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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인지 아닌지

pudalz 2013. 12. 25. 04:10

산재인지 아닌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검사결과 뇌졸증 외에도 갈비뼈 골절 판정 받았고 오른쪽 발목뼈도 골절 소견을 진단받았다.
생각해보니 입사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동익아파트 경로당앞에서 오토바이바퀴가 빵구가 나서 발목뼈를 채였다.
부었다. 비오는 날 진성빌라 지하에 물건들고 내려가다 미끄러져 엉덩이뼈를 찌었다. 담날 허리펴기도 어려웠다.
또 오락가락 비오는날 마트 앞에 내 놓은 상품을 덮는 비닐이 날리길래 오토바이 탄 채 줍다 조끼 소매가 악셀에 걸려 넘어질 때
또 오른쪽 발목을 채였다. 이후로 한달이 지나도록 붓기가 가라않지 않았다.
쓰러지던 날 오토바이에 물건을 싣고 배달하는데 갑자기 골목에서 차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급정지할 때 물건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힘주다가
갈비뼈가 골절되엇다. 그전 날 가슴이 많이 아팠다. 밀알형에게 가슴 아픈 것에 대해 호소했다. 그게 병원가기 전날이었나 쓰러지기 전이었나
숨을 못 쉬겠다고 흠 그 전날 이었구나 형이
가만히 있을 때 통증이 줄었다니까 그러면 괜찮다고 했었다.
잠을 자지 못했다. 한기가 어깨로 스며들어 고통스러워서 잠을 자지 못했다. 이틀 간
쓰러질 무렵 계속 어지러움 증이 있었다.
점장과 일요일날? 월요일날? 면담을 했다. 화요일 이광재씨 쉴 때 쉬라고 했다. 마트 정책에 협조해야 한다고 하며
이광재씨 쉴 때 쉬라고 같이 쉬면 안 되는데 쉬라고 해서 그만두라는 얘기인가 하고 걱정을 했다. 밀알형에게 갔다.
그간의 갈등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전표기재착오, 전화주문 배송사고 등으로 계산대 영..하는 여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밥먹을 때 자꾸 착오가 나면 씨발이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전 여직원에게 내가 씨발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과했었다. 김주임이 사과하라고 해서
영..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잘해 주고 이후 무난하게 지냈다.

몇 일 전 김주임에게 전화했더니 마트직원과 사이가 나빴고
왜 을 숨기고 들어왔냐고 했다.
난 같이 배송하는 입장에서 배송의 고충을 이해하리라 생각했더니
병원에 있을 당시 내편을 들어줄 수 없다고 미안해한 것이 생각나서
적반하장이다. 이것이 마트 직원들이
내게 연락하지 않은 이유인가 보다

마트 입사하기 바로 전 3달동안 강북구립장애인사업장에서 근무할 때

일을 열심히 해서 상도 받았다. 6월 30일까지 근무하고

7월 2일 마트에 갔더니 면허따오래서 바로 면허시험 응시해서

면허따고 마트일 시작했다.

구청에선 일부터 시작하고 면허따라고 했지만

마트에 갔더니 면허부터 따오라고 해서 면허부터 따고  일을 시작했다.



근육 풀어야 하고
하반신이 뻒뻑하다.
걷는데 지장없지만 줍거나 신발 신을 때 양말 신을 때 발에 손이
잘 가 닫지 않는다.
큰바위얼굴, 재춘 선생에게 물리치료방법 배워야 한다.


1월 7일이 얼마남지 않았다.
사회복지관이 되었던 구청이 되었던,
산재처리를 매듭짓던
무엇인가 결론나지 않으면
아주 힘들어 질 수 있다.
재활도 서둘러야 하낟.
6개월 안에 승부를 보라고 했는데
머리가 좀 좋아진 거 다리에 약감 힘이 붙은 거 외에 도가 없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페이스북 최서윤 선생에게
프로그램에 대해 물어보라.
도봉병원에 입원재활할까? 한전병원 유..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에게 더 물어볼까?

2010 2011년 연속 옥천 조선일보반대마라톤에서 5km 입상햇다.

조선일보 마라톤 일반부 하프 3등의 경력

어렷을 때 배구선수

육상선수

지난 6년동안 뭐 했는지

혈당 혈압 없는 것

전립선치료받은 이력

작년 사고후 꾸준히 운동

4~6월 세달 동안 규칙적으로

일하고 매일 한시간씩 자전거타고 퇴근

 

2010년 쯤 건강검진 받은 것 같다. 2009년인가

11, 12년은 받지 않았다. 이사를 해야 했던 해

지방선거 이후

곽감 사건 터지고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사짐을 풀지 못하고 생활했다.

 

퇴근하고 공팜이 청소하는 일 결로닦아내는 일

힘들었다.

피로누적의 한 원인

새로 지도를 외우는 일 익히는 일

배송업무를 잘하기 위해

오토바이 개조연구하느라 새벽까지 자지 않은 일

 

 

많이 힘들었다. 물 5팩 들고 아파트 끝 호 한영빌라 올라가기

수많은 짐들 팔목이 부울 정도.

 새로 익히는 중이라 더 힘들었었다.

고봉아저씨 그만두고 여름철 장마와 찜통더위에 혼자

죽기살기로 했다. 김주임은 매장일에만 전념하다

점장지시받고 밥먹을 동안만 대신했다.

 

난 다시 노래 부를 수 있을까? 마음에서 나오는 노래