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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부파불교 -위키백과

pudalz 2015. 12. 8. 04:07

 

부파불교(部派佛敎, Early Buddhist schools, Nikāya Buddhism)는 고타마 붓다반열반에 든 후 제자들 사이에 견해의 차이가 생겨 불멸후 100년 경에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로 분열되고, 이어서 이 두 부파(部派: 종파)로부터 여러 갈래의 분열이 일어나 불교가 여러 부파로 나뉘면서 전개되었던 시대의 불교이다.[1][2]

부파불교는 시기적으로는 원시불교(原始佛敎, pre-sectarian Buddhism) 이후의 시기를 뜻하는데, 대승불교서력 기원 전후에 발생한 후에도 부파불교의 부파들 중에는 대승불교의 종파들과 함께 시대적으로 나란히 활동했던 부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세친(316~396)은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서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로 전향하였다. 그가 설일체유부의 논사였을 때 저술하였던 《아비달마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교학의 강요서인데, 그는 부파불교의 경량부의 학설 등을 이용하여 비판적으로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집대성하였다. 즉, 이 때까지도 부파불교의 부파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으며, 또한 세친의 시대보다 200여년 후의 인물인 현장(玄奘: 602~664)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따르면 그가 인도로 유학을 갔을 때도 여전히 정량부(正量部, 산스크리트어: Saṃmitīya) 등의 부파불교의 부파들이 상당한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3]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든 후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인격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의 노력에 의지하라는 자등명(自燈明: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과 남겨진 가르침(법)에 의지하라는 법등명(法燈明: 법을 등불로 삼으라)의 유훈에 따라 고타마 붓다가 남긴 교법을 결집하여 경장율장을 편찬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그 교법(특히, 사성제)을 깊이 연구 해석하여 여러 경전들에 나오는 불교의 이론과 실천 양면을 망라하여 이들을 체계화한 방대한 논서(Abhidharma-sastra, 아비달마샤스트라)들을 작성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부파불교를 한편으로는 아비달마불교(阿毘達磨佛敎)라고도 한다.[4]

서력 기원 전후에 새로운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일어나게 되자 대승불교도들은 그때까지의 부파불교를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폄하하여 칭하였다.[2]

불교전통의 성립과 발전(AD 450-BC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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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파불교

1. 개요 부파불교는 불멸후 백년이 지난 무렵 교단중에 계율이나 교리의 해석에 의견 대립이 생겨 마침내 교단은 보수적 입장의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 입장의 대중부(大衆部)의 둘로 분열되었다. 그후 불교가 점차 인도의 각 지방으로 전파됨에 따라 교단 상호간의 연락이 끊어져 세부(細部)까지 의견 차이가 생기게 되어 양부파(兩部派)가 각자 분파 활동을 시작 二 三백년 후에는 십팔부(十八部) 또는 이십부(二十部)라고 하는 제부파(諸部派)가 분립(分立)하게 되었는데, 이와같이 분파한 제부파의 불교를 부파불교라한다. 즉 원시불교 이후 제부파가 성립 완성하여 대승불교가 흥기(興起)하기까지의 二, 三백년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후에도 부파불교가 대승불교로 갑자기 바뀌어진 것이 아니라 양자는 공존(供存)하여 간다. 2.설립 배경 원시부교가 왜 분열하였는가, 다시말해 부파불교가 왜 생겼는가? 그 원인은 계율면과 교리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개의 성스러운 진리]만 하더라도 인생고(人生苦)의 사실이나, 원인 분석 즉 고 집에 중점이 있는가, 아니면 극복하는 멸도에 중점이 애매하다. 이것을 명확히 하려는 입장에서 해석상 차이를 가저와 보수파는 고 집의 사실을 중시하고, 진보파는 멸도의 실천에 두어야 할것이라고 하였다. 불타관에 대해서도 보수파(상좌부)가 어디까지나 인간이 불타가 되었다고 하는데 대해, 진보파(대중부)는 불타를 초자연적 존재의 화신(化身)으로 보며, 상좌부가 [인간은 석존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도 아라한(阿羅漢)은 되지만 불타는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대해 대중부는 [보살의 도는 만인에 열려 있으니, 인간은 조건에 따라 불타도 될 수 있다.]라고 하여 대립하였다. 3.특징 부파불교의 유파는 최초에 분파된 상좌부계와 대중부계로 대별할 수 있고 더욱이 대중부계가 후년 대승불교 흥기의 모체가 된 것을 생각하면 부파불교의 특징이라 하여도 오히려 부파의 주류를 이루는 상좌부 불교의 특징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리라고 생각되므로 그러한 관점에서 살피기로 한다. 부파불교가 대승불교가 일어난 모체가 되지만 부파불교의 특징은 주류를 이룬 상좌부계의 특징을 가진다. 1) 불타관에 대하여 보면, 불타는 과거 또는 먼장래에는 출현할 지도 모르나 이 세상에서는 석존 한 분이라고 하는 주장. 또 석존은 유(類)가 없는 위대한 인물이지만 결코 신과 같이 절대적 존재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석존은 특별한 사람이였음으로 불타가 된것으로 결코 보통 인간으로는 될 수 없고 보통 사람이 도달할수 있는 것은 기껏해서 아라한의 단계까지라고 하는 입장을 취한다. 2) 불교는 본래 자리 타리(自利 他利 : 자신도 구제되고 남도 구제함) 자각타각 (自覺 他覺 : 자신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함) 이어야 할 것이나, 부파는 어느쪽이냐 하면 자리 자각(自利 自覺)에 중점을 두고, 남을 구제하고 깨닫게 한다는 대중의 구제는 소홀히하는 경향이 있다. 3) 출가주의, 즉 깨달으려면 승려(僧侶)가 되어야 하고 재가주의, 즉 대중의 신앙활동에는 비교적 무관심하였다. 4) 실천에 소용되지 않는다고하여 석존이 금한 실체론등 형이상 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열심히 논하여, 실천활동에 소홀하기 쉽다. 5) 석존이 정한 것은 무엇이든 정한대로 받아들이는 보존적 형식주의이다. 따라서 계율에 대해서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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