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에 갔다. 천축사와 마당바위까지 올라갔다 왔는데 계곡엔 물이 없고 바닥은 말라서 휴일이라고 등산객이 줄을 서니까 마치 흙길에 버스지나간 것처럼 먼지가 풀풀 날린다. 한쪽엔 산사태가 난 곳도 보였다. 산 높은 곳에 가면 송전탑, 뭐에 쓰는 것인진 모르지만 부표. 반공호, 산불방지용으로 보이는 포대를 쟁겨둔 곳들이 눈에 띈다. 오랜 세월 축척된 행정체계같다. 하여간 산림토양(땅)은 산성화되는 것 같고 탐방객은 많고, 나무와 흙은 물기가 없는 것 같다. 체계적 삼림정책 국립공원관리가 필요한 것 같다. 숲관리하듯 생태군락과 산림생태계를 고려하여 활엽수 침엽수등을 단계적으로 배치하여 물의 투과율도 높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래야 땅이 찰지고 갈수기가 아닐 때도 나무와 흙이 뿜는 물이 흐를지도 모르니까. 뭐 하여간 4대강에 시멘트분칠로 한반도 온난화도 가속화될 것 같고, 온난화가 가속화될수록 숲도 망가질 것 같다. 단위 지역 안의 물 순환, 지표와 지하를 이어 흐르는 물길에 대해
잘 생각해봐야 하는데. 옛날에 수맥이 흐르는 집에 집지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액운이 생긴다는 풍수이야기도 생각나고. 지표 아래의 물길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너무 표면에만 몰두한 것 아닌지. 집근처 법종사 뒤편 야산(여기도 도봉산)도 경작금지라 푯말이 꽃혀있는데 개인 사유임야라 그런지 경작이 되어 산사태 위험이 있다. 하여간 서울에 30년 사는 동안 도봉산엔 최근 처음 올라가보았는데 여기저기 산사태 징후가 있다. 방학동에 방학동성당?과 극동아파트 근처, 풍양조씨 그게 뭐냐 하여간 사원? 묘역일대 위는 달밤에 가면 여기가 별천지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데 장수텃밭?위에도 산사태 경고가 붙어있다.
도봉산 내려오다 보니 도봉서원복구 문화재발굴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최근 가본 도봉산 일대는 거의가 풍양군 조씨 묘역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안동김씨와 외척세력으로 조선시대를 풍미하고 말기엔 나라까지 거덜낸 세력일 텐데, 신분제 사회가 폐지되었다고 하는 21세기에도 그 광대한 임야 묘역을 보니 요새 재벌세습, 사학 세습이 떠올랐다. 이 세습을 막는다고 과연 이들이 18~19세기 나라를 말아먹는 이들도 지금도 이렇게 위세를 떨치는데 막아질까?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말은 진짜일까 뭐 이런 저런 생각이 난다.
산길 오솔길 둘레길 오르다보면 길이 좀 넓어진다 싶으면 길 바로 옆에 묘역을 조성해 놓았다. 나와 내 집안만 특별하고 싶은 욕구와 모두가 이용해야 하는 당위성이 충돌한다. 사유재산, 개인의 존엄, 그 존엄의 다양성을 제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길, 땅과 같은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것을 전유하려는 사적 욕구나 특권의식이 발동하면 불행의 씨앗이 잉태되는 것 같다. 보통 나무와 자연은 열매와 씨앗을 뿌리고 새끼를 낫고 당대로 끝내지 축척해놓은 것을 세습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엄밀하게 따지면 거기도 자기의 영역이 세습될런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세습을 해서 다른 생명 생태계까지 불행하게 한다.
나무가 5백 년 살고 죽었다. 그 씨앗이 또 거기서 살 수있다고 조물주가 면허를 내주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조물주의 뜻을 따른다는 교회는 세습한다. 산중턱에 있는 천축사를 보고 지나가던 교인이 불평을 한다. 명승지를 점유했다고. 불교와 교회 진심과 진실이 통할까?
같은 장면, 존재, 현상을 보고도 제 집단 위주로 보니 달리 보인다.
생각만 달라도 불쾌한데, 견해가 다르고, 목사와 언론이란 미디어가 전해준 사실조차 달라져 있다면 화해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진실 진심이 통할 여지가 너무 각박하다. 그래서 지금 이 난리다. 진심과 진실이라도 통해야 이 집안싸움이 멈출 텐데 바깥 세상이 이처럼 어지러이 돌아가니....
누가 원인을 제공한 원흉일까. 새누리당, 그리고 민주당 내의 숙주민주당 또는 그에 동조한 세력이겠지. 하여간 하여간.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도봉산 갔다왔다는 게 또...
연산군묘역이 있는 원당마을은 파평윤씨 집성촌이었다는데
파평윤씨 묘역은 아직 못 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