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목요일
김제동은 외롭다.그를 인용하는 사람보다
그를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
김제동 발언이 그렇게 재미있고 시원하냐?
김제동은 지금 외롭고 불안한 것이다.
왜냐면 자기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제3자, 그냥 자신의 불만, 분노를
김제동의 발언을 통해 해소하면 그만인 사람들인 것을
김제동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불안에 떨고 있다.
그 불안이 프로테스터들이 시원해할 말을 하게 한 것임을
위안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소중한 건 건강할 때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잃고나면
낙진이 너무 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지 않나.
말로 먹고 사는 엔터테이너가 정치인이 되면
어찌 될지 모르겠다. 연예인도 정치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2012년 4월 8일 새벽 1시 50분쯤 수유전철역 중앙차선 버스정거장 횡당보도
분깃점이 시작되는 곳에서 갑자기 버스전용차로로 튕겨나가 쏟살같이 사라져버린
하얀색 차에 놀라 피하려다가 중앙차선 가드레일에 부딪혀 정신을 잃었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인데 이후 경찰조사에선 이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주변 CCTV를 내가 직접 조사해볼 생각을 했다.
정신을 잃고 실려간 곧은 근처 한전병원(한일병원)응급실이었다.
응급실에서 경찰이 깨워서 깼다.
음주측정을 하겠다고 했다. 3시무렵이었던 것 같다.
음주 상태였기에 음주측정한다는 말에 당황하여 횡설수설했다.
그리고 병실로 옮겨졌는데 걱정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어째야할지 몰랐다. 보호자가 없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니 머리와 얼굴은 피 칠갑이고 아귀같았다.
그 상태에서 술기운에 아무렇지 않은 듯 페이스북에 응급처치한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내가 알 수 없는 내 밖의 일들이 나와 엮이기 시작했다. 병원입원과 처치 수술과
치료와 관련되기 시작했다.
일단 내 병실밖에 경찰이 주재해서 출입을 통제했다.
병원의 식당노동자들이 병원로비를 점거하고 파업중이었기 때문이다.
파업중이라 입출입을 통제했는데 병원특성상 관계자와 보호자의 출입까지 막을 수가 없다.
난 보호자가 없으니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돌아가야했다.
그 와중에 은희가 점거농성중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전달해달라고 연락했다.
1층 로비로 가 음식을 받아 병원측이 못가게 제지했지만 비키라고 하고 농성자들에게 갖다 주었다.
왜냐면 난 머리를 칭칭둘러맨 중환자라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
아무 문제없이 뿌듯하게 음식을 전해주고 와서
얼굴 안면 골절수술을 했다.
수술한 날 현탁 승철 진수가 면회를 왔다. 면회가 안 되니까 병원관계자와 싸웠다.
병실로 연락이 와서 1층에 내려가서 얼굴을 보고 괸찮다고 했다.
그들은 염려가 되어 위문을 온 것이겠지만
내 마음은 참 징허다. 싶었다. 외냐면 수술을 하고 신경이 너무 힘들고 감각도 없고 지쳤는데
굳이 보겠다고 병원측과 싸워서 1층까지 내려오게 만드는 사람들이
참 어지간해 보였다. 술 한잔들 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선의로 신경써서 방문한 것이지만 내 입장에서 참 대책없는 사람들로 보였다.
나에게 보호자도 병간호해줄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리 없기 때문이다.
그냥 자신 입장만 있고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병원비를 돕겠다는 말도 있었지만 다 나를 창피하게만 만들고 실제로 도울여력이
없는 사람들이고 병원측에서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여 열흘만에 퇴원했다.
지금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일이다. 일단 MRI 검사도 해야했었고
신경과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성형외과 치료만 받았으니 황당한 일이다.
성형외과 레지던트와 욕심과 내 상황이 맞물려 벌어진 일이다.
난 입원을 해본적없으니 뭐가 뭔지 몰랐고 돈이 적게 들어가면 무조건 하려고 했고
레지던트 의사는 처음으로 자기 주로도 수술을 해보려고 햇던 것이다.
난 임수아과장이 수술을 한 줄 알았지만 나에게 수술계약서를 상담했던 의사가
수술을 한 것이다. 상담했던 의사를 난 첫 만남부터 신뢰하지 않았다.
외냐면 병원비를 100만원 내로 하고 싶다니까 그의 눈과 눈썹이 떨렸기 때문이다.
갈등하는 얼굴이었다. 난 그냥 비용을 적게 쓰고 싶다는 것이지.
정상적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였다. 부작용이나 경과 위험 등을 충분히 숙지하면
돈 1,2백이 문제인가. 어쨌던 신경과 진료는 생각도 못하고 수술하고
퇴원하고 열심히 운동과 재활을 해서 1년 후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얼굴 오른쪽 광대뼈 안쪽은 찌릿찌릿 감각이 없었다.
레지던트의사는 골절부분이 세곳이라 세곳을 접합한다고 햇는데
눈썹부분만 수술했다고 했다.
레지던트 욕심덕에 안면에 불편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 놈이 나쁜 놈이다.
1년 후에 가락할인공판장 쌍문점마트란 체인점 마트에서
일하다 뇌우교경색으로 쓰러졌다.
일이 엄청나게 힘들었고 쓰러질 수밖ㅇ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통진당친구들은 누구하나
내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 정확하게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의 문제를 안고 있기에. 이후 당까지 해산되었다.
병원갈 때 다 되어가는데 왜 이런 것을 쓰고 있을까?
촛불을 든 관련단체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냥 제3자였다. 내가 어찌 쓰러졌나엔 관심이 없다.
함게 촛불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었다.
집회에 나오라는 연락뿐이었다.
내가 집회에 나가는 이유도 모르면서.
자신들과 세계관이 다른 것도 모른다.
내가 초등2년부터 육상선수였고 이후 30살까지 죽 육체를 단체해왔는데
그런 상황을 알리 없다. 어릴적부터 내 문제를 말할 상대가 없었고
생활비도 학비도 스스로 벌어야 했고 나중엔 연로하신 부모님을
책임져야했다.
서로의 가치관 세계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책임지는 자세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
잠을 자지 못하고 8시에 한 시간 자고 병원에 갔다가 시립미술관 갔다가 왔다.
새로운 안약 심브란자를 처방했다. 약을 2가지 처방한다더니
2가지가 혼합된 안약을 처방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루미란이란 약을 쓸까 두려웠다.
코숍을 쓰면 안 되냐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텃밭에 들렀다 산책하고 와 밥먹으며 JTBC 뉴스룸 할시간에
축구해서 보았다. 보다 잠이 들었다.
3시에 오줌누려고 깨었다 일어났다.
오주만 누고 잘랬는데 바로 잠이 안 온 것 같다.
페북보다 일기를 쓰게 되었다.
자야되는데.
손석희나 최승호도 마찬가지다.
인터넷기사에 정신이 팔렸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리콜 문제에 행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삼성전자 문제에 개입할 힘이나 문제처리능력이 있나 모르겠다.
삼성전자 노트7리콜휴대폰이 기내에서 발화되었다는데
잘못하면 삼성전자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전자가 망하면 국제 제조업 산업의 25%가 부도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그 직원과 가족과 관련 기업 등 국가전체에 마비가 올 수 있다.
제방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인데 이것은 이성과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생계의
문제라 작은 문제가 아닌데 행정부와 입법부는 이념갈등과 대립에 여념이 없다.
백남기씨 사망은 박종철씨 사망사건처럼 비화될 조짐마져 있다.
정부와 경찰이 문제를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아마 대통령 관련 스캔들을 진화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지진이나 질병같은 재난 저출산 같은 문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먹고 사는 경제도 신뢰란 바탕이 있어야 활력이 생기는데
사람들의 신뢰가 단절되어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니 심리적 경제동력은
자꾸 꺼져가고 저출산노년화의 진행에 따라 물리적 경제동력마져
무너지고 있다.
야당과 프로그레시브, 프로테스터들은 자신의 일인데 비판하고 까느라
여당의 실정에 분노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