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행사

14회 인권영화제 2010년 5월 27일(목) 개막

pudalz 2010. 5. 7. 11:40

 

2010.4.21 제12회 인권영화제 뉴스레터 "울림" 제 4 호 (전체 98호)

영화제 소식

14회 인권영화제 2010년 5월 27일(목)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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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인권영화제 2010 14th Seoul Human Right Film Festival
15주년 2010.5.27(목)~30(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 끼고 상상할 자유,
인쇄물·영상 등으로 표현할 자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행동으로 표현할 자유

인권영화제 15주년 비·상·하·라

1996년 1회 인권영화제 '영화속의 인권·인권속의 영화'라는 주제로 시작된 인권영화제. 올해로 15주년을 맞습니다. (5회와 6회 사이에 개최 시기를 가을에서 봄으로 옮기면서 5.5회 인권영화제를 개최한 바 있음)

인권영화제의 역할은 인권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당사자 들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인권영화제는 또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인권영화제 15주년. 거리상영 3년 째. '표현의 자유'를 찾는 당당한 외침의 공명이 되어십시오.

국내작 소개

시설장애인의 역습

박종필 |2009| 다큐| 60분| HDV| 컬러 ☞ 감독 인터뷰 보러가기

“퇴소 2009년 6월 4일 오후 2시. 우리는 더 이상 시설에서 살지 않습니다! 우리를 시설에 가두지 마십시오! 시설에서 나올 것입니다!”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모였다.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살던 그들은 인간이하의 삶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 ‘자립생 활’을 요구한다. 이 사회에서 ‘시설’은 장애인을 집단 격리 수용하여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유배시키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수용 의 의미는 ‘사회방위’ 즉,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세력을 격리시켜야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장애인을 수용시설에 입소시키는 것 자체로 이미 인권 침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시설 문제의 근본적인 대안은 그것의 ‘폐기’이다.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이 탈 시설과 자립생활로 지향되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시설에서 인권유린은 자행되고 있다. 서울시만 해도 70%의 시설 장애인이 퇴소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여건이 되지 않아 많은 장애인이 시설 안에서, 그리고 시설보다 더 시설 같은 골방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8년 12월 말 장애인과의 면담을 통해 자립생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 다. 8명의 농성 장애인과 연대단체의 62일간의 끈질긴 투쟁이 진행된다. 감독은 농성중인 장애인에게 묻는다. “시설 밖의 세상에서 무엇이 가 장 좋습니까?” 그는 대답한다. “자유. 자유가 있습니다.”

(감독 인터뷰 전문은 울림 맨 밑단에 있습니다.)


해외작 소개

지난 겨울, 갑자기 Suddenly, Last Winter

구스타프 호퍼, 루카 라가찌 Gustav Hofer, Luca Ragazzi│이탈리아 Italy│2008│다큐│80분│DV│컬러
예고편 영상 보러가기

저널리스트 루카와 구스타브는 8년을 로마에서 동거하면서 서로의 친구들과 알고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탈리아 총리 프로디가 동성 커플의 인권에 대한 법안을 내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이탈리아 가톨릭은 소위 '디코(DICO·DIritti e doveri delle persone stabilmente COnviventi, Rights and duties of persons living permanently)'라는 이 안건을 정상적인 가족구성과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사안이라는 이유로 배척한다.
시민들은 거리시위를 하고, 교회는 '가정의 날'을 정해가면서 '디코'가 소아성애를 비롯해 기타 죄악의 근본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루카와 구스타브는 오랫동안 자신들의 생각이 법으로 만들어졌으면 하던 바람이 나라에 이토록 큰 소동을 벌이게 되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국민들이 동성애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조사하기로 마음먹는다. 정치가, 행인, 가톨릭의원과 '디코'에 반대하는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감독 및 주인공들은 이 시대 이탈리아 사회의 윤리적 상황을 그려낸다.
상황에 직면하려는 노력과 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용기를 통해서, 그리고 동성애에 반대하는 불합리한 담론들을 간파함으 로써, 감독은 삶에 대한 용기와 유머를 잃지 않는 두 사람에 대한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어!울림

인권영화제 정기회의 시간

인권영화제 정기 회의 시간.
잡담하는 이들이 있다.

짱노: 야, 너 배두나 닮았어.
공기: 그치? 그런 말 많이 들어.

완전 정색하는 1인.
지용: 지금 공기더러 배두나 닮았다고 하셨어요?
짱노: 아..아니 장난으로 한 건데

지용: 흥, 공기가 배두나면 난 지드래곤이겠네...
모 활동가: 난 정우성


만든 이: 지용
만화 속에서 졸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미지 편집: 소라 /타이틀: 공기

1984

경쟁, 그 속에서 생겨나는 감시

편집자 주:
<1984>는 전체주의 사회를 경고한 조지 오웰의 소설입니다. 우리 일상 속의 1984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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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찍어 공급하는 사유 체계를 답습해야만 하는 그 곳, 학교. 우리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는 감시는 학교에서도 계속되었다. 밤마다 계 속되는 야간 자율 학습, 긴 매를 들고 복도를 돌아다니며 창문을 들여다보는 주임 선생님. 간혹 밖을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칠 때면 누구 할 것 없이 다시 정 자세로 책을 향해 고개를 처박곤 했다.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해서 싸늘하기까지 한 교실은 대규모 수용소와 다름없었다.
우리는 모두가 감시당하는 대상이었지만, 서로를 감시하기도 했다. 마치 매트릭스 속 모든 인간이 ‘스미스 요원’이듯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감시를 당한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등급제의 압박으로, 우리는 친구를 적으로 여겨야 하는 교실에서 살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나를 숨기고, 친구를 경계하며 지켜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해갔다.
경쟁은 우리를 서로 감시하게 만들었다.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해졌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배웠다. 대학에 온 지금, 남을 죽여야만 사는 사 회의 모습을 보며 몇 년 전을 돌이켜보고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도 경쟁은 학교라는 축소판 속에 여전히 감시와 몰이해의 씨앗을 심고 있다.

인삼

자원활동가 편지

어느 늦은 오후, 넋두리

분명히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들어갔던 직장이었다. 엄마한테 효녀노릇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법 내 꿈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곳 에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을까, 지칠 때로 지쳐서 그만둘 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나이는 먹을 데로 먹었는데, 아직 대학졸업도 안한 상태였다. 사람들은 내 나이를 묻고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떠버린 시간을 센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어디서 무얼 했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이상 한 일이다. 나는 제법 열심히 살아왔고, 시간은 그저 도둑맞은 것뿐인데 대체 왜 그 시간을 궁금해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찌됐건 나는 지금 현재 믿을 수 없을 만큼 뚜벅뚜벅 잘 걸어가고 있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나의 오래 된 지인들을 제외하고 낯선 이들을 만난 건 ‘인권운동사랑 방’에서 처음이었다. 그날은 아주 눈이 많이 내렸다. 사람 사는 골목길, 올라서면 약간은 숨이 차오르는 언덕을 걸으니, 정말 말 그대로 ‘방 ’이 있었다. ‘인권운동사랑방’. 이곳에 들어서면 낯선 이에게 ‘밥 먹었어요?’라고 먼저 묻고, 모여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내 끼 니 걱정해주는 말도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본다. 먹기 싫으면 먹기 않아도 되고, 더 먹고 싶으면 더 먹어도 된다. 그 누구도 무엇을 강요하는 사 람은 없다. 그래서 난 이곳이 참 편하다. 먼저 많은 것을 궁금해 하지 않아서 마음이 느슨해진다.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좋 아하고, 게다가 인권까지 겹친 그런 영화가 좋다고 모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분명 방을 나올 때면 배가 불렀다. 나는 이들에게 쌀 한 톨만큼도 도움이 못되고 있어서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부끄럽다. 그래도 어디선가 나처럼 말하고 싶지 않을 때 말하지 않아도 될 곳을 찾는 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언덕을 오르라고 말하고 싶다. 최소한 당신이 배고플 때 서러워하지 않아도 될 ‘방’이 있으니 말이다. 이제 준비기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무엇보다 영화제 장소가 정해져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마음이 좋다. 잔인한 4월은 가 고, 이제 5월의 마지막 나흘은 온다. 그래도 뭔가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영은

당당하게 고민합시다!

문득 든 생각인데, 한 개인의 역사에서 현재의 2,30대는 압축 성장을 향해 달리던 한국 현대사의 6,70년대에 해당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 고 주위에서는 고민하는 청춘의 시기라고도 부르죠. 그러나 이제 그만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우리는 고민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고민은 사치이 고 감정 놀이에 지나지 않으며 결단력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누군가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라는 냉소적인 시선을 받기 딱 이죠. 심지어 기성세대들은 20대를 88만원세대라고 규정짓기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왜 하필 88만원 세대인가요. 지금의 20대를 향한 안타깝고 측은한 시선들, 고맙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원치 않습니다. 만약 20대가 반드시 특정한 무엇으로 불려야만 한다면 그것은 고민하는 젊음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불확실성과 해답 없는 고민들 사이에서 불안과 패배감은 높아만 갑니다. 고민하는 젊음에게는 신속한 결정이 강요됩니다. 그 결과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자신” 때문에 우울해지기만 하죠. 그런데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결코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고민하고 있는 자신, 꿈을 꾸고 있는 자신에게 조금은 뻔뻔할 정도의 당당함을 허락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급물살에 한 번 휩쓸려가 버리면 다시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들여 ‘나’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화병에 걸린 어머니들로 가득차여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지적되는 남 과 비교하며 평생을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우리라면, 건강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적어도 사랑방에 서 활동하는 순간만큼은 마음껏 고민하고 즐기기로 했습니다.

보람

독자의견

노현주 님

15주년을 맞은 인권영화제! 벌써 인권영화제가 14회나 되었네요~축하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침해했던, 그리고 침해당했던 인권. 그동안 도움의 손길이란 말로 포장하고 시각장애인들의 인권 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았나, 그리고 안전의 확보란 이유로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통해 내 인권을 침해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 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해주는 인권영화제! 그 장소가 문화의 중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결정되었군요~ 북적북적한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의 긴 생각의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창한 봄날, 따스한 햇살 속에서 진행될 인권영화제..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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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독자 여러 분, 이번 울림은 어땠나 요? 기사에 대한 의견, 읽고 난 감상, 울림을 위한 조언 등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독자 여러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인권영화제 블로그입니다 http://blog.naver.com/hrfilms/

편집후기

예고편 만드는 거 쉬울 줄 알았는데 정말 어려웠어요ㅠ 예고편 구성하는 것도 어려운데 영상 만드는 건 더 어렵겠죠??그래도 다음번에는 도 전해보고 싶습니다^^ 정윤

드디어 봄이 왔네요. 제 인생에도 좀 더 따스한 햇살이 비추었으면 ㅠ.ㅠ 그치만 다시 한 번 힘내자고 다짐합니다!^^ 소라

정말 봄날이 왔네요. 춥지 않고 따뜻해서 좋습니다~^^ 영은

정우성 닮은 이끼님 ♡ 쿄쿄 지용

요즘 같은 날은, 일상에 치이더라도 피어나는 꽃을 보는 여유를 찾았으면ㅡ 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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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인터뷰 전문

<시설장애인의 역습> 박종필 감독

감독 인터뷰 보러가기

감독님께서는 장애인 인권에 관한 영화를 계속 만들어 오고 계신데요, 장애인 인권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었는 지요?

원래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98년도에 노숙인과 관련된 작업을 하고, 노동과 관련된 작업을 하려고 고민을 했죠. 장애인 노동권과 관련된 작업을 해보려고 관련 단체 행사에 찾아다니다가 우연찮게 에바다 문제를 접하게 되었죠. 방송을 통해서 에바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줄 알았는데, 에바다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어요. 그때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1000일 문화제에 틀 영상물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고, 그래서 카메라 들고 평택에 내려갔었죠. 내려가서 현장을 접해 본 결과 제가 주류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었던 현실과 너무나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문제 제기를 했던 교사와 학생들은 비리 재단의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속된 표현으로 ‘뚜껑이 열렸던’ 거죠.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현실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류 미디어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들도 많더라고요. 구타와 사망 사건, 의문사도 있었고요. 그런데 에바다 문제가 조금 일찍 끝났더라면 장애 문제를 쭉 작업하 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에바다 문제가 지역에 있는 노동자, 시민 사회 단체가 힘써서 비리 세력을 몰아내며 2003년도에 결국 은 해결이 되었죠. 어쨌든 99년도에 에바다 작업을 하고 난 뒤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계속 상황이 발생하니까 계속 찍으러 갔고, 그게 2003 년도까지 간 거죠. 그러다 2001년도에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있었고요. 이렇게 계속 관계를 맺다보니까 쭉 하게 된 것 같아요.


90년대 후반부터 계속 작품을 만들어 오고 계신데, 장애인 인권 실태가 얼마나 바뀌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장애인 인권의 현실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단 시설이 폐쇄되어 어떤지를 모르니까요. 폐쇄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의 인권 현실이 나아졌는지는 모르겠고요, 제 생각에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 쨌든 지금 함께 장애인 운동을 하고 있는 분들은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기도 하고,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정말 소수죠. 그래 서 제 생각에는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거는, 에바다 투쟁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장애인 당사자가 주축 이 되어서 장애인 운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것이 장애인 운동, 장애인 인권의 희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설장애인의 역습>을 만들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에바다 투쟁이 아주 큰 문제였기 때문에 시설 문제에 대 해서는 계속 관심을 가졌어요. 에바다 문제가 해결이 되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시설은 폐쇄적으로 운영이 되고,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장애인 에 대한 인권 유린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이 영화에 담은 투쟁의 경우에는 경기도 석암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서 2007년도에 비리가 발생 을 하면서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석암 투쟁이 다른 시설 투쟁과 달리 중요한 점은, 시설에 살고 있던 장애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설에 서 나왔고 그분들이 주축이 되어 싸움을 시작했다는 것이었어요. 그게 2009년도 말에 일정 부분의 성과를 내고 정리가 되었죠. 투쟁을 했던 분 들이 시설이 아무리 민주화되어도 시설은 여전히 시설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시설에서 살기 싫다고 주장을 하며 나오시게 된 것이었어요. 2007 년도에 석암 민주화 투쟁을 찍었었고, 그때 만났던 분들이 시설에서 살지 않겠다고 나오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찍게 된 것 같습니다.


영화 제목에서 ‘역습’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석암 시설에서 나와 마로니 에에서 노숙 농성을 한 여덟 분을 ‘마로니에 8인’이라고 보통 이야기를 해요. 한국 사회에서 그런 경우는 없었죠. 시설 운동하는 사람들, 장 애인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투쟁이었어요. 투쟁을 하던 사람들 안에서 ‘시설장애인의 역습’이라고 투쟁을 이름 지었고, 그래서 그 투 쟁이 갖고 있는 장애인 운동 안에서의 의미를 역습이라는 단어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연스럽게 이 제목을 짓게 되었죠.


<시설장애인의 역습>에 담았던 분들이 영화 이후에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투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삶이 이분들에게는 이제 일상화, 체화된 것 같아요. 2007년부터니까 4년이 되었는데 요즘도 장애인 운동을 계속하고 계시고요. 자립생활 투쟁하 시기 전에는 꿈이 전국 일주라고 이야기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나중에 말씀하셨을 때는 자기처럼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자립생활하는 데 힘이 되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활동보조 서비스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것이 장애인 운동 내에서 이슈화가 되었고, 지금 여덟 분 모두 열심히 투쟁하고, 열심히 생활하고 계시거든요. 그런 점들이 좋은 측면이 아닐까 해요. 장애인들이 일상 생활하는 데 있어 필요한 시간 을 보통 생활시간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모든 자립생활하는 장애인은 필요한 생활시간만큼 활동보조를 제공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은 여전히 있고요.


지금의 상황에서 실제로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하는 데에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까요?

보통 시설이나 부모 밑 에 있는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하려고 했을 때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해요. 왜냐하면 지금은 활동보조 서비스를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자립생활하는 데 있어서 주거를 일차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주거 이전에 활동보조가 제공되지 않으면 자립생활하는 게 불가능하죠. 시설이나 그 리고 부모,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장애인 같은 경우를 보면, 시설에서는 직원들이 보조를 해 주는 것이고, 부모와 같이 살고 있는 경우엔 국가 에서 담당해야 할 활동보조를 부모가 다 책임지고 있잖아요. 장애인분들이 지금 당장 자립생활을 한다고 했을 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 죠. 장애인들이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 세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주거, 활동보조, 그리고 소득이에요. 그런데 장애인 연금 같은 경우엔, 천 원이 올랐나?(웃음) 그래서 소득도 굉장히 미비한 상황인 거죠. 주거 문제도 제대로 갖춰진 게 없고 활동보조도 축소되고 있는 상황인 거예요. 그래서 이명박 정권 들어오고 나서 더 안 좋아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광화문에 가시기를 바랍니다.(웃음) 4월 말까지는 계속 관련된 투쟁을 계속 할 거고, 장애인 투쟁 기간이 끝난다 하더라도 투쟁은 계속 지속될 거예요. 주로 광화문 주변이 될 텐데 , 장애인 투쟁에 함께해 주는 것, 투쟁 이후에 참석했던 분들과 가깝게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장애인 운동을 알 수 있고, 장애인의 현실을 알 수 있고, 장애인 운동에 큰 힘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왜냐면 사실 장애인 단체가 아주 많지만, 모두 관 련 민중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단체도 아주 많고요. 그런데 제가 소속되어 있는 전장 련(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아닌 것 같아요. 전장련 투쟁을 함께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물음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 제작 외에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감독님께 영상 제작과 활동은 서로 어떤 의미를 갖나요?

제작만 하고 있지는 않죠. 교육도 하고 있고, 장애인인권영화제도 하고 있고, 홈리스 행동 주말 배움터에서 영상 교육 도 하고 있고요. 운동의 연대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제 활동에서 가장 큰 것은 제작인 거죠. 저한테 운동하는 데 있어 다 른 일이 요구된다면 그것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무게 중심은 제작에 있는 거죠. 제작을 제대로 못 하면서 다른 활동을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제작을 하면서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나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을 때는 당연히 제작 중심이 아니라 운동 중심 으로, 그 운동에 연대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작품이 있나요?

작년부터 하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작업을 못한 게 있어요. 금융 피해, 신용불량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작품이에요. 98년도 IMF 구제 금융 시절에는 노숙인과 관련된 작업을 했었는데, 홈리스 당사 자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금융 피해를 받고 있었어요. 그 작업을 작년에 제안을 받아서 조금씩 진행을 했었는데, 다른 여러 가지 활동들 때 문에 잘 진행을 못 했어요. 이제 시설장애인의 역습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니까, 올해에는 그 작업을 해볼 계획입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 지만 계획은 그래요.(웃음)


활동하시면서 기분 좋은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대다수의 독립 다큐멘터리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 을 많이 해요.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가장 큰 매력은 민중들을 만나며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이라고요. 다큐멘터리 자체가 나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고, 내가 찍고자 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러면서 그들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을 많이 가져요. 노숙인 운동이나 장애인 운동을 계속하면서 그런 배움을 얻은 게 가장 큰 행 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내가 찍었던 분들, 찍고 있는 분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긴장감도 갖고, 내가 어떻게 살아 야 할지 고민도 하게 되면서 그나마 건강하게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15주년을 맞는 인권영화제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힘든 시기 잘 버티고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네, 끝 입니다.(웃음)

울림을 만드는 사람들 : 인권영화제 울림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