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아 compliance란 제목의 영화를 보았다.
편의점에 일하는 여직원이
손님의 돈을 훔쳤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매장 여자매니저에게 수화기 너머의 경찰이 시키는 대로
취조를 받는 영화였다.
매니저 경찰에게 협조하는 매니저의
행동이 답답했다. 경찰의 전화심문질문이
도를 넘어섰는데도 잘하고 있다는 칭찬에 고무되어
함께 일하던 동료의 수치심은 고려하지 않고
경찰 말을 따라 조사한다고 빨가벗기고
심지어 성폭행까지 하는 데 분노가 일었다.
범인은 유유히 빠져나갔다.
성폭행이 일어난 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경찰에 연락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무조건적 맹목적으로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세가 이런 비극을 만들고 있음을
고발한 영화같았다. 배우들의 연기, 특히 발음과
배음. 배경음악과 음향효과가 뛰어났다.
대사와 연기가 뛰어나고 실감나서 심리적
자극이 영화스토리를 따라 함께 갔다.
여점원이 빨가 벗겨졌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성폭행한 남자의 시선과
감정에 일치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
임에도 여자의 나체를 보고 나도 흥분을 느꼈다.
어찌보면 스스로 황당하다고 여긴 상황에 처한
사람의 심리를 잘 묘사연기했다.
사회의폭력.
작년에 마트에서 일하다 쓰러진 일
그 후에 모른 척 하는 마트사람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주변 사람들
심지어 오해하거나 헐뜯는 사람들
그저께 만났을 때 파초형은 여전히
지난번에 오토바이사고로 다쳐서
뇌경색까지 왔다고 사람들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어떻게 쓰러졌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
자신의 생각으로 창작을 해 낸다.
색종이도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대부분이 그렇다.
그게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모른다.
장애가 없으면서 장애를 어찌 이해하겠는가 이해를 하면서도
그 사람들의 척박한 인식, 이기주의적인 삶이 만든 잔인한 시선
돼지눈엔 먹을 것만 보이는 그런 시선이 떠올랐다.
오전에 잘 수가 없어 자지 않고 주인 아줌마 아저씨와 교회버스로 바로 교회에 갔다.
아저씨가 면도기가 없다고 빌려달래서 무슨 말인가 이상해하면 질렛트면도기 가져갔더니
전기면도기 말씀하셔서 생각해보니 선물받고 쓰지 않던 산요 면도기 생각나서
주인아저씨 선물로 드렸다. 아저씨가 고마움의 표시로 교회앞 편의점에서
빵 2개와 우유를 사주셨다. 빵먹고 예배보고 식당에 가니까 아주머니 친구분이 이번엔
국수를 두그릇 타주셨다. 그래서 두그릇 먹었다. 그리고 절편도 3개나 먹었다.
음식을 남기지 못하는 습관 때문인데 한 그릇만 먹을 걸 후회가 밀려왔다.
배가 터질 것 같다. 모두 몸에는 좋지 않은 음식같아서 짜증이 났다.
의사가 탄수화물은 조금 먹고 살고기를 많이 먹으랬는데 살고기는 아니더라도
탄수화물만 잔뜩 먹었기 때문이다. 부른 배때문에 나는 짜증을 참고 아저씨와 버스 타고
와서 잤다. 깨니 10시쯤 되었다. 밤 먹고 나니 자정이 넘었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오다 말다 오다 말다 하는 소리가 난다.
어젯 저녁 깨어 파리를 엄청나게 잡았다. 오늘도 엄청 잡았다.
마당에 버린 구더기들이 지하가 시원하니까 들어와서 변태를 했나보다.
거실 등을 끄니까 밝은 현관문 창문에 파리들이 빽빽히 앉았다.
그렇게 잡기 어렵던 파리를 한 방에 다 잡았다. 파리들도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을 찾나보다 사람처럼. 물고기나
곤충 나방들도 불이 있으면 모여든다.
현관 틈사이에 안 쓰는 쇠젖가락을 넣고 쑤셔보니까
변태중인 빨간 구더기알이 한 움쿰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