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안전 신화 읊는 정부 등 입 다물라
한국기자협회 온라인칼럼 [박수택의 환경만필]
기자협회보 | 박수택 | 입력 2011.04.12 09:45
▲ 박수택 SBS 논설위원 차분하게, 자세 바로잡고, 영화 두 편을 다시 찾아 봤다. 하나는 < 괴물 > 이다. 봉준호 감독이 2006년에 내놓은 역작으로 1천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주한 미군부대 영안실 책임자가 먼지 앉은 용기 안의 포름알데히드를 하수구에 쏟아버리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강으로 흘러든 독한 화학물질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수중 생물이 괴물로 자라나 인간을 공격한다는 설정이다.
영화 < 해운대 > 는 바다에서 일어난 엄청난 지진 해일이 해안 도시를 덮치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렸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도 한순간에 허사임을 일깨워준다. 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 남녀의 사랑, 끈끈한 가족애, 직분에 대한 사명감도 새겨볼 수 있다.
"미군부대서 한강으로 독극물 흘린 영화장면"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사태가 두 영화 줄거리와 절묘하게 얽힌다. 재해지 후쿠시마의 원전이 쓰나미로 고장을 일으켜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은 사태는 눈에 익은 '데자뷰'다. 미군부대에서 대책 없이 한강으로 독극물이 흘러나가는 영화 장면이다. 괴물은 사실 같은 허구지만, 후쿠시마는 허구 같은 사실이다.
인간이 궁리해 이룬 과학 기술의 성과물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무서운 재앙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입증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로 대기와 토양, 바다가 오염됐다. 방사성 물질이 미생물과 식물을 거쳐 먹이사슬을 타고 다양하고 수많은 생물 몸속에 농축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방사성 물질이 내놓는 방사선은 생물 유전자 물질인 DNA를 손상시켜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사람의 경우 정자나 난자 같은 생식세포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정신박약이나 신체장애, 유전성 질병을 일으킬 수 있고, 일반세포에서 일어나면 암을 유발한다.
방사선 에너지에 자극받아 DNA가 교란되는 건 사람뿐 아니라 다른 동물, 식물, 미생물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고리 어느 쪽에서, 언제, 어떻게, 얼마나 '괴물'이 생겨날 지 알 수 없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에서 남쪽으로 70km 이바라기 현 앞바다에서 잡힌 까나리에서 고농도의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다. 과학적 개연성과 문화적 상상력을 결합하면 일본판 < 괴물 > 영화가 충분히 나올 수도 있겠다.
▲ 일본 교도통신이 촬영한 지난달 13일 미야기(宮城)현 오나가와(女川) 원자력발전소의 모습. 8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규모 7.4의 강진으로 오나가와 원전에서 누수 현상이 발생했다.(미야기(일본)=로이터/뉴시스) 일본 핵알레르기 유난히 높은 나라
일본은 핵알레르기가 유난히 높은 나라다. 세계 최초, 유일의 원자폭탄 피폭국이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 현장은 희생자 위령탑과 자료관을 갖춘 기념공원으로 꾸며놓았다. 2차 대전 전범국으로 아시아 민중에게 고통을 안겼으면서도 피폭의 참상에 평화의 띠를 둘렀으니 외부인들에게 묘한 동정심까지 불러일으킨다.
1954년에 미국이 태평양에서 수소폭탄을 실험할 때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 제5후쿠류(福龍)호가 고농도의 방사능에 피폭됐다. 선원 1명이 귀국 후 숨지자 일본인들은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생각하라며 핵 반대를 외쳤다.
경제를 위해서라면 핵알레르기 억제 체질도 함께 갖춘 일본이다. 전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맞서는 냉전 시대에 일본은 미국이 보장하는 안보 우산 속으로 뛰어 들어간 터다. 미국의 배려 아래 전범국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미국식 자본주의 학교의 모범생으로 돌아선 일본은 경제 성장에 전념했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의 상당 부분을 원전에 의존하면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까지 갖춘 일본은 핵무장 의구심을 보내는 안팎의 눈 흘김에 '어디까지나 핵의 평화적 이용일 뿐'이라고 내세웠다. 현재 일본은 원자로 55기를 갖춰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의 원전 대국이다.
▲ 지난 4일 한 그린피스 관계자가 일본 후쿠시마현 다이이치 원전에서 25km 떨어진 쓰시마에서 방사능 측정을 하고 있다.(쓰시마(일본)=AP/뉴시스) 일본 압축성장 부작용 잇단 환경재앙으로
압축성장의 부작용은 잇단 환경재앙으로 나타났다. 1960년대 초 석유화학단지에서 내뿜는 독한 대기오염물질로 사망 80명을 비롯해 1천2백 명이 공식 피해자로 인정 받은 혼슈 미에(三重)현 욧카이치(四日市) 사건이 그 하나다.
수은중독의 무서움을 세계에 알린 미나마타병은 1956년에 공식으로 확인됐다. 큐슈 남서부 가난한 어촌 마을 미나마타에 군림한 칫소(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의 약칭)는 일자리를 주고 지역경제를 살린다며 수십 년 동안 수은 폐수를 바다로 쏟아버렸다. 바다 생태계가 오염되고 먹이사슬을 통해 주민들이 수은에 중독돼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미나마타 농수산물은 팔리지 않았고 미나마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오염된 미나마타만의 물고기가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며 코가 촘촘한 대형 그물로 미나마타만 바다를 가로막는 법석까지 벌였다.
2011년, 후쿠시마에서는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확산되지 않게 원전을 대형 특수 천으로 덮자는 주장이 나왔다. 지역 농축수산물은 방사성 물질에 오염돼 폐기처분 당하고 있다. 미나마타, 욧카이치, 제5후쿠류호가 모두 후쿠시마의 데자뷰였다.
'원전은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말한다. 원전이든 방폐장이든 깨끗하고 안전하다니, 멀리 인적 드문 바닷가로 가지 말고 전력 수요 많은 대도시 강변에 세워야 하지 않은가? 송전탑 세운다며 산허리 파헤치는 수고도, 송전선로 지나가는 곳의 전자파 시비도 줄일 수 있겠다.
마침 4대강 사업으로 전국에 물그릇도 넉넉하게 키웠으니, 원전 냉각수 걱정도 덜 수 있겠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믿음을 주는 법이다. 원전 안전 신화만 읊어온 관료와 정치인, 원전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언론은 충실하게 사실을 전달하며 토론무대를 제공해야 한다. 원전을 비롯해 앞으로 우리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선택권을 주권자 국민이 되찾아야 한다. 미래 세대야 어찌 되든, 생태계와 환경이 어찌 되든, 당대에 에너지 풍족하게 쓰고 경제성장 개발이익을 누리면 그만인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
아하, 이제 알았다! 바로 당신이 '괴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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