녘이

미디어장악임을 부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 교육과 정치수준의 가늠자가 되는 것은

언로란 이름으로 국민의 정치경제적 욕구 즉 여론을 반영하는 장치로 예로부터 존재해왔었던 것에서도 알 수있다.

또한 언론이 다루는 정보와 소식이 정보습득과 학습의 도구가 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언론은 정치경제적 의사실현의 매개체가 될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적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통로로도 또한 기능한다.

 

이러한 언론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서 사회의 어두운 구석과 문제, 국민의 정치경제적 여론을 잘 반영해야

나라가 건강하고 잘 돌아가는 것은 서민과 유권자, 납세자의 입장에선 너무나 당연하다.

언론이 사실을 사실대로, 권력에 의해 왜곡된 사실을 진실로 보도해야 함은 헌법에 명기되어야 하거나 명기된 의무일 것이다.

 

언론이 한 나라의 수준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적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얼굴이다.

언론이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에 권력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언론의 속성이 여론을 반영하면 그것이 공중에 알려지고 감정과 사고를 움직여 공감(공분)이 일어나고 일어난 공감이 다시

여론이 되는 것이다. 언론이 여론을 형성한 것이 아니고 반영한 것이다.

형성한다는 것은 반영의 결과 즉 반영의 작용을 잘못 일컬은 말이다.

문제에 대한 기사선별의 기능도 여론반영이다. 취사의 재량권이야 남용남발 될 수도 있겠지만 여론을 반영해서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직종으로서의 언론상은 여론반영을 넘어 축척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특정병에 정통한 전문의처럼

사회의 제반 개별 문제에 대해 전문의가 처방을 내리듯

대안제시도 하는 언론이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이고 여론반영이 잘 될 때의 일이라 여기서 언급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밥그릇이 쉬 확보되지 않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하나의 평생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신분보장을 의미한다.

기자도 여론을 반영하고 대안제시가 가능할 때 밥줄 걱정이 없는 진정한 의미의 전문직업인으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쉬운일은 없다는 말처럼, 딴 얘기

 

대안제시가 아마 (언론이 여론을 형성한다 할 때의)'여론형성'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현실에서 대안제시까지 바라는 것은 뜬구름잡는 이야기가 돼버렸다. 

당장의 현실은 돈과 정치란 현대의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지키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만 해주어도

감지덕지하고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언론이 정치권력집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조중동이란 정치언론사기업권력집단이 입법사법행정을 넘어서는 공작권력으로 어떻게 보면

유한한 정권이 티끌같아 보일 정도의 비대한 실세정치권력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상품성, 흥행성 즉 경쟁력은 관점 즉 대안제시 의제제시라고 말하지만

대안은 간데없고  용공, 반공, 좌우, 진보, 보수, 안보, 국익, 민영화, 선진화 같은

교묘하게 포장된 시제에 의한 공작구도만 난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휴유증때문에

조중동이란 치유불가능한 제1의 언론정치괴물권력이 말기 암덩어리처럼 정치사회문화경제구석구석에 퍼져버려

대안언론, 언론의 미래를 말하는 것이 공허한 허튼소리처럼 되어버렸다.

 

조중동이란 사회의 암덩어리를 뿌리뽑는 성공률 1%의 대수술이 성공적으로 시작하려면

언론은 우리사회의 얼굴이다란 말이 보편타당한 명제로 사회구성원 사이에 자리잡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언론이 경제수준을 가늠하는 이유는

미디어 산업이 앞으로 경제를 좌지 우지 할 만큼 비중있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

우리가 집중육성해야 할 지적기반산업이고 지적재산권을 선도하는 산업분야이다.

미디어가 다양해진 만큼 미디어 산업분야도 다양해졌고 그 다양해진 산업분야에서 파생되는

2차산업분야 또한 불가사리처럼 몸집이 불어나고 있다.

캐릭터산업,게임산업,영화산업,음원산업,미술산업,문화산업, 제조업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1차 창작물이 2.3.4차로 다양하게 변형되어 더 큰 가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은 생략한다.

경제적으로도 언론은 우리 사회의 얼굴이다.

 

자유로운 창의와 창발적 발상의 터전위에서 쏟아져나온 다양한 1차적 창작물이 밑거름과 대들보가 되는

미디어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물귀신도 조중동이다. 언론권력으로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고 여론의 다양성을

가로막고 기업과 유착하여 악질저질 정보를 쏟아내어 미디어산업의 기반을 허물고 있기 때문.

 

결론은 우리 사회의 제일 큰 장애물이자 미래의 중심점이 될 언론이 처한 현실을 바로보고

훌륭한 저널리스트, 훌륭한 탐사보도프로들이( 이 밖에도 언론이 생산한 훌륭한 창작물들이)

나와 우리사회를 비추는 간판얼굴이었구나 하는 각성이 시민사회에

일반화되었으면 한다.

에디터, 기자, PD, 등이 존경받을 수 있는 언론풍토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고

우리나라의 훌륭한 저널리스트들도 발굴 조명할 필요가 있다.

사회는 언론에 대한 재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 출발을 양식있는 기자와 PD의 의미를 새기는 'PD수첩은 우리의 얼굴이다'란 명제로 했으면

좋겠다는 중언부언 횡설수설..

한겨레는 눈치만 보고 조중동은 패악만 일삼는다. 조중동의 패악은 한겨레의 눈치다. 소송이란 이름의, 광고수주란 이름의,

바른 말을 하는 유권자와 납세자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언론이 없다. 있다면 주인위에 군림하는 세금으로 먹고사는 생활보호대상자 영세민권력만 있을 뿐

다음엔

우리가(촛불이) 원하는 건

차이는 있어도 기회는 균등한 나라.

 

언론주권�기와 언론문제로 살펴본 우리가 한번도 주인이 될 수 없었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