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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3일 Facebook 이야기

pudalz 2014. 3. 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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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재인가 아닌가
    나도 살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하니까 내가 어떻게 뇌경색으로 쓰러지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아야겠다.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증명하려면 내 일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
    그 다음 그 일이 내 입장에서 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는지 말해야 한다.
    그다음엔 쓰러지고 나서 업체의 대응에 대해 말해야 한다. 쓰러지기 전엔 심심하면 집에도 오던 친구가 쓰러지고 나선 입장곤란하다며 병원에 한번 와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도 하지 말라니 입장이 이해는 된다. 그런데 나도 막상 쓰러지고 나니 병원에 와보는 일가친척 한 명없고 내가 연락한 친척한 명없다. 그래서 이제야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미루다 페북 본 김에 생각을 정리해본다.
    우선 내 일하는 방식은 무슨 일을 하면 나도 모르게 그 일에 푹 빠져 일을 한다.
    이해를 돕기위한 예로 2010,11년쯤 강북촛불 연말지역행사후에 뒤풀이 하고 음주상태라 오토바이를 두고 갔는데 도난을 당했다. 분실신고를 했지만 찾지 못했다. 오토바이 운전이 생업인데 오토바이를 잃어버려 오토바이 다시 구할 때까지 그 무렵 구청 희망근로에 지원해 일을 했었다. 쓰레기무단투기금지 표시판 부착위치 파악과 쓰레기재활용수거작업이었다. 쓰레기 무단투기지 알림표지판 위치를 지적도에 파악하는 작업인데
    난 시키지도 않은 표지판 유형, 탈색변형유형, 경고내용유형 가드레일 벽 담벼락 같은 부착장소등을 사진으로 찍어 파일로 만들고
    이렇게 통일되지 않은 표지판이임시방편으로 주민요청에 의해 지저분하게 그때끄때
    부착이 되면 구속력이 생기지 않는다 부착할 곳을 생각해 표지판은 어느 정도의 사이즈로 만들어야 할지는 보고서를 만들어 담당동사무소 직원에게 주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이고 뭐 한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닌데 그냥 했다. 수유5동 2동 쓰레기 분리재활용일을 할 때도 반복하다보니 독거가구 남성일인가구 노인가구 등에서 분리수거와 재활용이 잘 되지 않길래 나중에 별도로 찾아가서 이렇게 분리수거를 하는데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더니 현저하게 분리율과 재활용배출율이 높아졌다. 내가 수거하니까 안다. 뛰기좋아하는 내 적성에도 잘 맞고 해서 이후에도 미화원들과 친하게 지냈다.
    원래 쓰레기 재활용 분리수거와 관련해 책을 만들어 보려고 2000년대부터 생각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닌 적도 있다. 그래서 재활용 관련이야기는 이야기 하려면 한정이 없다. 일을 해보니 주민들은 분리해서 내 놓는데 수거할 때는 다시 한 차에 몽땅 썩어내 배출했다. 그래서 분리함을 골목마다 배치하고 요일별로 시간별로 수거차가 돌면 재활용율이 높아지고 재활용 수익이 증가하면 다시 재활용하신 분들께 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연구를 했는데 아르바이트 기간이 짧았다. 하여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방문수거안내나 재활용방법 수거방법 따위 누가 시킨적도 없고 돈 준적도 없는데 나름 열심히 했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진알시나 뭐 기타 일을 궁리하고 했지만 대가 같은 건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냥 내가 재밌어서 한다. 내일 신문에서 강북지역내일신문 배포 점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하루 일당이 3~4만원이다. 원래 일은 아파트에 가서 신문이 와 있는 것만 확인하면 되는데 난 각 아파트 라인별로 남아있는 신문부수를 정말 확인하고 내일신문이 준 서류에 기재를 하였다. 내일신문측에선 좋지만 일당이 적기에 정말 그렇게 하리라고 바라지 않았을 텐데, 일을 시작하면 내 오토바이에 내가 기름 넣어 아침에 시작하면 저녁 해가 저야 끝난다. 기름값만 5천원이다. 아파트라인이 잘못기재되어 있으면 관리사무소에 확인해서 정리해주었다. 강북 SK아파트정검할 땐 FM대로 했다가
    배포팀장과 싸운적도 있다. 점검을 했는데 신문이 한부도 없었다. 배포한지 한 시간이 되지 않아 따라나갔는데 한 부도 없어서 혹시 아직 배송을 못했는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배포자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팀장이 다 배포했는데 점검자가 자꾸 귀찮게 연락한다고 해서 였다. 모두 돈보고 했으면 하지 않을 일이다.

    배송하다가 쓰러진 가락할인공판장에서 일하기 바로 전까지는 어떤 구립 장애인 사업장 식당에서주방보조로 3개월간 일을 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고 못하는
    요리를 배울 수 있어 즐겁게 일했다. 일하다보니 식당의 문제나 누적된 문제들이 꽤 있었다. 음주운전 벌금대신 신청한 사회봉사노역이라 잠자코 내 할일만 하면 되는데
    식당에 산적한 청소를 하다보니 3달이 후딱 지나갔다. 예를 들면 식판 뒤에 퇴적된 누런 물 때를 보름에 걸쳐 나눠 칫솔로 벗겨낸다든지 창문 대형집기 밑에 묵힌 때를 벗겨낸다든지 식당주변에 퇴적된 낙엽도 치우고 죽은 쌀벌레로 덮인 집기창고 정리하기 등을 하다보니 출근하면 오줌누러 가는 것도 잊고 일을 했다. 음식재료에 문제가 많아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도봉강북 재래시장부터 마트를 다니며 야채 가격을 알아보았다. 어느 산지, 어느가게가 맞있는지도 알아보고 원장에게 이렇게 좋은 재료를 싼 가격에 구입하면 식당주방장님 급여를 올려드릴 수 있고(보람과책임상승) 급식의 질이 개선되어 원생들 건강과 사업장에 큰 이익이 될거라고 구체적으로 알려드렸다. 시와 구예산으로 돌아가는 관변단체의 재정사용의 한계가 있다고 해서 실현하지 못했다. 이밖에도 심각한 장애인이 직업을 습득하도록 도우려는 환경과 습득을 돕는 철학에 결함이 있어서 개선해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렇게 삼개월 일했더니 사업장에서 감사의 상장도 주셨다.
    이런 일을 구차하게 말하는 이유는 산재승인을 받기위해 내가 일하는 특성과 그 일에 전념하는 특성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마트에서는 내가 일한지 한달 보름도 안 되어 쓰러졌기 때문에 이후 일체의 연락을 끊어서 내 스스로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6월 말일까지 일하고 worknet구청일자리센터에서 7월 1일 가락할인공판장을 소개받아 갔더니 일하라고 하고 면허를 따오라고 했다. 작년에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취소당해서 이틀동안 밤을 새 학과와 기능합격하고 일주일만에 자동차면허를 따고 합격한 다음날부터 일을 했다.

    마트에서 배송일을 하게 되었는데 사장은 면접볼 때 자기도 배달부터 시작했다고 열심히 하면 곧 발주도 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회사가 잘 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정신으로 일하면 된다. 물품을 배송할 때 집앞까지만 갖다놓지 말고 집안 어디에 나드릴까요 물어보고 일하라고 해서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일해왔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그 이후로 만나보진 못했다. 점장은 젊고 부지런해 보였는데 면접보러 가자마자 바로 일하라고 했다.
    내가 손목이 약해서 2~30kg는 들지만 아주 무거운 것은 못든다고 하니까 그러면 남들 한번 움직일 때 두번움직이면 된다고 했다. 집도 가깝고 젊은 점장의 태도가 마음에 들어 고민하지 않고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장애인 사업장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식자재를
    산지별로 파악해 쌍문1동 주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기쁘게 해드릴 생각을 하니 일이 즐거웠다. 게다가 내돈 버는 일은 못하지만 남의 장사는 성공시켜준 경험이 꽤 있어 SSM문제로 전단도 뿌리고 노원같은 곳에 응원도 갔었는데 사장과 점장의 철학만 주민들의 건강과 행복 증진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 마트를 이마트같은 대형마트에 맞서는 큰 사업체로 한번 키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니 의욕이 솟았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작업환경에 적응하자니 사장이나 점장과 매장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라 사람들에게 여기서 일하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마트에 들어가니 다마스 차량으로 배송하시는 고봉이란 별명을 가지신 기사님이 계셨다. 50대이신데 앞이가 빠지셔서 말은 새었지만 동작이 무척 날쌔셨다.
    이틀 함께 일하고 지리를 대강의 지리를 익히고 나니 고봉선생님이 갑자기 그만두셨다.
    물어보니 다마스가 지입차인데 차량수당을 주지 않겠다고 해서 그만둔다고 하셨다. 내가 힘든일은 다 하고 행복하게 해드릴테니 그냥 계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차량비 주면 일하고 안주면 그만두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틀 이후로는 나 혼자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다. 차량이 고봉선생님차라서 오토바이밖에 없었다. 난 다마스 운전하는 줄 알고 하루만에 딸 면허를 일주일 걸려 자동차면허 땄지만 오토바이 배송도 원래 오토바이운전이 직업이라 문제될 것은 없었다. 경상도 분에 매장은 별개고 단 배달만 잘하면 된다고 하셔서 내심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여느 경상도과 같은 분이시구나 했는데 내가 쓰러지고 나서 연락해본 분 중에 유일하게 내 걱정을 하며 빨리 산재받으라고 말씀해주시고 정신줄 놓은 내게 가끔 연락주신 분은 이 분뿐이시다. 여기서 해보았기 때문에 배달일이 힘든 것을 아시고 내처지를 불쌍하게 여긴 것 같다. 점장을 포함한 남자매장직원들은 나보다 젊은데 힘든 걸 알면서도 일이 힘들지 않다고 한다. 차장은 혼자 뙤약볕에 배달하는 나를 보며 여길 일 줄에 솔직하게 배달이 제일 어려운 줄 안다. 힘내라고 했고 나 일하기 바로 전까지 배송하다 나오고 주임으로 승진한 김주임도 둘이 할 일을 나 혼자 하니까 출근시간이 가까와지면 자주 집으로 왔다. 빨리 나오라고. 내 근무시간은 오후 1시 5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일하는데 아침부터 일해서 돈을 더 받아가라고 자꾸 꼬셧다.
    나도 내심 욕심은 났지만 조금더 일이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으면 그러마고 했다.
    끝나고 술도 사고 기숙사에서 잠도 같이 자고 해서 금방 친해졌다. 군대하사관출신이라
    사람부리는데 나름 요령이 있었다. 나보다 어렸지만 꼬박꼬박 주임이라고 했다. 봉급은
    160만 원 받았다. 내가 일하던 마트의 주 고객(상권)은 쌍문1동 쌍문초등학교 주변의 꽃동네와 숭미초교 부근의 아파트단지, 쌍문3동 동사무소한전병원 주변이었다. 쌍문1동 덕성여대 위쪽과 원당마을 우이동 쌍문역주변 등에선 가끔 배달이 왔다. 배달지역의 특성이 꽃동네란 야산지대라 경사는 높고 빌라는 많다. 거의 대부분이 빌라다. 집들이 주변에 비해 교통이 불편한 대신 싸게 나와서 나도 2000년대 중반에 집알아볼 때 와봤었다. 수유1동 양지마을 쪽도 그런데 야산에 지어진 빌라동네의 특성상 장을 보면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짐이 무거워서 대부분 배달을 이용한다.
    어렸을 때 정릉4동 산동네에 거주하시는 부모님집에 무건운 것 들고 삼양동 달동네를 걸어서 낑낑거리며 가던 경험과 추억으로 무거운 것 대신 들어주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단 마트에 배송지적도가 따로 배달하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닌데 처음 배달하는 동네서 집번지수도 뒤죽박죽인 동네의 번지수만으로 집을 찾아가려니
    휴대폰 네이버다음지적도 검색하기가 바빴다. 다행히 오랫동안 신문배달을 한 경험덕에 네이버에 지적도만 뜨면 집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은 물건을 배송하는 일이 아니라 공산품과 식품 과일 쌀을 상하지 않게 빠른 시간안에 전달하는 일이었다. 물건을 든 채 사람을 만나야 했고 문이 열려야 했고 상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일반 중국음식이나 도시락 택배배달과 다른점은 단품이 아니다. 보통 쌀 20kg 또는 물 6개들이 팩 서너팩, 10키로 수박, 세제, 음료, 과자 과일 등을 한꺼번에 장을 보시는데 그걸 오토바이 한 대에 서너집씩 싣다보면 어림잡아도 백키로는 보통 초과한다. 이 물건들이 각기 서로 상하지 않도록 잘 실어야 하고 자동문에 이르면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다치지 않게 살짝 내려두어야 한다. 그런데 장보고 오신 분이 중간에 잠깜 아는 분을 만나 얘기하다보면 집에 안 계시다. 그럼 그 상태에서 무거운 박스를 든 채 어디계시냐고 배달왔다고 문자를 주던지 전화를 해야 한다. 물건을 매번 아파트 들어갈 때마다, 빌라 자동문 열릴 때마다 내려놓으면, 늦어서 배달을 못한다.

    생소한 지역에서 번짓수가 뒤죽박죽인 동네라 집찾기도 벅찬데 전표에 있는 물건이 다 왔는지 확인하고 전달하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

    6개들이 물 4팩만 들고 오층까지 한번만 올라가서 문을 두들겨 보면 아니면 아기가 자고 있어 특수한 지시대로 시행을 해보면 이런 복합적인 일을 수행하는 것이 그냥 말처럼 쉬운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항상 돌발상황이 있다. 나한테는 이 문제가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타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고개인 장 본 물품에 창고에서 꺼내서 가져다 줘야 하거나 쌀 물 휴지 같이 부피가 커퍼 박스에 담아드리지 못한 제품이 있는데배송을 정신없이 하다보면 물품이 십여개 많게는 몇십개 항복이 적인 전표에 적힌 쌀 휴지 술음료박스를 확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전표에 별도로 매직 팬으로 쌀 휴지 생수 등에는 빨간팬으로 밑줄을 표시하는데 계산대를 맞고 계신분도 물품싸랴 바쁘다 보니 실수로 쌀 20킬로인데 10킬로라고 다른 물품을 적어두거나 브랜드가 다른 제품을 매직으로 써 둘 때가 있다. 배달하는 사람이 바로 바로 물품을 확인해 싫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표시한다. 그런데 이게 잘못 적히면 배송을 다시 가야 한다. 그러면 확인하고 시간보내는 그동안 배송이 밀린다. 이런 문제가 두 개 더 있는데 하나는 고객정보의 주소가 정확하지 않을 때 이다. 고객의 필체 발언을 근거로 작성하다보니 가끔 실수가 나온다.
    이것도 긴 이야기다. 빌라 이름들이 비슷하고 ABC동이 있는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무거운 것을 든 채 거기가 앞동인지 뒤동인지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전화주문이다. 이것이 배송착오를 자주 유발하는데 음성에 의지해 작성된 메모가 여러사람에게 전달되다보니 물품착오가 많다. 고객이 전화를 걸면 계산대 직원이 장을 대신 보는 건데 한 상품의 브랜드가 많아 착각하기 쉽다. 이 문제로 점장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번 착오가 생기면 전표를 다시 끊어야 하고 잔돈도 다시 챙기고 누가 잘못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 사이 또 배송이 밀린다. 배송은 나혼자 하기 때문이다. 이마트와 경쟁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열심히 일하는 점장은 제대로 하려면 직원을 열사람 더 써야 하지만
    배송 한명 더 쓰면 계산대로 더 써야 하고 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번짓수 검색해서 집찾기까지 평균 3분에 한집 물품전달을 끝낸다는 각오로 해야한다.
    실제로는 5~6분 걸릴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이마트와 경쟁도 좋지만 전화주문은 꼭 필요한 사람이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최소한으로 해달라고
    권할 필요가 있다고 하니 점잠은 나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처음봤다고 했다.
    휴 일단 여기까지
    계속 수정보완할 생각입니다

    나머지는 다음에 일단 시작했다 차근 차근 보완하자.
    장마철과 휴가철에 이렇게 일하다 보니 처음엔 오토바이 빵구가 나서
    발목을 다쳤다. 그리고 손목 엉덩이뼈 복숭아뼈 마지막으로 갈비뼈골절
    그리고 쓰러졌다.
    여러 검사를 한 후 뇌경색 외에도 발목뼈와 갈비뼈 골절(금)과 발목뼈 골절(금)소견이 있다고 했다. 그냥 두면 붙는다고.

    마트입장에서 마트 경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일한 지 한달 보름도 안된 사람이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니
    산재 처리해줄 수가 없을지 모른다.
    나전에 배달하던 김주임도 배송하다 다쳤는데 산재처리하지 않았가고 하고
    그런 일이 여러번이라 산재처리하면 마트에 불이익이 많다고 했다.
    가족 보호자가 없으미 한번 왔다 가주면 좋겠다고 해도
    나의 대한 불신이 있는 것인지 재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안면 몰수다. 의사와 만나 내 상태를 물어보고 말한 사람이 없다.
    의사는 퇴원할 때 퇴원하시면 친구도 좀 사귀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란 말만하였다.

    산재처리 불승인
    누가 보험공단에 내 이야기를 내 입장에서 대신 해줄사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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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도진 빨리 쾌차하시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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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도진 퍼갑니다. 허락도 안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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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도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세현 김집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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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십자가를 지나가는 물꿩  
    삼광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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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도진 이런 사진을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사진을 볼 수 있게 페북에 링크를 걸어주신 레베카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