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이야기. 모두 새겨보아야 할.
"MBC의 최승호PD가 해고 됐다. 착잡하다. 그리고 분노가 인다. 야만과 불의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란 짧은 글을 한 시간 전에 올렸다.
이 글에 다큐감독이자 사진가인 안해룡 선배가 다음과 같은 덧글을 남겼다. "하지만 수많은 외부의 프리랜서 감독과 피디들은 그야말로 소리없이 사라지지요. 방송사의 파업, 공정방송 논의 등에서 공감을 하면서도 프리랜서 감독과 피디에게는 남의 집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불공정, 아니 폭력적 고용구조는 결코 개선되지 못합니다. 공영방송 K1에서도 협찬을 박고 자막 내보내는 준 광고 영업을 하는 현상을 보면서 먹이사슬의 중간착취자가 되었다는 확증을 잡았지요."
안 선배가 지적하는 지점에 격한 공감을 보낸다. 며칠 전 최승호PD와 가벼운 술자릴 가진 적이 있다. 그는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다소 막연했지만, 언젠가 좋은 세상에 대해 그는 이야길 했다. 연봉 1억원이 넘는 정규직과 연봉 3천만원이 채 안되는 미조직불안정 노동자와의 처지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자리에서 많은 것을 서로 공감할 수 있었다.
방송사의 파업을 바라보는 내 속내는 복잡다단하다. 시민의 입장으로 가면, 그들의 파업을 동의하고 지지한다. 그러나 동일 직종의 프리랜스 방송 PD로선 다르다. 나는 속칭 외주제작 PD다. 다시 말해 방송사에서 하청을 받아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덕션에 일시적으로 고용되어 일하는 미조직 불안정 방송 노동자다.
방송사의 정규직은 그들의 개인적 의지와는 달리, 좌와 우그리고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내겐 사용자다. 착취자며 억압자다. 그리고 지배자며 동시에 통치자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해고 혹은 사실상의 징계를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방송사의 정규직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정규직 가운데 진보적 성향의 노조원들은 '공정방송'을 외친다. 동의한다. 지지한다. 그러나 내가 속한 외주제작PD란 존재의 위치에서 보면 달라진다. 방송사가 '갑'으로서 '을'에게 던지듯 주는, 하청(?)이란 진행과 집행과정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내부의 불공정 관행에 대해서 그 어떤 발언도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가정에서 아내를 두들겨 패고, 아이들을 학대하는 남편이 바깥을 향해서 가정 복지와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꼴이다. 그러기에 나는 방송사의 파업에 동감과 지지를 보내면서도 그들의 행렬에 참여하지 않는다. 지지 발언과 글도 쓰지 않는다. 거대한 공룡과 같은 두 집단 사이에 끼어 있는 처지란 정말로 복잡하다.
내 스스로의 존재에 의한 이성과 주체적 판단은 차갑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최승호'란 구체적 대상이 당한 '해고'에 대해선 나는 정서적으로 민감해진다. 최승호라는 PD는 내게 있어서 '스승'이다. 그가 내게 뭔가를 직접 가르쳐 준적은 없다. 그의 방송 프로그램과 글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기에 '나'는 그를 '스승'으로 모신다. '스승'이 해고를 당했다. 거기에 가만 있을 '제자'는 없다.
하여, 방송사 정규직 노조를 향했던 '날'을 잠시 거두려 한다. 그리고 그 '날'을 간다. 이제 그 '날'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2012년 6월 21일, 여의도 9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