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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쇠고기 협상파문 릴레이 기고]⑤국민은 李정부를 포기했다-경향

pudalz 2008. 6. 28. 00:31
[쇠고기 협상파문 릴레이 기고]⑤국민은 李정부를 포기했다

입력: 2008년 05월 25일 18:39:31

 

“최근 일부의 모습처럼, 진실을 보지 않고 거짓과 왜곡에 휩쓸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나 진실은 언제나 승리하게 마련이며, 변화의 대가는 크고 위대할 것이다.” 이번 5·18 기념사에 들어 있다가 슬쩍 빠진 구절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도 저런 구절을 집어넣을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 정권이 얼마나 얼이 빠졌는지를 보여준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골프 카트 한 번 타고 황홀해져서 완전히 현실감각을 상실한 것 같다.

그러는 가운데에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티모시 헌트 경이 조용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그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광우병이 옮을 확률이 비록 낮더라도 제대로 된 과학자라면 이를 확률이 없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광우병 문제에는 위험평가, 위험관리, 위험소통의 세 가지 차원이 있다.

광우병에 관해서는 과학적 연구가 충분하지 않고, 잠복기가 10년이기에 어떤 예측도 내리기 힘들다. 때문에 “제대로 된 과학자”라면 발병확률이 거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위험관리’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광우병 발병의 확률을 낮춘다고 믿어지는 절차가 존재한다. 가령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는 피하고, 30개월 이하의 소라도 SRM은 금해야 하며, 광우병이 발발하면 즉시 수입을 중단하는 것 등등.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자기들이 마지노선으로 정해 놓은 다섯 가지 조건을 미국에 모두 풀어주었다.

홀딱 다 잃고 달랑 하나 얻어온 개평마저도 ‘unless’와 ‘even if’의 착각에서 비롯된 허탕으로 드러났다.

‘위험소통’에 관해서 말하자면, 정상적인 정부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안전조치를 취한 다음에, 국민에게 ‘그래도 조심하라’고 말하며 수입 쇠고기를 안전하게 먹을 매뉴얼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권은 도대체 광우병 쇠고기가 도입될 논리적 구멍들을 여기저기에 뚫어놓고, 그것을 안심하고 먹으라고 강권한다. 도대체 이 세상에 광우병 쇠고기를 생으로 먹어도 끄떡없다고 말하는 몬도가네 정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골프하다 벼락 맞을 확률밖에 안 된다.’ 이것이 정부의 위험평가다. ‘미국을 믿어야 한다. 못 믿으면 안 사 먹으면 그만이다.’

이것이 정부의 위험관리다. ‘촛불의 배후에 좌파의 선동이 있다.’ 이것이 정부의 위험소통의 방식이다. 국민의 혈세로 미국 쇠고기업자들을 위해 공짜 광고를 해주면서, 경향신문에는 광고를 안 주고, EBS에는 광우병 방송 못하도록 전화 넣고, 포털에는 대통령 비난 댓글 지우도록 압력을 넣는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말은 졸지에 “진실”이 되고, 그 앞에서 국민의 정당한 비판은 “거짓과 왜곡”이 된다. 아직도 자신을 지지하는 23.3%를 제외한 대다수 국민의 견해는 졸지에 “일부의 모습”이 된다. 이 도착증.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작 47억분의 1의 확률에 국민들이 왜 저렇게 격렬하게 분노하는 줄 아는가?

그 분노의 한 가운데에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깔려 있다. 이제 국민은 정권을 포기한다.

<진중권 | 중앙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