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일요일
교회에 갔다.
3시 찬양예배 듣고 왔더니 집에 오니 5시다.
바로 텃밭에 가 배추 7포기 심고 오이따서 왔다.
오는 길에 영이네서 죽은 화분 다른 걸로 바꿨다.
겨울도 나고 계속 사는 것으로 달라고 했다.
예배끝나고 국수 먹고 1시부터 3시까지 시간이 떴다.
목사님이 고린도전서
그 중에 더 큰 것은 사랑이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말'씀이 와 닿았다. 3시에 교회연합예배인 용천노회 남자예배가 있다고 성도들은
참석하래서 참석해보았다.
뭐 특별한 것은 없고 용천노회에 소속된 교회끼리 함께 예배보면서 성도들의 면식을 넓혀주고 사역일정정보를 공유하는 예배였다.
어렸을 적에 살던 집에서 송천초교까지 가던 길을 찾기 위해 근처를 배회하다보니 2시간이 갔다.
해가 나서 운동삼아 걸어보았다.
동부센트레빌 아파트가들어서서 마지막 길이 생각나지 않았다.
예배중에 한 순간 마음이 평온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진리에서 한발짝도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온해졌다.
집에서 쫓겨날까봐 몸은 불편한데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어떻게 살지 막막함에서 오는 두려움
신체의 불편이 떠오르게 한 걱정들이 다 사라졌다. 전처럼 죽음앞에 초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리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면 나의 소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소멸하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설사 타인에 의해 죽어도 진리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라면.
차분히 오늘 할 일을 휴대폰에 정리해보았다. 안약 넣고 만능간장 만들고 고사리무침 만들고
약수터 가서 물 떠오면 된다.
만능간장은 만들지 못했고 씻지 않았다.
2시에 무척 졸려서 아침에 일찍 병원에 가야해서 바로 자려다가
양치질하고 설겆이를 했다.
안약을 바꾸어야 할 텐데
컨디션이 좋아야 안압이 낮고 약을 바꿀 수 있다.
지금 쓰는 콤마간은 안압은 떨어뜨리지만 시력 손실이 너무 커서 불편하다.
일기쓰면서 글씨가 흐릿하니.
불편듯 효두엄마가 생각났다.
아마 어릴 적 살던 곳을 걸어서일지 모른다.
한동네에 살던 낭 효두와 친했는데
그 무렵 83년 무렵 포니가 쏟아져 나올 때
차 이니셜 글자를 떼어 모으면 팔수 있단 말을 듣고
친구 원희와 차 뒤에 포니 로고를 띠었다.
어디다 파는지는 몰랐다.
집앞에 트럭인지 자동차인지 로고를 떼려고 도라이버를 가지고 나갔는데
차주인 아저씨께 들켰다. 차주인 아저씨는도라이버로 차문을 열고 뭔가 훔쳐가려고
했다고 나쁜 놈이라고 때리고 혼내셨다.
그때 마침 지나가시던 효두 어머님이 예는 그럴 애가 아니라고 말씀해주셔서
어저씨에게서 풀려났던 기억이 났다.
곤궁하고 돈이 없다보니 돈이 된다고 하면 뭐든지 하던 시절이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던 악몽같던 시절이었다. 초등 5~6년
중학 1~2년은 어두운 시절이었다. 특히 5~6년은 최악이었다.
책임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 떠올랐다.
사랑받음과 받지 못함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많은 사람을 겪어보며 보았다. 유년기에 사랑받지 못한 친구들은
좋은 직장을 다녀도, 어두운 뒷골목을 배회해도
피해의식에 젖어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인정받으려하고
소유욕이 강하거나 소비경향이 있다. 결핍된 것을 채우고 자기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목사님 말씀과 똑같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내 자신과 내가 겪어본 사람들은 그랬다.
사람받은 아이들과 사람받고 있음을 알고 사랑하는 아이들은
애착을 따뜻한 관점으로 녹여내거나 바뀐다. 시련이 가해지거나 벽에 부딪힐 때 반성하고
나도 남보다 몇 배 인정욕구가 강했다. 책임감이 강해진 이유 중 하나다.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때 효두어머니가 그냥 지나쳤다면
아저씨가 엄청 터지고 경찰서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단지 주머니에 도라이버를 가지고 차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효두어미니의 애정과 관심 사랑이 울타리가 없는 내게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본인은 기억할지 몰라도 우연히 내겐 뚜렷한 인상으로 떠오른다.
사랑과 관심 애정이 지나쳐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텃밭활동과 시정 미래 정치 등을 생각하다가
쓰레기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났고 우리의 텃밭활동이 도시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몸이 불편한데도 참여했는데 결국 잘 안 되었다.
책임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쓰레기를 책임진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문제를 직시하고 홀가분해져서 큰 운동이 될 수 있지만 외면하는 것은
찜찜하고 불편해지게 된다. 정치를 하든 사람도
골치아픈 문제 골 때리는 사람들 외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자신이 불편과 장애를
감당할 자세를 가지면 즐겁게 일할 수 있다.
모든 시민이 즐겁게 일하게 하는 것 그것이 대통령이 할 일인데
각자가 외면하지 않고 피하지 않게 하는 것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유도할 수 있다.
예전에 재활용청소를 해본 경험 취재해본 경험
자원활용에 관심을 가지고 스크랩하던 경험 때문에
텃밭 경작활동으로 의식주의 대안을 찾는다고 했을때
산재보상을 받는 것보다 텃밭경작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더 중요했지만 결국 이어지지 않아 눈물을 흘려야 했다.
텃밭도
산재도 다 똑같다. 누군가 자세히 알아볼 줄 알았다.
땅에 애착을 가지고 친환경으로 농사짓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농장주는
나가라고 하고
산재문제도 어떤 환경에서 왜 쓰러졌는지 자신의 문제처럼
누구인가 자세히 들여다봐줄줄 알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해결되고
문제가 해결되면 그만큼 그들도 도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처럼 저능아 상태가 되지 않았다면 그들도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외면하는 것을 택했다.
책임지지 않는 길을 택했다.
결국은 본인들의 손해였던 것이다. 물론 나도 암울해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