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수요일
잘 시간이 늦었다.
1시쯤 일어나 밥먹고 4시에 고대갔다.
언론학교 포스터붙이고 집에오니 11시다.
밥먹고 잠시 누웠다 3시에 깨어 머리감고
설겆이하고 이빨닦았다.
노트북이 이상하다. 마우스가 바로 바로 먹지 않는다.
알림메시지에 ubs 컨트롤러 설치하래서 설치하면
이미 설치되었다고 설치불가 메시지가 뜬다.
ATI컨트롤센터 클릭하면 그래픽카드드라이버가 맞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뜬다.
정말 그래픽카드 칩셋은 교체했는지 제대로 고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부팅이 안 돼 포맷하러 갔다가 괜히 돈만 몇 십만 원 날린 건 아닌가
노트북수리비 할부로 끊은 것 갚으려 연일 무리를 하고 있다.
느림과 한계와 마주치면 절망도 되고 좋아질 것이란 낙망도 한다.
절망의 순간 공포가 찾아온다.
우이천에 자정이 넘으면 다리를 저는 남자아저씨와 아줌마가 걷기운동을 하시는데
나도 저리될까 두려워서 나는 저리되지 말아야지 생각하곤 했는데
노동력을 상실하고 장애를 갖게 된다는 것은 두려움이다.
명진이 경작모임 모듬상추 뜯어서 마을식당에 준다고 밥먹으러
오랬는데 가지 못했다. 이번주는 밭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나대신 뜯어 식당에 주겠다고 했다. 식권과 교환해서 덕브라더스
은미샘과 식사했다고 한다. 상추가 떨어졌다. 밭에 가서
좀 걷어와야 한다. 기본적으로 해야할 것들
약먹기, 안약넣기, 대야에 얼굴담그고 눈깜빡이기, 양치질하기 등이 있는데
순서를 잘 잡아야 하는데 순서가 엉키면 우왕좌왕 한다. 눈깜빡이기 먼저한 후
눈이 마른 뒤에 안약을 넣고 밥을 먹은 후에 약을 먹고 양치질을 해야 한다.
성신여대에 가면 언제나 불쾌하다. 나의 통행이동을 심문하고 제지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제지당할 때 의사가 저지당할 때 분노를 느낀다. 욕구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고대끝나고 갔더니 8시 이후에는 남성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단다.
경비도 이상한 규칙이지만 규칙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성신여대생은 남자를 잠재적 성추행범 아니면 자신을 기쁘게 해줄 백마탄 왕자 둘 중에 하나로
캠퍼스 생활하는 동안은 무의식에 주입시키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여러가지로 비정상적인 학교다. 나름깔끔한 환경과 절제된 룰에 따라 질서있게 학창시절을
보낼지는 몰라도 세상과 유리된 것 같다.
한의원갔다가 성대한성대갔다가 온다. 밭에는 언제가나?
들어오면서 오이 고구마 등 국민마트 후레쉬마트 우이마트에서 샀다.
부침가루가 세일을 하지 않았다. 후레쉬마트에 물건이 없었다.
부추호박전을 할 생각이고 오이 고구마는 가지고 다니면서 먹는다. 5백원에
한보따리다.
예전엔 직업으로 신문배달 포스터일하고 네다섯곳 단체일 하고
언론학교있을 땐 포스터도 붙였는데
지금은 껴서하던 포스터붙이는데도 필수생활을 못하니.
아 천마를 알아보자.
쓰러지기 일 이주전에
덕성여대에서 야구를 같이하던 송회에게 팔목이 붓고 아파서
함께 야구하던 침놓던 한의사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전화햇더니
모른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마트에서 일하고 한달쯤 되었을 때 팔목이 많이 부엇다. 인대가
늘어난 것 같아 손목압박밴드사서 차고 일을 했는데
모도형이 준 맨소래담 스프레이덕에 통증을 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손목의 통증이 팔뚝 어깨로 점점 올라왔었다.
그때 한의사를 만났으면 병원에 갔거나
일을 그만두었거나 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내 운명도 바뀌었겠구나 하고 오후에 아침밥먹으며 생각이
났다. 뇌졸이 한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고 사전 전조증상을
보인다는 이야기 때문에 생각해본 것이다. 그 때 팔목통증이 심해지고
목디스크가 왔다. 거기에 빗길에 계단에서 꼬리뼈를 찌어
허리펴기도 어려웠다. 배달중에 동익아파트 경로당 앞에서 오토바이 빵구가 나서 휘청이는 바람에
발목 봉숭아뼈를
심하게 다쳐 두 달도 넘게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체력의 한계 상황인 것을 스스로 알면서 그만두지 않은 것은
미련했다.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일한 것을 알아주기는 커녕
산재처리해주지 않으려고 안면몰수에 거짓말까지 하지 않는가?
그런 곳에 대해 일방적인 나의 주장만 펼치기 싫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먼저 사장에게 연락해서 이야기를 해보든가?
나는 사장이 먼저 연락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마트의 태도로 볼땐
언감생심이다. 결국 내가 자존심을 굽히고 들어가던, 일방적 주장을 하던
해야한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내 상황을 몰랐던 것을 알려주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가 알아봐야했고 나쁜 놈들 아니냐 그래 아주 나쁜놈들이다.
난 나쁜 놈들이라고 규정하고 나쁜 놈들과 대립하는 상황,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싫은 것이다. 그들도 나쁜 놈이 아닐 수 있기에 대화를 해보아야 하는데
대화하는 상황도 부담스럽다.
그놈들은 아주 아주 나쁜 놈들이다. 내가 업체 사장이라면 어찌했겠는가?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가 아픈지 알아보았을 것이다. 천벌을 받을 놈들.
쓰러지고 나서 상호와 정마리에게 어느병원에 가야하냐고 묻기위해
전화를 했다. 아무리 해도 받지 않았다. 난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두사람에게
전화를 했을까 가까운 사람들에겐 하지 않고. 두 사람이 의학적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잖아?
가까운 사람들은 죄다 피해의식에 쩔고 가난하고 밥벌이를 제대로 못하거나
바쁘거나 친척이다. 성장할 때 신세를 많이 진 친척들에겐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간병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해달라고 한 사람도 없다.
은희와 감석이 보호자해주겠다고 했는데 나야 해주면 좋지만 두 사람도
어렵게 살고 사회활동하느라 정신없는 삶을 살아 부탁하지 않았다.
난 분별력이 없으니 내 앞날이나 상태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저
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의사 병원 동사무소의 처분을 기다릴뿐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씻지 않았고 퇴원해서도 몇 달간은 한 달에 한 두번 씼었다.
상기와 재주는 냄새난다고 놀렸다. 생각해보면 간호사들이 참 무던한 사람들이다.
싫어하는 기색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지난 이년간 겨울철에 난방을 하지 않았다. 별로 춥지도 않았다. 아마 올해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